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를 지나 30대로 향하는 시점에서.
2018년 12월의 마지막 날, 나는 20대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30대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 순간, 마치 인생의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10년 전, 10대의 끝자락에서 20대로 들어서던 나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이뤄질 것만 같았고, 그 어떤 것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29살을 떠나보내던 그때, 나는 내가 상상하던 미래와는 전혀 다른 현실 속에 서 있다. 내가 상상했던 30대로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쉽지 않았다. 20대의 마지막 날, 4살, 2살, 그리고 이제 막 잠든 1살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육아에 찌든 20대의 마지막 장면을 마주하며, 우울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가 꿈꿔왔던 인생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 꿈을 잃어버린 채 매일 반복되는 육아 속에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20대 초반의 나는 꿈꾸는 삶을 살았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이루고 싶은 목표도 많았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사랑에 빠져, 그 사랑에 온통 휩싸여 살았다. 사랑은 달콤했지만, 동시에 나를 혼란스럽게도 만들었다. 꿈은 뒷전이 되었고, 내가 원했던 길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다 20대 후반에는 아이들이 태어났고, 내 삶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육아는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고, 나는 하루하루 지쳐갔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 순간에 내가 부러웠던 사람은 가정과 육아를 동시에 하고 있는 워킹맘들이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경제적 의존 상태에 놓여 있다는 현실이었다. 20대 초반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벌며,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들이 생기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전업맘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이 주는 무거운 부담감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나는 나 자신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갈망이 커져갔다.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하며 살면서, 경제적 독립을 다시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도 뭔가를 해야 한다’, ‘내가 번 돈으로 우리 가정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계속 자리 잡았다. 물론 육아는 내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의 가치를 경제적으로도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아이들에게만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업주부로서의 삶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마주하는 여러 한계점들도 분명하다.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며 가정의 일상을 돌보는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으로서의 성취나 사회적 관계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큰 갈등을 느끼게 된다.
우선, 전업주부로서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이 크다.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나 직업적 네트워크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 스스로 사회와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결국 나를 세상과 단절된 존재로 만들게 된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어들면서 나의 경험이나 의견이 인정받지 못하는 듯한 외로움이 찾아올 때가 많다.
또한, 전업주부로서의 역할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점도 한계로 느껴진다. 직장인들은 실적이나 성과를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 결과가 즉각적으로 인정받거나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성취감이 부족할 수 있다. 가정 내에서 가족을 위한 헌신이 중요하지만, 그 일이 나 자신을 위한 성취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점점 더 나를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은 자아실현의 큰 장애물로 다가온다. 아무리 가정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는 현실은 무력감과 자존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직접 돈을 벌지 않기 때문에, 나의 기여가 당연히 여겨지거나 그 가치가 폄하될 때가 많다. 남편의 수입으로만 가족을 부양하는 현실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담감이 더 커졌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면, 내가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쥘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며 그로 인해 나의 역할에 대한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한계들은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육아와 가사를 돌보며 가정의 중심을 지켜내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그 속에서 나 자신이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 독립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회복,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들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나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30대의 나에게는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다. 경제적 독립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내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나 자신을 다시 찾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이 글을 쓰며 20대의 나를 떠올려보니, 그 시절의 나는 참 순수하고 열정적이었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조금 더 강해졌다. 비록 20대의 마지막 날은 우울했지만, 그것은 30대로의 첫걸음을 위한 통과의례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그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30대를 맞이하며 즐기고 있는 중이다. 특히 경제적 자립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엄마이자 아내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업맘으로 살아가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은 돈을 벌어 생활에 기여하려는 욕구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 꿈을 다시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되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독립은 내가 가정 밖에서도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육아와 나의 꿈, 두 가지를 모두 소중하게 여기며, 지금부터라도 나의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것은 나의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이며, 그 여정을 통해 더 나은 엄마, 더 나은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결국,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독립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