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코코 Nov 28. 2023

파키스탄에서 결혼식?!?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남편과 결혼생활을 한지 어느덧 11년 차를 향해가고 있다. 우린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같은 생각으로 말한 것이 바로 파키스탄에서는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나도 2박 3일을 결혼식으로 보낼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한국에서만 결혼식을 하기로 하였다. 솔직히 식을 올리고 싶지는 않았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결혼식 손님은 내 손님이 아닌 부모님 손님이라는 말에 부모님 뜻대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의 결혼사진

13년 4월 파키스탄을 첫 방문하게 되었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을 생각이었고, 이슬람식으로 니카[Nikha]는 한국에서 하였다. 첫 시댁방문할 때, 경계심과 호기심 어리던 눈으로 바라보던 그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난 ESFP 한국인이다. 남편의 걱정과는 달리, (솔직히 난 걱정이 1도 없었다) 시댁식구들과 첫 만남부터 잘 지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일단 난 큰 트러블 없이 첫 방문 30일을 잘 보냈었다. 그리고 처음 온 파키스탄에서 첫째가 생기게 돼버렸다. 파키스탄을 처음 다녀오고, 시댁부모님들이 여름 막바지에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왜냐하면 결혼식을 올려야 하니까!


항상 뚱뚱 인생으로 살아오던 나. 이상하게 남편 만나기 시점이 내 인생 최저의 몸무게를 찍을 때였다. 결혼식을 하기로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는지, 첫 아이 임신이라 뒹굴거리기만 해서인지 빠르게 몸무게는 불어났다. 그래서 난 드레스 입기가 너무 싫었다. 다행히도 그때쯤 한복웨딩드레스가 유행하게 되었고, 우리도 당연히 한복웨딩드레스로 선택해서 입게 되었다. 나온 배를 가릴 수도 있고, 얼굴 빼고 내 몸에 보이는 살들이 다 가려지니 그리 편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파키스탄에서 결혼식 하지 하고 우스갯소리로 시댁식구들이 말할 때, 나는 당당히 No!라고 외치게 된다. 5년 전, 남편의 둘째 형 결혼식을 하냐고 세 번째로 파키스탄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2박 3일의 결혼식 기억이 남편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나는 우는 아이 둘을 어르고 달랬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만큼 너무 힘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사람들한테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왔다 갔다 하니 그걸 케어하기도 너무 힘들었다.

결혼식 며칠 전 불빛들을 달고 꾸미는 모습. 결혼식 날에는 마당에 평상들이 가득 찼다

보통 파키스탄에서 3일 동안 결혼식을 하게 되는데, 1번째 맨디[Mehndi / Henna night] 2번째 니카[Nikah] 3번째 왈리마[Walima]라고 부른다고 한다. 일단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첫째 날 맨 디데이 때 남자가 손에 헤나를 할 일은 없기에 시댁 2층 옥상에서 촛불 같을걸 다 같이 갖고 내려온 기억은 있다. 아마 여자 쪽 집에서는 손과 발에 헤나를 하고 이쁘게 꾸미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2번째 니카 나의 손위형님이 될 분은 우리 시댁과 1시간 30분~2시간 거리에 사는 사람이었기에, 신부를 데리러 온 시댁 식구들이 출동하게 되었다. 한 차에 5~6명 가족들이 타서 신부를 데리러 가는 건데, 정말이지 차 타고 가면서 속으로는 이거는 민폐 아닌가?라는 한국적인 생각을 했었다. 차가 거의 20대가 갔으니 인원이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형님네 친정에 가서 앉아서 놀고먹고 춤추다가 신부를 데리고 또 20대의 차가 시댁으로 왔다. 아마 그날 나는 신부가 있는 방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결혼 서약 니카를 했을 것이다. 마지막 대망의 3번째 왈리마 생각보다 이날은 많이 할 게 없는 것 같다. 결혼식의 막바지이기도 하고, 대부분 손님들이 왔다가 가는 날이기에 크게 뭐 없었다.

지난 6월 시아버지 친구 아들 결혼식 SWAT에서 한다고 초대받아 같이 갔었다. 홀에서 하는 결혼식이며 홀 가득 생화와 조명이 반짝거렸다.

나중에 둘째 형님과 좀 친해지고 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시댁은 시골이라 집에서 결혼식을 올린 거지 요즘은 다 홀을 빌려서 결혼식 한다고 한다. 하긴 어마어마한 그 인원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건 정말.. 우리네 50-60년대 시골에서 하는 시골 결혼식 아니던가?!? 게다가 결혼식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쏟아붓는다는 걸 옆에서 보니 정말 남편과 나는 파키스탄에서 결혼식 안 하길 천만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시댁문화를 보니 남자 쪽에서 방한칸 해 주면 그 안을 가득 채우는 건 신부 쪽이다. 한국도 예전에는 집은 남자가 혼수는 여자가 이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파키스탄이 그러한 것 같다. 그래서 결혼식 올리기 1~2주 전부터 신부 쪽에서 보내오는 혼수가 어마어마했었다. 지금도 사용하지 않고 큰 바스켓 안에 넣어 시댁 구석 한 곳에 보관되어 있다. 둘째 형님이 파키스탄에서 살게 되면 쓴다는데 과연.. 그 안에 물건들이 그때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남편과 나의 파키스탄 결혼식은 안 하는 대신, 우리가 한국 오기 이틀 전, 요리사를 불러 Pulao를 많이 만들어 주변 이웃들에게 나눠드렸다. 남편은 없는 사람들에게 이걸 나눠주는 거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그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에 많은 비용을 처리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게 정말 좋았다. 지금도 주변 결혼식을 보면 우와 대단하다 마음만 들뿐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게 된다. 너무 힘든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다. 결혼생활의 주인공은 우리인데 시작부터 힘 빼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파키스탄 차 한잔의 여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