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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위 Feb 13. 2022

한국어가 쉽다고요?

난 몰랐어 한국어가 이토록 다채로운지


한국어 교원 자격증 2차 면접시험에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 있다. 한국어 교사가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0년 전의 나도 면접시험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당시 나는 예상 질문 중에 몇 가지를 뽑아 달달 외운 상태였고 덕분에 막힘없이 (별다른 사고의 흐름이 필요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한국어 교사는 학습 현장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학습자를 만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포용력과... 블라 블라 블라... 또한 지식 전달자로서의 한국어에 대한 이해와 외국어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충 이런 내용의 뻔한 대답이었고 한국어 교사가 아닌 어느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그럴싸한 모법 답안이었다. 10년 전, 현장에 이제 막 투입된 햇병아리 1년 차 한국어 교사였던 나는, 면접 때 아무 생각 없이 읊조렸던 한국어 교사의 기본 자질에 대해 완벽히 이해는 못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동의는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10년 차 한국어 교사가 되어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나에게 누군가 다시 한국어 교사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에 대해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난 무조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요. 딱 두 가지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첫째, 한국어는 어렵다. 둘째, 정말 어렵다. 이것만 알고 있으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한국어 교사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라고. 이건 농담이 아니다. 한국어는 어렵다. 정말 어렵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수집하듯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영어나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혹은 일본어나 태국어, 베트남어 등등 심지어 아랍어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외국어가 그들의 수집 대상이다. 외국어를 두세 개씩 많게는 네다섯 개씩 공부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 소위 말하는 외국어 능력자들이 각 반마다 적지 않다. 개중에는 외국어 전공자들도 많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이상형 월드컵 하듯이 물어본다. "일본어가 어려워요? 태국어가 어려워요?... 그럼 베트남어가 어려워요? 한국어가 어려워요?"


물론 한자문화권 나라 한정이다. 따라서 그 어렵다는 러시아어나 아랍어는 아쉽지만 이상형 월드컵에서 열외다. 중국어를 사용하는 대만인 학습자에게는 같은 한자문화권 국가의 언어 난이도를 비교하거나 태국어, 베트남어와 같은 비슷한 성조 언어의 난이도를 물어볼 때 비교적 대답하기 쉽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원빈이 잘생겼어요? 금성무가 잘생겼어요?"와 "원빈이 잘생겼어요? 헨리 카빌이 잘생겼어요?" 이 두 가지 질문에서 어떤 질문이 더 대답하기 수월한지.


어쨌든 한자문화권 나라 한정 어려운 언어 대회 우승자는 항상 한국어가 차지한다. 축하합니다. 짝짝짝. 외국어를 많이 공부해 본 학생들도 한국어는 참 난관의 언어인 것이다. 왜 어려운지 물어보면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가나다라를 가까스로 뗀 기초 단계에서는 한국어 발음이 어렵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발음과 표기가 달라서 단어를 외울 때 어렵다는 학생들도 많다. (이건 모국어 화자인 우리도 초등학교 받아쓰기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기초 단계가 끝나고 초급부터 고급까지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학생들의 대답은 "한국어 문법은 많아도 너무 많다"라는 것.


한국어는 어미(語尾), 즉 '말의 꼬리'를 통해 다양한 뉘앙스를 전달하는 다채로운 언어이다. 어간(語幹)이라 불리는 '말의 줄기'에 다양한 꼬리를 붙여 화자가 전달하고 싶은 의미를 표현해 내는 구조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동사 '먹다'를 예로 들어 보겠다. '먹다'의 어간은 '먹-'이다. 이 줄기에는 '음식을 섭취하다'라는 기본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 줄기에 수백 가지의 꼬리를 붙이면 말하는 상황, 청자의 나이와 사회적 위치 혹은 화자와의 친밀도, 화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시제, 의미, 뉘앙스가 360도 달라진다.


마치 가면극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연기하는 배우 자체는 동일인이지만 그 배우가 다양한 가면을 쓸 때마다 역할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한국어는 여러 가면을 쓰고 학습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먹어요, 먹었어요, 먹을 거예요, 먹어, 먹습니다, 먹을까요, 먹고 싶어요, 먹으려고 해요... 한국어를 갓 배운 학습자들이 배워야 하는 기초 어미만 대충 생각나는 대로 몇 개만 늘어놓아도 이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국어 학습자는 '먹다'의 기본 의미 외에도 '먹-'의 뒤에 붙어야 하는 다양한 말의 꼬리를 배워야 한다.


일본어와 태국어를 배운 경험이 있고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에 따르면 한국어가 그중에서도 제일 배우기 어려운 언어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같은 뜻을 나타내는 비슷한 한국어 문법이 너무 많다는 것. 특히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한국어 문법은 지나칠 정도로 많다. -아/어서, -으니까, -기 때문에, -다가, -더니, -느라고, -는 바람에, -고 해서, -아/어서 그런지,-기에... 등등등. 이 수많은 말의 꼬리가 영어로는 'because', 중국어로는 '因為'로 간단하게 번역되니 학생으로서는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굳이 많은 문법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한 학생 말에 따르면 한국어는 무척이나 비효율적이란다.


하지만 한국인 입장에서 변명을 하자면 각 꼬리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사용되고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어서 화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과자를 먹어서 배가 불러요'와 '과자를 먹어서 그런지 배가 불러요.'사이에는 한국인만이 알 수 있는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어서'는 그저 단순한 인과관계만을 표현해 내는 반면에 '-어서 그런지'라는 화자가 그 원인에 대한 불명확한 태도를 표현할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지금 내 배가 부른 이유가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과자를 먹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뉘앙스가 말의 꼬리 '-어서 그런지'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뉘앙스의 차이는 외국인 학습자가 알 턱이 없으므로 교사인 내가 일일이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뉘앙스만 설명해 주면 내 일이 훨씬 수월할 텐데 안타깝지만 각 꼬리마다 문법적 제한이 있어서 그것도 또한 덧붙여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아/어서' 뒤에는 서술문이 어울리고 '-으니까' 뒤에는 권유문과 명령문이 어울린다든지. (그래서 '비가 와서 우산을 가지고 가세요.'는 틀린 문장이 된다) '-느라고' 뒤에는 안 좋은 결과가 온다든지하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고 1등을 했어요'는 틀린 문장이 된다) 이렇게 나의 추가 근무 사항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문법을 하나 배우면 학생들이 만들어 낸 틀린 문장을 가지고 왜 틀렸는지 설명을 다시 해 주어야 하는 시간이 온다. 분명히 맞는다고 생각한 문장이 틀려서 조금은 시무룩해진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 같은 말이 있다. 어때요? 이해가 됐어요? 괜찮아요? 너무 어렵죠? 미안해요.


한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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