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Fired!!!! Part 1.
나는 20대 후반의 결혼생활 시절, 극심한 우울증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로서 슈가크래프트를 배웠다. 하지만 조금 더 전문적으로 디저트에 대해 배우고 싶었던 나는 2013년 숙명여대에 있는 유명한 프랑스 제과학교를 들어가게 된다. 1년여에 걸친 교육 수료했지만 제과와 제빵은 엄연히 다른 분야. 나는 제빵 기술에 대한 부족함을 깨닫고 서울에 있는 일본 제빵학교의 분교에서 제빵기술을 익혔다. 또한 새로운 트렌드의 제과기술을 익히기 위해 틈틈이 계절학기 수업들을 들어가며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당시 나는 유능한 파티시에가 되고 싶었고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은 부족함이 많았던 나는 30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100살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딘가 주눅 들어 있었다. 때문에 정작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겁이 났다. 이혼으로 인해 얻은 아직은 피가 흐르던 생채기가 너무 아파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요리, 제과제빵 쪽이 텃세가 워낙 심하다는 악명을 무수히 들었던 터라 더욱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러한 혼돈 속에서 없는 돈으로 서울 모처의 어느 낡은 동네 뒷길의 낡은 상가 1층에서 나만의 작은 케이크 공방을 열었다.
온 가족과 함께 진땀을 흘려가며 셀프 인테리어를 해가며 힘겹게 공방을 개업했지만 정작 나는 그곳을 자주 열지 않았다. 나 자신을 추스리기에 급급했고 돈 버는 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돈을 벌고 사업을 키우는 것보다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무수히 하고자 했던 기억이다.
당시의 나는 제품을 팔기 위한 상품이 아닌 내가 만들고 싶었던 무목적의 것들을 만들었다. 완성된 제품들은 친구들과 간간이 들러주시는 손님들께 나누어 주었고 수익은 거의 없었다. 나의 작은 공간은 돈을 버는 곳보다는 소소한 정과 달콤함을 나누는 가게가 되어가고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지만 어디에서나 그렇듯 유별난 사람들도 많았기에 나는 결국 또다시 사람들에게 상처받았고 떠나고 싶어졌다. 이혼의 생채기가 온전히 치유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이래저래 가게를 운영할 의욕이 상실되어 버린 나는 도망치듯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
가게를 정리함과 동시에 나는 짐을 싸 언니가 살고 있는 캐나다 토론토로 향했다. 나에게 계속해서 상처만 주는 한국이 너무 싫었다.
내가 지냈던 캐나다 토론토에는 수많은 20대의 다국적 유학생들이 모여있었다. 그 안에서 두드러지지 않게 섞이고 소소하게 어학원에서 온종일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오는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모두가 학생이었기에 가난했던 언니와 형부, 그리고 나는 그 드넓은 땅에서 차도 없이 살았기에 모든 게 멀었고 오래 걸렸다. 그 바람에 우리는 늘 하루가 짧았고 무거운 짐들도 많이 들고 날라야 했지만 그 안에서 우리만의 행복을 찾아 즐겁게 살았던 기억이다. 특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셋이 모여 이것저것 만들어 먹고 깔깔대며 웃는 시간만큼은 나에게 많은 힘과 용기를 주었다.
꼬부랑글씨, 절반은 틀려먹은 영어로도 이렇게 살아지는데 내 모국어인 한국어로는 무엇을 못할 쏘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매서운 추위가 강렬했던 토론토에서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따뜻한 용기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나도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내고 싶었다. 어지간한 직장에 소속되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는 커리어 우먼.
하지만 내가 가진 자신감과 용기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고학력의 30대 초반의 여자가 새 출발을 하기에는 한국의 제과제빵 시장은 녹록지 않았던 것인지 나는 계속해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내가 바라는 이상과는 달리 언제까지나 백수로는 지낼 수 없었기에 나이 먹고 편견 없이 날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아 결국 나는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 준비 서적을 사러 간 날 파티시에가 되고 싶다던 열망의 끝자락이 날 붙들었다. 그토록 좋아 이것저것 공부하고 시간을 보냈으면서 결국 그 노력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무원 시험을 보며 도전도 안 해보고 포기할 것이냐는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나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기에 마지막이다 하며 이력서들을 쑤셔 넣었다.
그런데 모든 것은 포기할 때쯤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다.
드디어 넣은 이력서들에서 하나 둘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택한 곳들 중 하나가 내가 8년간 몸담았던 바로 '이곳'이다.
그곳에서의 내 면접은 늦은 밤 9시에 낙원동 한 어귀에 위치한 낡고 낡은 오피스텔 건물 한편에서 이루어졌다. 밤 9시의 면접이라는 게 너무 낯설기도 했고 마치 장기밀매라도 할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에 덜컥 겁이 났다.
붉은 녹이 슨 희끄멀한 푸른 회색빛이 감돌던 오피스텔의 철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A4용지 위에 처량하게 회사의 사명이 조그마하게 박혀있었다. 공포와 불안. 이것이 이 회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
누렇게 세월의 때가 묻은 벽면에 낡은 신발장과 함께 쓰여있던 메시지가 더욱 이상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들어오세요!"
삐그덕 철거덕 소리와 함께 다른 면접자가 방에서 나오고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갔다.
그곳엔 수많은 통조림 식자재들과 각종 잡동사니들이 녹슨 선반 위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마치 창고처럼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였다. 그리고 방 한편에는 제각기 다른 디자인의 의자들과 낡은 자작나무색의 길고 커다란 책상이 놓여있었다. 그곳에는 3명의 훤칠한 남성들이 앉아 있었고 어딘가 초췌했다. 전 직원과 함께 처음으로 다녀온 워크숍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 진행되는 면접이란다. 이런저런 질문들이 오가고 꽤나 긴 시간의 면접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제안된 2차 면접. 자신이 말한 디저트를 재해석해 오란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 디저트로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