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기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대해서 한 점 부끄럼이나 아쉬움이 없다. 오히려 나 자신이나 부모님 등을 덜 챙겨서 아쉬운 감정은 조금 있지만(그래도 아무런 문제 없이 그냥 평범한 날들이었다). 어린이집을 적응시켜야하는데 일찍 어린이집에 가는 아기가 짠해서 아기는 첫날부터 안울고 적응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을 어린이집 카페에서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다가 일찍 데려왔다. 너무 아기인 것 같아서 반찬이나 간식도 다 직접 해서 싸서 보냈다. 매일 아침, 여름에는 혹시나 상할까봐 노심초사, 한겨울에는 보온도시락에 뜨거운 물을 받아 데웠다가 물을 버리고 그 안에 도시락을 싸서 보냈다. 남편이 고3 도시락도 그렇게 정성은 안들이겠다고 할 정도로. 양가 부모님에게도 아기를 거의 안 맡기고 아기를 봤기 때문에 (주변에는 이런 경우가 많지 않아서 내 지인들은 나의 의외성과 담대함에 놀라곤 했다. 대학 동창들은 안믿긴다고도 했다) 아기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알았고, 또 그래서 내가 직접 다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유난을 떨고 복직하니까 어땠냐고? 더 열성 극성이 되었다. 이젠 내가 진짜로 시간을 별로 못 보내니까. 시터가 오면 데워서만 먹일 수 있도록 밥, 반찬 기본3가지, 국을 준비했다. 혹시나 반차나 연차가 생기면 무조건 집에 와서 아기랑 시간을 보냈다. 내 옷은 지그재그에서 싼 거 사고 새벽 배송받아서 그날 아침에 그냥 탈탈 털고 입고나가는데, 아기는 물병 하나, 간식하나도 엄청신경써서 골랐다. 시터가 혹시나 집안일하면서 아기를 덜 놀아줄까봐 새벽에 일어나서 집안일까지 하고 잤다. 남편이 불나방이냐고 할 정도로 너무너무 열심히 했다. 그리고 지금도, 아직도 비상시가 아니라면 모든 반찬은 내가 하고 등원도 내가 직접 시킨다는 원칙은 깨지 않고 있다.
복직해서 다른 워킹맘들과 알고 지내다보니 각자 다 나름 살아가는 방법은 있었다. 아침 7시반부터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찍 퇴근해서 직접 보는 엄마, 회사 어린이집을 보내는 엄마, 재택하는 엄마, 주중 3일 만 일하는 엄마, 친정엄마가 같이 사는 엄마, 시부모님 집에 아기를 맡기고 주말에만 만나는 엄마, 등원도우미 쓰는 엄마, 남편이 육아를 많이 하는 엄마, 입주 시터 쓰는 엄마 등등. 그리고 그 중에서 다들 입을 모아서 내가 제일 빡세게 일하고 빡세게 육아한다고 한다. 양가 도움이 거의 없고(친정부모님이 등원을 도와주시는 날도 꽤 있는데 대부분 혼자서도 갈수있도록 준비는 미리 내가 해두는 편, 시부모님이 오셔서 보시는 동안에도 내가 같이 아기를 챙기는 편 등) 남편도 바쁘고(진짜 너무 바쁘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주말에도 자주 집을 비우고 1박2일은 애교, 6박7일도 일 때문에 혼자 해외간다), 입주 안쓰고 시터에게 최소한 만 시키며 집안 살림 및 반찬을 다 챙기는 나(그러려면 아기 재우고 나와서 해야하기 때문에, 가끔 아기가 늦게자는 날 같이 잠들면 새벽 서너시에도 소리안나게 조심하며 국을 끓인다) 그러면서도 아기가 아쉬움을 느낄까봐 조심하는 나, 혹시나 아기가 엄마의 부재를 서운해할까봐 최선을 다해 신경쓰는 나, 아기라는 이유 하나로 퇴사를 고민하는 나.
다들 나한테 그런다. 그래도 변호사라는 직업이 너무 아까운디 어떻게 일을 그만두겠냐고. 근데 지금 하는 건 계속 하다보면 병날 정도의 로드같다, 그러니까 그냥 애기한테 덜 잘해줘라. 반찬도 대충 사먹이거나 김에 계란만 줘도 된다, 어린이집에서 잘 먹고 다닌다(어린이집에서 먹이는 것보다 내가 잘해먹인다고 확신함 = 어린이집이 나보다 잘해먹인다고는 못 믿음), 그냥 죽이되든 밥이되든 남편한테 맡겨두고 나가라(일단 남편이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굳이 아기랑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싶지 않아서 웬만하면 안나감), 어차피 애는 기억 못한다(돌쟁이 아기가 기억은 못해도 1년 전에 애 낳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
나를 위해 하는 말이고 일리가 있는데도 나는 그렇게 안하는게 너무 힘들다.
예전에 워킹맘은 능력있고 많이 배울수록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육아를 어느정도 포기한다는건 많이 벌 수 있으니 하겠지, 그럼 아무래도 높은 직위나 돈을 많이 받는 직업이겠지, 즉, 워킹맘에게 워킹은 자기의 능력과 직업에서 오는 보람에 비례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좀 안일한 생각이기도 했는데, 적게 벌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엄마는 굳이 워킹맘을 안할거고, 그 반대는 워킹맘을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건, 워킹맘에게 워킹은 능력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워킹맘을 하려면, 특히 풀타임 워킹맘이 되려면 “내가 육아를 안하고 남에게 맡겨도 되는 마음”이 워킹의 주된 요소인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능력이나 월급보다는 그냥 개인의 성향일 뿐이다.
나처럼 아기에게 애착이 강한 게 결코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특히 커서도 아기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다. 혹시나 아기를 돌보기 위해 전업을 결정하더라도, 그건 아기가 못참아서가 아니라 내가 못참아서 전업을 선택하는 것이니까 아기는 먼 훗날에라도 모르길 바란다. 당연히 이 모든 걸 아기는 기억못한다는 걸 알고 있고, 지금 나 좋자고 하는 육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