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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ug 10. 2023

백일장 농락 사건

삼둥이와 함께 백일장을!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백일장 참가이다. 이 얼마나 고상한 취미인가. 나는 대학 졸업 후 이십 대 전체를 반백수로 살았다. 자잘자잘한 아르바이트로 살아왔고, 엄마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정도로 벌었다. 그러나 당연히 풀칠만 할 정도라 가외 수입을 벌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고, 거기서 탄생한 취미가 백일장 참석이다. 중학교 시절 백일장에서 부상으로 탄 라피도 상품권은 내 인생 첫 수입이었고, 이것은 나에게 큰 감흥을 주었다. 아, 라피도 상품권으로 산 책가방의 감촉이 삼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난다. 성인이 된 후 당연히 상금이 없는 대회는 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늘 상금을 타는 사람이었는가! 당연히, 물론 아니다. 수상 타율은 굉장히 낮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백일장을 가는가. 나는 백수였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차도 없던 시절이라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그게 또 귀찮지 않고 좋았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백일장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지역의 백일장만 참석할 수 있었다. 백일장과 같이 열리는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어린이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는 것도 좋다. 돗자리를 펴고, 밥상을 펴고, 무언가를 쓰려고 골몰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좋다. 그리고 김밥을 싸서 가족들이 다 와있는 모습도 보고 좋다. 언젠가 나도 가족끼리 와야지. 보통 엄마들은 아이들과 같이 와서 아이들만 챙기지만 나는 백일장에 참석도 해야지 생각했다.  


  또한 백일장은 언제나 가장 날씨가 좋은 봄, 가을에 경치가 좋은 공원 같은 곳에 열린다. 그것도 좋았다. 모르는 지역의 공원에 앉아 있는 것 말이다. 


  상을 못 타도 정해진 시간에 뭐든 하나 썼기 때문에 평소에는 안 쓰던 글을 하나라도 완성한다는 것도 좋았다. 어쨌든 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삼십 대가 되어 직장을 가지고, 현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백일장의 활동무대는 더 넓어지게 된다. 충실한 운전기사의 출연이다. 남자친구와 여행 겸 백일장을 가는 것이다. 여행지를 먼저 정하지 않고 백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몇 년간 백일장 참석은 중지됐는데 물론 삼둥이 임신과 출산 때문이다. 백일장이라니. 내가 그렇게 세월 좋은 시절을 보내다니. 정말 전설 같은 일이다.


  애들이 4살 무렵 다시 백일장을 참석했다. 백일장이 열리는 지역에 아이들과 남편과 가서, 그 지역에 있는 키즈카페에 넷을 넣어두고 참석했었다. 아직은 어린아이들 걱정에 불안불안했었다.


  이제 다시 백일장 유람을 떠나야지. 그리고 애들이 더 크면 초등부와 일반부에 같이 나가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아이들은 컸지만 백일장 유람이 또 중지된 건 코로나 때문이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백일장들이 중지, 연기, 또는 온라인 백일장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리고 재작년 코로나가 잠잠해진 틈에 열린 백일장에 마침내 6세가 되어 이제 제법 아기티를 벗은 삼둥이와 남편을 대동하고 백일장 나들이를 갔다. 돗자리를 펴고 원고지를 받아 오고 재잘거리는 삼둥이 틈에서 정신을 집중하려는 찰나, 삼둥쓰 중 하나가 물었다.


삼둥이 중 한 어린이:  엄마! 우리 여기 왜 온 거야?

나: (약간 우수에 찬 느낌으로 먼 곳을 쳐다보며 아련하게) 엄마는 시를 쓰러 온 거야…….


그 말과 동시에 깔깔깔깔거리는 삼둥이의 우렁찬 웃음이 시상이 맴도는 공원을 떠돌았다. 아니, 왜 웃죠?


삼둥이 중 한 어린이: (다른 어린이들을 보며) 얘들아! 엄마 여기 쉬 싸러 왔대!!!

삼둥이 중 또다른 어린이: 우하하하 여기까지 쉬를 싸러 왔대!!!


  그러면서 아이들 셋이 서서 고추를 잡고 쉬를 싸는 모션을 취했다…. 여기서 조금 더 끔찍한 것은 막내는, 우리 막내는 여자 아이인데 오빠들과 같이 있지도 않은 고추를 잡고 쉬를 싸는 행동을 한 것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백일장 키즈로 자라 중년을 맞은 나의 길고 긴 백일장 역사에 찬물을 끼얹는, 아니 오줌을 싸는 비웃음과 농락의 대향연이다.


  세 명이 서서 쉬를 싸는 그 모습에 비웃음을 당한 나 자신조차 웃음이 나왔다. 그 해의 봄에 내가 썼던 쉬는 아니 시는 기억이 안 나지만 봄 햇빛 아래 깔깔거리며 쉬 싸는 흉내를 내던 삼둥이들의 웃음만은 기억에 꼭 남는다. 


  아휴, 뭐 시를 쓰러 왔던 쉬를 싸러 왔던 어때.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 시원한 바람 불어오면 돗자리 깔고 밥상 펴고 김밥 사서(싸서는 아님!) 백일장 가자. 가서 시 쓰고, 쉬 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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