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쓰담 22. ‘왜?’라는 물음표 허용하기
“왜?”라고 물어도 괜찮은 하루였으면 좋겠다.
세상을 알고 싶은 마음은, 늘 그렇게 조심스럽게 시작되니까.
‘왜?’라는 물음에 조금 덜 당황하고, 덜 불편해할 수 있기를.
“왜?”
짧지만 강한 질문.
아이들은 세상을 배울 때 이 한 마디로 시작한다.
“왜 하늘은 파래?”
“왜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해?”
“왜 꼭 그렇게 해야 해요?”
그 순수한 물음은 자라면서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왜?’라고 묻는 대신 “아, 네.” 하고 넘어가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받아들이게 된다.
왜냐하면, 물어보는 게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왜요?”라는 질문은 때로 도전처럼 느껴진다.
이유를 묻는 순간, 나는 가끔 당황한다.
내가 정말 그 답을 알고 있는지,
그 설명이 아이를 납득시킬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도 어릴 적 ‘왜?’라고 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들었던 대답.
“그냥 그렇게 하는 거야.”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왜?’라는 질문을 꾹 눌러가며 살아온 건 아닐까.
“왜 그랬어?”
“왜 꼭 그렇게 해야 해?”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왜?’라는 말에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말은 때로 질문이라기보다 항변처럼 들리기도 하고,
대화를 이어가기보다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어느새 ‘왜?’를 꺼내기 전에 눈치를 살피고,
‘왜?’라고 묻는 아이에게 조용히 눈짓을 주기도 한다.
‘왜?’라는 질문은 멈춤의 순간이자,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시작이기도 하다.
멈추고, 돌아보고, 다시 묻는 것.
그 작지만 단단한 물음이 우리를 앞으로 이끈다.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왜 이 말을 하려고 하지?”
“왜 지금 이 감정이 올라오는 걸까?”
“왜 나는 이 아이에게 유독 더 마음이 쓰이지?”
그 물음이 나를 더 정직하게 만든다.
더 진심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하고,
때로는 내 안에 오래 머물던 상처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 내 안에 떠오른 ‘왜?’라는 작은 물음 하나쯤은
그저 흘려보내지 말고, 조용히 안아줄 수 있기를.
질문하는 나를, 질문하는 아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