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이전시의 몰락 2
대행사가 소극적으로 보이는 순간은 대개 한 가지다.
문제를 제대로 못 잡았을 때.
아이디어는 많은데, 방향이 없는 상태.
결과물이 화려한데, 왜 해야 하는지가 흐릿한 상태.
그때 광고주는 이렇게 느낀다.
“저 사람들은 우리 비즈니스의 핵심을 안 잡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획의 1번 산출물은 ‘키비주얼’이 아니라 이거다.
문제정의 1문장
“누가 / 왜 / 지금 무엇에서 멈추고 / 그래서 어떤 손실이 발생하며 /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 한 문장이 정확하면 신기하게도
회의가 줄고,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제작이 덜 흔들린다.
반대로 이 한 문장이 틀리면, 모든 게 ‘열심히 하는데 이상한’ 상태로 간다.
광고주가 원하는 적극성은 “더 하겠습니다”가 아니다.
“이건 하지 맙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판단이다.
그래서 좋은 기획의 2번 산출물은 ‘아이디어 리스트’가 아니라,
이번 분기 선택의 설계
“이번에는 이것 하나만 붙잡겠습니다.”
“대신 이 3개는 버리겠습니다.”
이걸 못 하면 결과는 뻔하다.
캠페인이 늘어나고, 채널이 늘어나고, 제작물이 늘어나고,
대행사는 바빠지고, 광고주는 더 불안해진다.
결국 “소극적”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한다.
웃긴 건, 가장 바빴던 팀이 가장 소극적으로 보인다.
선택이 없으니, 의사결정권자가 느끼는 건 “확신의 부재”뿐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소한 마찰’은 클릭 몇 번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너무 표면적인 얘기다.
진짜 마찰은 이런 것이다.
광고에서 약속한 가치가, 온드에서 갑자기 다른 말이 되는 마찰
사람은 들어오는데 “그래서?”에서 멈추는 마찰
캠페인은 했는데, 브랜드가 남지 않는 마찰
성과가 나와도 다음 달에 재현이 안 되는 마찰
이건 담당자가 버튼을 바꿔서 해결하는 영역이 아니라,
종합 경험 디자인이 설계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전략적 마찰’이다.
종합 경험 디자인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유입은 왜 생기고
이해는 어디서 이루어지고
사용은 어떤 계기로 넘어가며
확신은 어떤 경험이 쌓일 때 만들어지고
그 결과 브랜드는 어떤 기억으로 남는가
광고는 이제 메시지의 경쟁이 아니라
기억을 만드는 경험의 경쟁이다.
그래서 “광고를 잘 만든다”는 말은
이제 “종합 경험을 설계한다”로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성과만 내면 파트너십이 길어질 거라고.
그런데 현장은 다르다.
성과가 좋아도 광고주는 불안하면 다시 비딩을 연다.
왜냐하면 대개 성과가 “우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성과’가 아니라,
성과가 나오는 이유를 설명하고 다음 달에도 재현할 수 있다는 통제감이다.
좋은 대행사는 보고서에서 숫자를 뽐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번 주 결론은 무엇인지
다음 주 무엇을 고정하고 무엇을 바꾸는지
리스크가 무엇이며, 어느 지점에서 개입할지
그래서 의사결정권자는 무엇을 결정하면 되는지
광고주가 “이 팀은 적극적이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봤을 때가 아니라
불안을 줄여주는 언어와 구조를 받았을 때다.
솔버타이징이든, 브랜드 엑셀레이터든, 뭐든 좋다.
이름은 유행이고, 포장이고, 마케팅이다.
하지만 시장이 진짜로 돈을 주는 건 딱 이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선택을 설계해서 의사결정을 만들고
종합 경험 디자인으로 고객의 흐름을 끊기지 않게 만들고
학습을 자산으로 남겨 다음에도 재현되게 만드는 것
이게 “기획의 퀄리티”다.
그래서 나는 광고시장이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은 여전히 열려 있다.
RFP가 계속 뜬다는 게 그 증거다.
다만 입장권이 바뀌었을 뿐이다.
예전엔 ‘멋진 광고’가 입장권이었다면,
지금은 종합 경험을 설계해 성장을 재현하는 능력이 입장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입장권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남고 싶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성장을 설계하는 기획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