한 지붕 두 가족 Episode 4.
임신을 의심할 만큼 식욕이 돌던 어느 날,
입안 가득히 퍼지던 음식의 맛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텁텁하고 메마른 모래알처럼.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남은 교실.
하영은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려 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너 어디야?”
낯선 목소리.
“… 네?”
“어디냐고!”
“지금 교실입니다만….”
“너, 딱 기다려!”
말이 아니라 총알이었다.
이미 겨누고 있었고, 피할 틈도 없이 온몸에 박혔다.
하영은 얼어붙었다.
휴대폰 너머의 분노가 이미 교실 안까지 밀려 들어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야!”
하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은 멈춰 있었지만, 몸은 반응하고 있었다.
문 앞엔 몇 번 얼굴을 스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아이의 엄마가 서 있었다.
거칠게 들이쉬는 숨,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이글거리는 눈빛.
그 모든 감정이 날 선 칼처럼 하영을 겨누고 있었다.
“어머니, 무슨 일로—”
“무슨 일이냐고?”
그녀의 외침은 하영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왜 우리 애만 늦게 보냈어?
다른 애들 다 간 다음에 애 하나 남겨두고 뭐 하는 거야!
왜 우리 애만 알림장 검사 늦게 해?”
말문이 막혔다.
분명 다른 아이들을 먼저 보낸 건 맞았다.
효철이는 알림장 쓰기를 몹시 힘들어했고,
하영은 그 아이가 끝까지 쓸 수 있도록 기다려주곤 했다.
하영에게는 조용한 배려였지만,
그것이 이렇게까지 분노를 부를 일이었을까?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에 비례해 하영의 가슴속은 점점 조여왔다.
“어머니, 제 말은…”
혀끝까지 올라온 말은 쉽게 빠져나오지 않았다. 자꾸만 맴돌았다.
‘왜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지?
나는 선생님인데…. 왜 이렇게 입이 떨어지질 않아?’
하영은 눈을 들지 못했다.
차가운 눈빛이 비수처럼 박혔다.
가만히 서 있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교가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닌데….’
속으로 되뇌었지만, 선명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이치듯 부풀어 올랐다.
죄책감인지, 두려움인지, 억울함인지-
섞이고 뭉개져, 결국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지만,
귀가 울릴 만큼 쏟아지는 효철이 엄마의 목소리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 한마디.
그 말이 하영의 무력감에 마지막 못을 박았다.
그날 이후, 하영은 효철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늘 조용하던 작은 아이.
알림장을 쓸 때면 연필을 꼭 쥔 손끝은 땀에 젖어 있었다.
“효철아, 알림장 쓰는 거 많이 힘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는 대답도, 고개 끄덕임도 없이 시선을 피했다.
그 눈빛 속엔 조용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 아이는, 무언가에 눌려 숨을 참고 있구나….’
학부모 공개수업날이었다.
효철이가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하영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늘 그림자처럼 있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기적 같았다.
‘괜찮을까? 무리가 아닐까?’
평소에 발표를 한 적이 없던 효철이었기에 망설였지만, 하영은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 효철이, 발표해 볼까?”
하지만 말보다 먼저 움직인 건 아이의 눈치였다.
교실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아이는 주춤했다.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떨리는 손끝.
하영은 조심스레 아이의 말을 받아 적듯 되짚었다.
“효철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여름방학에… 할머니 댁에 다녀왔어요…”
그때였다.
칠판을 가르며 번개처럼 내리 꽂히는 외침.
교실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말 똑바로 하라고 했잖아! 목소리 크게 안 해?”
효철이 엄마였다.
그 고함은 한 마디였지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교실의 공기조차 얼어붙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든 시선이 교실 뒤쪽의 효철이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효철이는 움찔하며 작아졌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얼음장 같았다.
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다.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이건 아니잖아….’
아이는 그 자리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날 이후, 효철이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문은 곧 퍼졌다.
“3반에 이상한 엄마 있다며?”
“3반 선생님이 힘들어했던 이유, 그 엄마 때문이었대.”
“진짜 그랬나 봐. 교실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했다네.”
“학교에서 그럴 정도면 집에서는….”
하지만 하영은 안다.
무서운 건 엄마의 고함이 아니었다.
더 무서운 건-
그 순간, 아무도 아이의 편에 서지 않았던…
교실의 침묵이었다.
말이 사라진 자리,
책임도 함께 사라져 버린 공간.
모두가 알고도 고개를 돌린 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