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을 시험하는 아이들

아픈 손가락 Episode 2.

by 차미레
담임의 말은 듣지 않던 아이들, 그러나 낯선 선생님의 한마디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진짜로 원한 건, 혼내는 어른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해 주는 ‘누군가’였다.


하영이는 교무부장이었다.

학교에 문제가 생기면 망설이지 않았다. 직접 나섰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3학년 5반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점심시간이 끝나도 교실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그걸 일부러 한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이건 그냥 두면 안 된다.”

하영이는 고민할 틈도 없이 교무실에서 일어나 3학년 5반으로 향했다.

교무부장이기 전에, 한 사람의 교사로서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특히 그 반의 담임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선생님은 하영보다 선배였다.



#충격의 첫 장면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혼란이었다.

종잇조각과 쓰레기, 흩어진 책가방과 준비물들.

담임이 교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아이들은 책상을 밀며 장난을 치고 있었고, 나머지는 구경만 하고 있었다.

책상은 제멋대로 흩어져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쓰레기 더미까지 쌓여 있었다.

그 순간, 교실엔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한 아이가 소리쳤다.

“우와! 방송조회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선생님이다!”

웅성거림이 퍼졌다.

하영은 차분하게 말했다.

“자리에 앉아볼까? 3학년이면 할 수 있지? 잘하네.

이제 주변 정리해 볼까? 깨끗한 교실에서 공부하면 기분이 더 좋을 거야.

3분 줄게.”

아이들은 머뭇거리다가, 하영의 시선을 느끼고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영은 문득 의아했다.

‘담임의 말은 듣지 않는다는 아이들이 왜 내 말엔 순순히 따를까?’



#다시 무너지는 교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3학년 5반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SOS였다.

하영이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은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빈자리가 있었다.

10분쯤 지나자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늦게 들어온 친구들, 나랑 이야기 좀 하자.”

하영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왜 늦었을까?”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들어오기 싫어서요.”

“왜 그랬을까? 수업이 재미없어서?”

아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영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약속 하나 할까?

정해진 시간에 교실로 들어오는 거야.

대신, 들어오고 싶은 교실이 되도록 선생님도 도울게.”

아이들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은 시간을 조금씩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담임과 함께 있는 수업 시간에는 여전히 말이 많고, 장난도 심했다.

“하영 선생님 없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요.”

담임의 한숨 섞인 말에 하영은 고민에 빠졌다.

문제는 단순히 아이들만의 태도가 아니었다.

담임 역시 많이 지쳐 보였다.

하영은 하루 동안 3학년 5반 수업을 지켜보기로 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교탁 근처에서 장난을 쳤고,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담임이 화를 내자, 아이들은 오히려 더 장난을 쳤다.

심지어 몇몇은 교탁 밑으로 기어들어가기까지 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정말 많이 지치셨구나.’

하영은 생각했다.

아이들은 교사의 상태를 민감하게 감지한다.

약점을 보이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선을 넘는다.



#장난의 이면


하영은 문제 행동이 잦은 아이들을 불러냈다.

“담임선생님이랑 있으면 왜 장난을 칠까?”

한 아이가 솔직하게 말했다.

“재미있어서요. 선생님이 당황하면 더 웃겨요.”

하영은 물었다.

“그럼, 선생님 기분은 어떨 것 같아?”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선생님도 너희랑 잘 지내고 싶으실 거야.

그런데 계속 장난을 치면 속상하지 않을까?”

한 아이가 불쑥 말했다.

“근데… 선생님은 맨날 화만 내요.”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영은 깨달았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품고 있었다.



#약속, 그리고 작은 변화


“그럼, 너희가 직접 교실 규칙을 정해 보면 어떨까?”

아이들은 시큰둥했지만, 하나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오면 인사하기.”

“수업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

“일부러 늦게 안 들어오기.”

그렇게 ‘3학년 5반 약속’이 만들어졌다.

하영은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아이들과 개별 상담도 진행했다.

“오늘 수업 어땠어?”

“선생님이 화 안 내니까 덜 재미있었어요. 근데... 그래도 수업은 좀 더 편했어요.”

“그럼, 선생님이 덜 화내려면 너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수업 시작할 때 자리에 바로 앉아서 조용히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담임과의 대화


하영은 이 이야기를 담임선생님께 전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 덜 화내길 바라요.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해 보세요.”

담임은 잠시 망설이더니, 작게 말했다.

“하영 선생님 이름만 꺼내도 아이들이 말을 들어요.

그런데… 그런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요.

부끄럽기도 하고…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그 목소리엔 씁쓸함과 자기 의심이 배어 있었다.

하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이건 단순한 수업 운영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뢰를 잃었다고 느끼는 교사의 절망이었다.



#온기, 틈새로 스며들다


그날 이후, 담임은 조금씩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몇몇 아이들이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담임은 놀란 듯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 교실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장난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경계를 알아가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하영은 조용히 말했다.

“아이들에게 변화가 생긴 건,

선생님이 먼저 그들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담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아이들에게 단단하게만 대하려 했어요.

그런데… 하영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됐어요.

단단함 안에도 이해가 필요하다는 걸요.”



#교실은, 다시 살아난다


수업이 끝나고, 하영은 조용히 교실을 떠났다.

뒤돌아보니 아이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제 조금 더 여유 있게 교탁 앞에 서 있었다.

이 교실은 더 이상 혼자 버티는 공간이 아니었다.

하영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변화는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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