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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위 Feb 11. 2022

1과 자기소개

저는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다. 투잡이 아닌 풀타임으로 대만에서 10년째 한국어를 가르쳐 왔다. 가끔 내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긴다. 적지 않은 분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어떻게 따는지, 이 직업의 전망과 자신이 이 직업에 적합한지를 물어보시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드려야 할지 몰라 내 수준에서 해결 가능한 것만 대답을 해드렸고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못 해드렸다. 대답을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따는 방법은 인터넷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잠깐만 발품을 팔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직업에 대한 전망은 솔직히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때는 학생이 많다가도 학생이 없어서 힘들 때도 있다. 얼마 전 한 구직 사이트에서 10년 뒤에 사라질 직업을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1위로 번역가가 꼽혔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결과였다. 물론 번역 AI가 1차적으로 러프하게 번역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마지막 검수가 필요하다.  


특히 말을 다루는 직업은 그렇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언어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외국어 교육 AI로 개발된 앱이 나오고 있고 조금씩 사용하는 추세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사용자의 만족도는 아직 물음표다. 하지만 10년 후, AI가 고도로 발달이 된다면? 그때는 나도 모르겠다. 다 같이 손잡고 다른 직업을 찾아볼 수밖에. 자 그다음. 마지막으로 제일 어려운 질문. 한국어 선생님이 제 적성에 맞을까요?


이 질문이 난이도 최상인 이유도 간단하다. 전 당신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10년 동안 계속해 온 나도 사실 이 직업이 내 적성에 100% 맞는지 어떤지 아직도 긴가민가하다. 웃기지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하루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미친 듯이 좋다가도, 다른 날은 퇴근하면서 늦었지만 다른 직업을 찾아볼까 싶을 정도로 이 직업에 대한 의심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A와 B가 어울리는지 알고 싶을 때, A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 반대인 B에 대해 알고 있다면 약간의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한국어 교원이 어떤 직업인지 이해할 때 이 직업이 적성에 맞는지 조금이라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 그럼 한국어 교원이 어떤 직업인지 써 보자. 한국어 교원을 꿈꾸고 계신 분에게 약간의 충격 요법을 주어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선택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이 글을 써 보자. (농담입니다)  


우선 혼란을 막기 위해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한국어 교원의 범주를 먼저 설정하려 한다. 한국어 교원에도 여러 범주가 있다. 국내에서 일하는지, 해외에서 일하는지. 투잡인지 풀타임인지. 어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지. 어느 기관에서 일하는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한국어 교원은 해외에서 일하는 시급을 받는 강사며, 투잡이 아닌 풀타임으로 일반 목적의 학생들, 다시 말해 한국어 전공자가 아닌 취미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를 말한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읽어나가셨으면 한다.


가끔씩 10년 차 한국어 강사로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한국어를 꽤 오래 가르쳐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문법이 있을 때.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러한 문법이 존재하는지 몰랐을 때. 모국어 화자인 우리는 한국어 문법 체계를 전혀 모르더라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문법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말해 왔으니까. 원래 그랬으니까. 따라서 우리는 말을 할 때 동사 '부르다'가 어떻게 '불러요, 부릅니다, 부르는'이 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자기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수천수만 가지의 단어를 입 밖으로 뱉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은 그렇지 않다.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의심의 과정이다. 물론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동양 문화권 학생들은 자신이 구사한 문장이 틀릴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낸다. 자신의 의심에 못 이겨 말을 얼버무리는 학생이 있다. 말을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도 있다. 이게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감당할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어찌나 찡한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는다. "아니에요. 맞아요. 당신이 말하려고 하는 게 맞아요."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도움을 주는 것이 한국어 교원의 역할이다.


그러나 모국어 화자로서 모국어를 자연스레 구사할 수 있는 것과 외국어로서 접근한 모국어를 외국인에게 설명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가장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가나다를 막 뗀 기초 학생들이 배우는 1과 자기소개의 예문.


1) 저 의사예요.

2) 선생님 한국 사람이에요.  


왜 문장 1)의 조사는 '-는'이고 문장 2)의 조사는 '-은'인가? 둘 다 똑같은 보조사인데. 왜 문장 1)은 '-예요'이고 문장 2)는 '-이에요'인가? 둘 다 똑같은 서술격 조사인데... 이걸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게 한국어 교원의 역할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수백 개의 어미와 수천 가지의 한국어 단어의 각기 다른 쓰임들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질문 공격에 적절히 방어를 할 수가 있다.


1. 선생님, '앋, 앝, 앗, 았, 앚, 앛, 앟'의 발음이 같은데 왜 다른 글자를 쓰나요?

2. '참여하다'와 '참가하다'는 무슨 차이가 있나요?

3. 선생님, "비가 와서 우산을 가지고 가세요."가 왜 틀린 문장인가요?

*실제로 학생들에게 받아 본 질문들입니다.


만약 위의 질문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면? 축하합니다. 당첨되셨습니다. 당신은 완벽한 한국어 선생님 감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건 외국어 실력. 위와 같은 학생의 질문에 해당 국가의 언어로 대답이 가능해야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한국어 교원은 예외일 수 있으나 해외에서 일하려는 교원에게 외국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른 국가는 모르겠지만 동양인 학습자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곳 대만 학생들은 모국어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국어를 못하거나 초급 중국어밖에 구사할 수 없어서 중국어로 수업 진행이 불가능한 교원은 학생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나는 국어국문과 중어중문을 복수 전공했기 때문에 중화권에서 일하는 한국어 교원이라는 직업에 특화되어 있는 케이스였다.


하지만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외국어를 할 수 있다고 해서 한국어 교육을 잘할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외국어 강사는 멀티 플레이어이다. 언어 교육의 최종 목표는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을 동시에 제고하는 것인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에 부합하는 다양한 형태의 강의 자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PPT를 만들고 워드로 학생들에게 배포할 핸드아웃을 만드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문자보다 영상에 익숙한 MZ세대 학생들을 위해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자막을 넣는 일들도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국문과라서, 외국어 전공자라서 한국어 교육에 우위를 선점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지신 분들이 한국어 교원이 해야 하는 업무 능력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강사는 시급을 받는 서비스직이다. 말 그대로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 서비스를 받은 소비자들이 그 시간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발명한 위대한 민족 문화유산인 한글을 통해 우수한 한국 문화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웅대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이런 생각은 슬프지만 이제 눈곱만큼도 없다. 성인으로서 나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이상, 해외에서 살아내야 하는 이상, 밥벌이로써의 한국어 강사는 응당 어때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어 강사는 한국문화사절단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만으로도 해낼 수가 없다. 기꺼이 자신의 돈을 내고 나의 서비스를 소비하겠다는 타인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감정 노동에 더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그날 기분이 별로여도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동일한 자세로 수업에 임해야 한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수업과 9시간 떠들고 난 후의 저녁 수업의 질은 당연히 같아야 한다. 일정한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니까. 카톡으로 물어보는 학생의 질문에는 24시간 내로 대답해야 한다. 일종의 고객 응대 CS이다. 너무 자본주의적 사고이지 않나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글이 너무 길다. 긴 글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을 위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어는 정말 어렵다. 외국어 교육과 한국어 자체에 대한 숙련된 지식이 필요하다.

2. 외국어 실력은 필수다. 그렇지만 외국어만 잘하면 되는  아님을 기억하라.

3. 한국어 강사는 서비스직이다. 어느 정도의 감정 노동은 감수해야 한다.

4. 강한 멘탈. 외국에서 생활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달프다.


4번은 정리하다가 생각나서 넣어 봤다. 역시 해외에서 일하시는 한국어 교원에게만 해당하지만 타국에서의 삶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해외 생활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일차적으로 생각이 미칠 수 있는 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라는 걸 나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그 자체도 힘든데 음식이나 기후가 안 맞거나 친구가 없을 수도, 비자 문제가 해결이 안 되거나 학생 수가 부족해 수업을 못 열어서, 시급이 너무 낮아서 생활비에 허덕일 수도 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생활력이 강하신 분들에게는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외국 생활은 그것 자체만으로 힘들다는 걸 언급하고 싶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무슨 세상에서 제일 힘든 직업인 것처럼 잘 포장(?)했지만 나같은 사람도 10년간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는 걸 보니 또 그런건만은 아닙니다. 여러분, 희망을 가지세요. 이렇게까지 썼는데 그래도 한국어 강사가 하고 싶다는 당신. 환영합니다. 한국어 교육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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