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닌 '나' 자신 찾기.
20대의 마지막을 나는 임신과 출산으로 보내게 되었다. 아이 셋을 계획하기는 했지만, 막내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였다. 그렇게 20대는 임신과 출산의 연속이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첫째를 출산할 때, 산부인과 원장님이 내게 "엄마, 황금골반이네요"라고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말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 셋을 낳게 해 준 결정적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 20대를 활짝 꽃 피우는 봄처럼 보내는 동안, 난 육아와의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으며, 언제부터인가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이 가 서있는 기분이었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낯선 얼굴이 거울에 비쳤으며 그 낯선 기분은 거울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분명 내 모습인데, 마치 내가 아닌 듯한 다른 이가 서 있는 듯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자연스레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면서 이제 내 이름 석자로 불리기보다는 00 엄마 혹은 아기엄마라고 불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와 동시에 나 자신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한때는 꿈이 있었고, 나만의 취미와 관심사가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분명히 느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의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 나의 감정과 생각을 억눌러야 하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고,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편에 이런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엄마로서의 삶이 분명 값지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말 그대로 '현타'가 몰려왔다. 나는 엄마이면서도 분명 나 자신이어야 하는데, 어느새 아이들의 엄마라는 이름이 내 정체성 전체를 덮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그 질문들은 나를 깊은 고민 속으로 이끌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내가 꿈꾸었던 것들, 나만의 시간을 즐겼던 순간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우선순위는 항상 아이들이었고, 그들의 필요가 나의 모든 선택을 좌우했다. 물론, 그 모든 선택에는 깊은 사랑이 깃들어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은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였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내가 나 자신을 잃어가며 지친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남편을 대하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에게도 좋은 일일까?
이러한 질문들이 나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 답을 찾아낸 건, 엄마라는 역할은 내 인생의 중요한 일부일 뿐, 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의 욕구와 꿈을 존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 안에 에너지가 넘치고, 그 에너지를 통해 아이들에게도 더 건강한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더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 작은 변화들이 나를 다시금 살아있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이 외에도 나를 설레게 만들고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하고 고민하며 찾아가는 중이다.
이 여정에서 하나하나 마주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엄마로서의 헌신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회복하고 싶었다. 나를 찾아가는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풍경, 경험, 만남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하나하나 꼭꼭 담아두려고 한다. 그 길이 항상 꽃길일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그 모든 것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며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중요한 일부임을 이젠 이해하게 되었다.
현재진행형 중인 나를 찾아가는 여행
때로는 흔들리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마침내 나 자신과 마주하며, 엄마로서도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도 더 온전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작은 성취와 기쁨들이 앞으로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이 될 것이다. 결국, 나를 사랑하고 돌볼 때, 비로소 더 나은 엄마, 더 행복한 내가 될 수 있음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