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by 이율

나에게는 운전하기 전 항상 하는 습관이 있다. 바로, 로드맵으로 운전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길찾기를 한 다음, 그 길을 로드맵을 보며 따라간다. 이 곳에서는 다음 좌회전을 바로 하니 1차선으로 바로 가야겠구나, 아 여기서는 고가도로랑 갈라지는 길이니 미리 3차선으로 빠져야겠구나. 여기 주차장은 입구가 여기네. 이렇게 들어가면 되겠구나. 모르는 길일수록 계속 보면서 어디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한다.


그러나 운전을 해보는 분들은 아무리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도로 사정에 따라 교통 상황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안다. 1차선으로 가고 싶지만, 지하철 공사로 차선이 새로 그려져 있다거나 우회전을 위해 끝 차선으로 진입하면 저 앞에 보이는 정차한 택배 차량, 그리고 목표한 주차장에 도달했는데, 주차자리가 없을 때 갈 수 있는 주차장까지 항상 찾아보고 그 속에서 최적의 효율을 찾아낸다.


이렇게 나는 계획적이다. 아니, 계획적인 것 보다 강박이 있다. 먼저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려야 하고, 그대로 실행되어야 항상 잘 하고 옳은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로드맵을 보고 준비를 했는데, 돌발 변수가 생길 때 나는 아직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 그까이 주차, 아무 곳이나 대면 되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고, 뺑뺑 돌면서 내가 찾을 수 있는 안전한 주차장을 찾는다. 약속 장소랑 멀어져도, 나에게는 주차선이 있고 합법적인 그 곳을 찾기위해 빙글빙글 돈다. 빙글빙글.


그러나, 나의 이런 성향이 사업을 하면서 많이 바뀌고 있다. 항상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택시, 버스, 택배차, 사고 상황, 기상 재해 마냥 로드맵을 보며 따라갔을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사업에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항상 플랜 A가 안됐을 때를 대비해서 B를 생각해 놓지만, F, G까지는 생각 안 하는 데 꼭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가끔, 머피의 법칙인가 하는 생각에 오히려 반대로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래도 벌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비를 안 하기로 했다. 계획을 짰을 때 발생하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스트레스보다, 그냥 계획을 짜지 않고, 무계획으로 실행하며 대처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일을 두 번 하는 걸 싫어하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삶에 적용 시키면서 부터, 내가 나태해 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그때 대처하는 임기응변을 배우려 했던 상황이 오히려 원래 나의 강점이자 루틴이었던 철저한 예습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실행도 못하고, 계획도 못 지키는 그런 어긋나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배우는 것 같다. 나는 어느 한 전략보단 병행하며 실행한다. 계획을 세우고 시뮬레이션하고, 수정해야 한다. 이후 실행하고 나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계획을 유연하게 바꾸며 진행해야 한다. 중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상황에 따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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