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시대의 철학

절망의 시대에, 의지를 말하다 —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우리에게 묻는 것

by Way Maker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인생은 고통과 결핍 사이를 오가는 진자 운동이다.”


그의 세계는 철저히 냉소적이었다.
세상은 의지라는 맹목적 충동에 의해 움직이며, 그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고, 좌절하고,

다시 욕망한다. 그는 이 끝없는 고통의 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욕망의 부정을 택했다.

그의 철학은 일종의 ‘멈춤의 미학’이다.
욕망을 버리면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그것이 쇼펜하우어가 본 구원의 길이었다


니체는 차라투르스를 빌어 말한다.

“신은 죽었다.”


그 말은 단지 신앙의 부정을 넘어,
“더 이상 외부의 권위나 도덕에 의지하지 말라”는 선언이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부정한 그 ‘의지’를 다시 끌어올려
“의지 자체를 예술로 바꾸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의지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초월하려는 창조의 힘이었다.
그는 인간을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하는 존재”로 보았다.


이 두 철학자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시대에 유행?하는 이유는.

오늘의 인간은 쇼펜하우어적 절망 속에서 살고 있고 니체의 창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끝없는 피드, 성취, 비교, 자극 —
이 세계는 욕망의 속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피로 속에서 우리는 점점 자기 혐오형 인간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대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Übermensch),
즉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만드는 인간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의, “멈춰야 산다.” 니체의, “창조해야 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두 문장의 균형이다.

멈춤 없는 욕망의 시대 속에서 가끔은 멈추기 위해 의지해야 하고,
또 가끔은 의지하기 위해 멈춰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절망과 창조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끝없이 피로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건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고통”을 견디는 인간이면서,
니체의 “창조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초상이다.


결국, ‘고통을 미루는 법’이 아니라
고통을 의미로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쇼펜하우어가 던진 절망 위에서,
니체가 건져 올린 희망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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