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모르는 친구야
어제, 오랜만에 한 친구를 봤다.
중학교 시절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였다.
중학교 시절 이 친구를 모르는 학생들은 없었다. 그야말로 학교 유명 인사였다. 항상 그 친구 주변에는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항상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반마다 한 명씩 있는 그런 친구였다.
대화를 한 번 도 안 해 본 친구였기에 그렇게 그냥 기억 속에 잊힐 친구였는데. 그를 올해에 2번이나 봤다.
첫 만남은 굉장한 우연이었다.
때는 올해 여름. 한창 이북 리더기에 꽂혔었다. 일 년 동안 책을 3권도 읽지 않는 나에게 새삥 이북 리더기를?? 이건 너무 사치였다. 그래서 당근 마켓에 들어가 싼 이북 리더기를 찾고 있었다. 한참 서칭을 했지만, 역시나 괜찮다고 생각한 매물을 내 생각보단 비쌌다.
서칭을 하다가 동네 생활 칸을 들어갔다. 당근 마켓에서 사람도 구하나? 싶었다. 아직 인터넷 서칭 모드가 꺼지지 않았기에 무의식에 화면을 죽죽 내리며 흥미 있는 글을 찾았다.
빠르게 내려가는 화면들 속,
'친구를 구합니다..... 제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이 먼저 멈췄다.
ㅇㅇㅇ...? 중학교 때 친구잖아...?
나에겐 그저 웃긴 친구라는 이미지만 남아 있던 그였다. 이번엔 또 무슨 재밌는 일을 벌이길래 이런 글을 당근에 올렸을까???
게시물 클릭하기 전부터 벌써 실소가 나왔다.
'클릭'
'친구를 구합니다. 저는 친구가 없습니다.
제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저는 남들보다 모자랍니다....
배달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꽤나 충격적인 글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좀 모자라서 애들에게 놀림받는 친구겠거니 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지도 못했다. 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만 하더라도 애들보다 좀 띨띨해 보이고 애들 있지 않은가. 또래 친구들보다 자아가 조금 늦게 생기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 중 한 명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를 중학교에서 먼 곳으로 갔고, 그렇게 10년이 흘렀기에 소식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제야 생각해 봤다. 최근에서야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경계성 지능 장애' 이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냥 웃긴 친구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를 직접적으로 놀린 적은 없었지만, 그의 바보 이미지를 자연스레 소비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10년 전 그에게 미안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의 친구를 해주는 건 또 마음에 없었다. 그냥 그런 상황의 그를 동정했다.
그게 그와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 역시 굉장한 우연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고 독서실을 끊은 지 2일 차.
12시가 다 되어서 집에 가기 위해 독서실을 나왔다. 자정 가까이에 부는 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바람을 맞으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뒤에서 '따릉 따릉' 자전거 벨 소리가 들렸다.
'이 날씨에, 바람 부는 이 밤에 자전거를 타? 진짜 유산소에 미친 사람인가?' (백승권은 살짝 헬스에 미친 것 같다)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한 사람. 자전거 손잡이에는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쓰는 털장갑을 달았고, 꽁무니에는 배달 박스가 붙어있었다.
군밤장수 모자를 쓰고 있는 자전거를 탄 배달부. 당근 마켓에 글을 올렸던 그 친구였다.
음... 아는 척을 할까? 진짜 고민했다. 고민하는데 신호등이 바뀌었다. 세네 명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자 자전거에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친구.
그 친구를 보고 있다가 내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줌마를 보지 못했다.
하마터면 자전거에 치일 뻔한 상황, 아줌마는 집에 가스불을 켜고 오셨는지 사과도 없이 가버렸다.(민트색 자전거에 분홍색 옷 입고 가시던 아줌마, 사과는 하셔야죠;;)
횡단보도를 다 건너자 친구를 다시 자전거에 올라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친구구나.
조금 모자랄 수 있지. 그래도 법도 잘 지키고, 밤 12시까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멋있었다.
내가 그를 동정했다는 사실이 좀 부끄러웠다. 내가 동정할 사람이 아니었다.
'파이팅이다 친구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멀어지는 그를 바라봤다.
이게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