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Episode 2.
평범했던 오후,
하지만 그 평온은, 흙탕물 범벅이 된 아이 하나로 산산이 깨어졌다.
우리 학년 최고의 스타, 민수가 운동장에서 다른 학년과 실랑이를 벌였다.
비 갠 오후긴 했지만, 운동장은 젖어 있었고, 민수는 그곳에서 뒹굴면서 옷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오해의 소지가 크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운동장에서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하지만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민수 엄마가 민수의 손목을 강하게 낚아채며 교실로 들이닥쳤다.
민수는 순한 양이 된 채 뒤따라 들어왔다.
이미 하교와 동시에 하영은 민수엄마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말했다.
지금 학교에 온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수 엄마는 학교로 왔다.
“선생님, 그 가해자 엄마는 어디 있어요?”
“어머님, 지금 우리 반 학생끼리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제가 직접 그 엄마랑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에요. 그 엄마는 그 학생의 담임 선생님께서 연락을 하고 이후 상황을 조정하고 계십니다.”
민수 엄마는 하영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숨을 내쉬며, 쌓이고 늘려있던 감정들이 마침내 터질 듯 일렁였다.
처음엔 조용하게, 그러나 점차 목소리가 커져갔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그저 민수만 나쁜 애로 만드는 거잖아요.”
민수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피해자예요. 피해자!”
하영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감정의 트리거라는 걸 직감했다.
하영은 그 말에 동요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민수 엄마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녀의 입술은 떨리며 굳어지고, 손끝은 가슴을 움켜잡듯이 강하게 쥐어졌다.
“그동안 학교에서 뭐라고 했죠?
민수가 잘못하면 사과하라 했고, 다른 애들한테 피해를 주지 말라했죠.
그런데 왜 이번엔 이런 일이 벌어졌죠?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죠?”
민수 엄마는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하영이 침착하게 답하려 했지만, 그녀의 말은 이미 흘러넘쳐 버렸다.
“이제 와서 선생님은 그 아이가 먼저 민수를 건드렸다고요?
그게 뭐가 중요하죠? 제 아들이 다쳤어요! 다쳤다고요!
옷도 망가졌고, 그게 얼마나 큰 일인데!”
민수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억제된 분노와 상처가 엉켜진 것이었다.
“그동안 이렇게 살았어요.
학교에서는 저를 사람 취급 안 했고, 민수는 늘 문제아였어요.
언제부터냐고요? 처음부터예요.
내 아들이 정당한 대우를 못 받은 게 언제부터였는지, 선생님은 아시기나 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굳어지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 느껴졌다.
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기다렸다.
민수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내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과거의 상처들이 지금의 상황에 얽혀 있었다.
“왜 아무도 내 아들 편을 들어주지 않죠?”
민수 엄마는 점점 더 목소리가 떨리며 낮아지더니,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선생님도 결국 똑같아요. 내 아들이 맞았다고!”
하영은 민수 엄마의 목소리에서 그동안 민수 엄마가 겪었던 고통과 불만, 그리고 그로 인한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일이 트리거가 되어 민수 엄마가 자신이 겪어온 아픔을 하영에게 풀어내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내가 내 아이를 지킬 거예요. 내 아들, 내가 제대로 지켜줄 거예요!”
그 순간 하영은 민수 엄마가 진정으로 민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감정과 상처를 되갚으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다만 일이 커지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지만….
다음 날 기어이 일이 벌어졌다.
민수 엄마가 민수를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하영은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민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민수 엄마는 마지못해 문을 열어줬고, 하영은 거실에서 민수가 내복을 입고 스마트폰으로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님, 민수가 많이 아픈 건가요? 병원은 갔다 왔어요? 뭐라던가요?”
하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수 엄마는 교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그냥 오늘은 학교에 보내기 싫었어요. 마음이 다친 것도 아픈 것잖아요.
이 문제 해결안해주면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도 뭐, 집에서 편하게 있는 게 좋겠죠."
민수가 맞은 건 분명했지만, 이 상황은 민수 엄마가 억지로 만든 것이었다.
“민수 어머님, 학교는 보내셔야죠. 이건 아니에요.
학교에 다니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게 어떨까요?”
민수 엄마는 여전히 뻔뻔하게 말했다.
“그럼 뭐 어때요? 저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선생님도, 학교도, 모두 민수에게만 문제를 씌우고, 제 아들만 못되게 만드는 걸 보니 화가 나서 이러는 거예요. 학교가 제대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어디 있나요?”
하영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 엄마는 단지 자신이 그동안 받은 설움을 학교와 학부모에게 되갚으려는 것일 뿐이었다.
하영은 잠시 말을 아꼈다.
민수 엄마가 여전히 감정에 휘둘리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더 이상 무리하게 대립할 필요는 없었다.
“어머님, 학교의 방식으로, 시스템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저는 그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민수 엄마는 하영의 말을 무시하고 소리쳤다.
“선생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받은 대우는 어떻게 해요?
이제는 제가 내 아이를 지킬 거예요!”
민수 엄마는 민수를 지키고 싶다고 했지만, 그 눈엔 민수가 없었다.
오직, 민수 엄마인 자신만이 자리했다.
하영은 잠시 침묵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민수 엄마가 지금까지 쏟아낸 불만들은 이미 하영의 이해를 넘어서 있었다.
하영은 민수 엄마가 과연 진심으로 민수를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동안 받았던 상처를 아이를 통해 되갚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학교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학교에 보낼지 결정할게요.
당분간 학교에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제대로 해결해주시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할 겁니다.”
하영은 민수 엄마의 말을 듣고 한 번 더 깊은숨을 내쉬었다.
일이 어떻게든 해결되길 바랐다.
이 싸움이 끝나기를 바라며 하영은 조심스럽게 민수의 집을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하영은 자신이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감정이 얽히고설킨 이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자신은 그저 담임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이곳으로 쏠려 오는 현실.
“담임인 죄밖에 없는데...”
등 뒤로 닫히는 현관문 소리가, 그녀를 또 하나의 전쟁터로 밀어 넣었다.
아이를 지키겠다는 말 뒤에 감춰진 분노, 그리고 그 화살 끝에 선 사람은 언제나 하영이었다.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아주 조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 믿음마저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하영은 한숨을 삼킨 채,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학교로 돌렸다.
학교로. 끝나지 않는 전쟁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