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코코 Oct 20. 2024

서른하나

친구에서 연인 그리고 배우자로.

꽃이 막 피려고 시작할 때쯤, 나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송내역에서 처음 만남을 가지며 근처 스타벅스로 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걸어 내려올 때 남편이 빛이 났다 표현할 수는 없었다. 허여멀건한 피부에 곱슬곱슬한 머리, 한 손에는 정체 모를 종이가방과 꼬질꼬질 배낭을 메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 유학생이구나!라는 모습이었다.


별다방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보다 잘하는 한국말에 감탄하기도 했다. 영어공부를 이유삼아 첫 만남을 한 거였는데, 생각해 보면 남편이랑 영어보다는 한국말로 더 자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지금도 카톡이나 메신저앱으로 대화할 때 항상 한국말로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의 영어능력향상은 저 멀리 바다건너로 넘어가 버린 듯하다. 남편이 첫 만남에 갖고 온 종이가방은 나에게 줄 초콜릿이었다. 우린 화이트데이 때 첫 만남을 가졌었고, 남편은 집에 있던 온갖 초콜릿을 몽땅 쓸어 담아왔다고 했다. 이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친구로서만 지내자는 내 말 한마디에, 누구보다 컸던 그 눈망울이 왜 촉촉하게 보였던 걸까.. 

우린 친구라는 이름으로 계속 만나서 이야기하고, 놀고먹고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이어갔던 것 같다. 처음 만나보는 외국인이었기에, 부모님에게도 친구로서 소개를 먼저 시켜버렸다. 그렇게 온 가족이 친구로 알고 있던 나의 외국인 친구는 어느새 나와 함께 서로의 배우자로 함께 하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한 모든 날들이 항상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기도 했지만, 그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결혼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살아가기를 바랐다.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차이 속에서도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남편은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하게 나를 대하고, 내가 화가 나거나 감정이 격해질 때도 침착하게 “알았어, 미안해”라고 말하며 상황을 진정시킨다. 그의 이런 태도는 처음에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방식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 화를 풀게 만드는 중요한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내가 감정적으로 크게 반응하는 상황에서도 남편은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나를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우리는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오히려 그 차이에서 배우며 성장해 왔다. 남편은 항상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한다. 덕분에 나는 우리 관계 속에서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배움의 존재이자, 각자의 다른 세계에서 만나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


결혼 생활은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반자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채우고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는다. 그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존중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관계의 깊이를 쌓아가고 있다. 아직도 충돌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건 우리가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증거이도 하다. 일상을 돌아볼 때마다 나는 남편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새삼 느끼곤 한다. 그의 차분함은 내 불안함을 잠재우고, 그의 이성적인 사고방식은 나의 감정적 반응을 진정시켜 준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이 오히려 우리 관계를 더 단단하고 깊게 만들어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서로를 보듬고, 성장하게 하며 살아가는 지금이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 다름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함께 성장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완벽히 같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도 함께 나아가려는 마음인 것 같다. 그 마음이 우리 관계의 중심에 있었기에 지금까지 잘 지내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 마음만 있으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통해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함께하는 삶이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남편에게 메시지를 남겨본다. 


이전 04화 서른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