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세상에는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옷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자식의 옷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 많다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자식의 옷에 관심이 많은 사람 중에 두 명이 우리 엄마와 우리 언니이다. 이렇게 말하면 “왜 다른 사람의 자식이냐! 손주고, 조카인데.”라고 하겠지. 그럼 태어났을 때 이미 막내로 정해졌고 43세에도 막내인 나는 “몰라! 몰라!”하고 땡깡을 부리겠지.
나는 삼둥이들의 옷을 예쁘게 못 입힌다. 엄마와 언니에게 아이들의 탄생시부터 지금까지 누누이 들어온 소리다. 그리고 착하신 시어머니도 말씀은 안 하시지만 하고 싶은 소리일 수도 있다.
그렇다. 삼둥이엄마는 패션 감각이 좋지 못 하다. 삼둥이아빠도 그러하나 삼둥이엄마와 다른 점은 삼둥이가 옷을 (다른 애들에게 기죽지 않게) 잘 입었음 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야, 그럼 내가 애들 옷 좀 살까?’라는 발언을 하지만 삼둥이엄마는 또 그건 허하지 않는다.
일단 삼둥이들은 엄마, 아빠한테 물려받은 짧똥의 기운이 있어 옷빨이 좋지 못하다라는 핑계를 대보겠다. 그러나 체형을 보완할 이런저런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 본적도 없으므로 핑계임이 분명하다.
막내의 경우 7세 이후 급격히 살이 쪄 바지가 배에서는 맞고 길이는 두뼘이 남아 돌아 바지를 여러 번 접어 입어 도대체 멋이 안 난다. 그럼 ‘허리에 맞추고 길이를 줄여입으시지요?’라고 한다면? 허허, 삼둥이 엄마는 패션감각이 없는 데다 게으르기까지 한 걸요 하고 뻔뻔하게 대꾸해본다. 그리고 막내의 경우 허리에 맞춰 길이를 수선할 경우 부츠컷 바지라면 부츠 부분을 다 잘라내 버릴 수도 있다. 아휴, 이것도 물론 핑계.
엄마와 언니에게 들었던 수많은 삼둥이 패션 잔소리.
“쟤는 통통해서 저런 스타일이 안 어울린다.”
“다리가 짧아서 저런 바지는 안 어울린다.”
아니 이건 외모 비하 아니요?
“저 나이에 저런 옷은 유치하다.”
“요즘 애들은 저런 옷 안 입는다.”
그냥 기본적으로 내가 옷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우리 아이들의 옷은 거의 평이한 디자인의 스파브랜드에서 대량 구입한다. 정말 평이, 평범이다. 요즘 여자 어린이들이 짧은 바지에 긴 양말을 신어 아이돌같이 입고 다니던데 하교 후 태권도를 하는 우리 딸에게는 불편할 것 같다라고 또 한 번의 핑계!
가장 최근 저번 주에 엄마에게 들은 잔소리는 그거다. 나란히 앉아서 TV를 보는 삼둥이의 뒷모습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애들이 내복이 작아서 등이 다 나온다. 셋 다 내복 바지가 작아서 바지에 똥꼬가 안 낀 애가 없다.”
건조기에 줄은 건가…. 그래, 디자인 부분에서는 내가 버텨 볼 수 있지만, 작은 옷을 입힌 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어쨌든 당사자인 아이들은 셋 중 누구도 옷에 대한 불만이 없다. “다른 애들은 이쁘게 입어욧!”, “예쁜 옷 입고 싶어욧.”, “이 옷 안 입어!” 이런 반응 없다. 둘째가 편한 옷을 좋아해서 몸에 불편한 옷을 안 입겠다고 하는 정도. 아, 뭐 똥꼬가 끼는 옷도 입고 있는 애들 아닌가.
아이들은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해서도 불만이 전혀 없다. 엄마가 트레이닝 복을 입고 학교에 데리러 왔더니 “엄마, 다음에는 이런 옷 입고 오지 마.”라고 했던 아이가 있다길래 엄청 놀랐다. 나는 새벽에 런닝을 하는데 여름에 런닝을 하고 애들 등교 준비시키느라 시간이 없어 씻지 못 하고 땀에 절은 채로 애들과 등굣길에 나선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애들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별로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아이들이 아닌 것도 같고, 좀 늦돼 외모에 아직 신경을 쓰지 않는 듯도 하다.
작년에는 내가 남자애들 점퍼를 샀는데 시어머니가 마음에 드셨나보다. “정말 잘 샀다, 정말 잘 샀어.” 라고 몇 번을 말씀하시는 걸 보고, 지금까지는 정말 얼마나 마음에 안 드신 걸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시는 지역의 유일한 브랜드 아동복 가게-도대체 너무 비싸고, 또 너무 비싼 곳이다.-에서 명절마다 몇 십 만 원씩 옷을 사주시는데 죄송, 죄송할 뿐이다. 그것은 옷을 예쁘게 못 입히는 며느리에 대한 탄식, 소리 없는 아우성이신가.
몇 달 전에 막내가 현관에 있는 거울 앞에서 마스크를 쓰며 하는 말을 들었다. “미모 좀 가려볼까!” 아? 아? 애초에 가릴 미모가 어디? 외할머니와 이모가 개떡같이 입혔다고 말해도 찰떡같은 자존감을 가진 네가 정말 고맙고, 동시에 왜 저래? 하는 맘도 든다.
하지만 옷을 못 입힌다는 말을 7년째 들으면서 요즘 생각한 것은 도대체 왜 옷을 예쁘게 입혀야 하는 거지? 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내가 사이즈가 안 맞는 내복을 입힌 건 뭐 잘못했다 쳐도 우리 애들이 학교에 갈 때 누군가에 혐오감을 주는 옷을 입은 적이 있는가? 없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만한 옷을 입은 적이 있는가? 없다. 더러운 옷을 입은 적이 있는가? 없다. 너무 조이거나 옷감이 불편해서 활동하기 불편한 옷을 입은 적이 있나? 없다. 추운 날에 얇은 옷을, 더운 날에 두꺼운 옷을 입은 적이 있는가? 그렇게 입으면 가만히 있을 애들이 아니므로 물론 없다.
근데 왜 아이들에게 옷을 예쁘게 입혀야만 하는 걸까. 그냥 깨끗하고 편하게 입히면 되지 않는가. 아이들의 의복은 그냥 활동하기 편하고, 어린이다우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기본값이 아이돌처럼 이쁘게, 핏이 좋게인가. 심지어 애들이 원하지도 않는데라고 대단한 또 하나의 핑계를 대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