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알사탕>보고 난 마음의 접촉사고, 뮤지컬 <알사탕> 보고 중상입어
그렇다. 봄에 본 그림책 <알사탕>이 마음을 찡하게 하고, 이번에 본 뮤지컬 <알사탕>이 나를 통곡하게 했다. 그러나, 너무도 건조하게 이 공연을 본 나의 자식 삼둥이들과 나의 남편. 너희들 얼굴이 너무 뽀송한 거 아니니. 졸지에 울어버린 내 자신이 과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괜찮아, 괜찮아. 이것은 그림책 <알사탕>에 대한 독후감이며, 뮤지컬 <알사탕>에 대한 리뷰이기도 하다.
뮤지컬 <알사탕>이 가까운 지역에서 공연한다니! 너무 보고 싶었다! 제주도 여행 중에 삼둥이들이 뽀로로앤타요 테마파크에서 즐기고 계실 때 급박하게 예매를 했다. 와우, 손이 부들부들 떨리도록 빠르게 빠지는 표. 대체 임영웅 가수 표를 예매하는 사람들은 신인가요?? 결국 다섯 가족 연석에 실패하고 둘, 셋 따로 앉는 좌석을 예약했다. 아빠랑 공연 보고 싶은 사람 두 명, 엄마랑 보고 싶은 사람 한 명 해서 보자꾸나. 뭐라구? 셋 다 아빠랑 보고 싶다구? 허허허허허.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엄마 옆에 앉으렴…….
주인공 동동이. 아, 동동이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동동이가 등장한다. 책에서 동동이가 구슬이를 데리고 걸어가는 장면. 나는 사실 거기부터 찡했던 거다. 동동이의 바지가 너무 길다구. 바지 두 번 이상 접은 거 같어. 근데도 바닥에 끌려. 아이고, 안쓰러워라. 그리고 시선은 땅을 보고, 좁은 어깨는 굽어 있는 아이. 이 와중에 구슬이는 노견이고, 아흑.
뮤지컬에서 집에 도착한 동동이는 이런 노래를 부른다.
<혼자 있을 때 들리는 소리>
...
학교 갔다 와서 조용히 있으면
여기저기 구석구석 소리가 들리지
집안에 있는 물건
재미있는 소릴 내지
지금부터 시작이야 쉿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싱크대 물 떨어지는 소리
시계초침 째깍째깍
윗집 물 내려가는 소리
...
혼자 있을 때
내가 혼자 있을 때
집에 혼자 있을 때 들리는 소리
낮에 빈 집에서 왜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 걸까. 그것은 동동이가 혼자 있기 때문. 조용한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동동이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도, 싱크대 물 떨어지는 소리도 크게만 들린다. 혼자 있는 아이가 무조건 불쌍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초1로 추정되는 아이가 혼자서 듣는 소리는 모두 너무 커다랗고, 뮤지컬에서 배우가 밝은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 나는 또 좀 센치해지고 마는 거다.
이제 동동이는 알사탕을 먹으면서 쇼파, 구슬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양육자의 마음을 후벼 파는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책에서 아빠의 수염구멍 묘사 정말 사실적이다. 거기다 지금 보니 아니, 동동이 아빠 안경 너무 지저분하네. 아빠가 잔소리하는 부분은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 읽어주면서 한 호흡으로 일부러 숨이 넘어갈 듯이 읽어준 부분으로 아이들이 책에서 제일 좋아한 부분이다. 역시 뮤지컬에서도 현란한 잔소리의 랩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알사탕을 먹었더니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 사랑해를 뮤지컬에서 표현하는 장면은 정말 찡하고 아름다웠다. ㅅㄹ ㅅㄹ ㅅㄹㅎ.
우리 신랑은 정말 사랑과 걱정에서 비롯된 잔소리의 화신이다. 연애 중에 나보고 ‘조심해서 걸어.’라는 잔소리도 했는데, 그때 얼마나 황당한지. 내가 그 때 걸음을 뗀 지 삼십 년도 넘은 시점인데 조심해서 걸으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하여간 그런 사람은 아이를 낳고서도 염려를 버리지 못 한다. 천천히 먹어라, 조심히 걸어라, 신발 꺾어 신지 마라, 허리 펴라. 근데 사실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마음에 넣고 그런 잔소리를 한 거겠지. 뮤지컬 끝나고 삼둥이한테 “동동이 아빠 너네 아빠 같지 않니? 너네를 너무 사랑해서 잔소리가 많이 나오나봐.” 했더니 정작 당사자 잔소리쟁이는 그 장면을 보고 아무 생각 없었다는 거. 나만 울었네, 나만.
그리고 알사탕을 먹으면서 엄마의 목소리는 안 나오는데, 만약 엄마가 하늘나라를 간 거라면 할머니 대신 엄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사별이든, 이혼이든 동동이 아빠는 싱글대디로 추정된다. 싱글대디는 혼자 키우는 아이가 학교 가서 꼬질꼬질 해 보이지 않을까, 엄마 없는 티가 나지 않을까, 방임된 아이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잔소리 중에 알림장, 가정통신문, 급식 얘기도 나오고, 잘 씻었는지, 팬티 갈아 입었는지도 걱정되는 거다. 그림책 한 면을 가득 채운 잔소리가 정말 찡허다. 책에서 동동이가 아빠를 안았을 때도 이 양반 설거지 중이다, 흑흑. 그러나 잔소리는 많지만 감성은 없는 신랑은 동동이 엄마가 아빠랑 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억측이고, 아빠의 그런 마음도 나의 상상력이란다. 하하하, 자기야, 자기 의견 말하라고 한 적 없어. 오호호.
노랑과 주황이 섞인 사탕을 먹고, 밖을 나간 동동이. 곱게 물든 은행잎과 단풍잎이 안녕, 안녕. 동동이에게 말을 건다. 여기서 나의 통곡은 극에 달하는데. 계절은 가을, 딱 지금쯤이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그러니까 1학년 동동이는 3월에 입학해서 지금까지 친구가 없는 거다. 책 처음에 동동이는 말한다.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맞아, 동동아. 혼자 놀아도 돼, 친구가 없어도 돼. 근데 집에서도 혼자, 놀 때도 혼자인 동동이가 아줌마는 안쓰러워. 동동이가 정말로 친구가 필요 없는 성향의 아이라면 괜찮지만, 저 멀리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배경으로 구슬이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동동이가 친구가 필요 없어도 되는 아이는 아닌 것 같다.
이제 마지막 구슬은 어, 아무 색깔이 없어. 아무리 빨아도 그냥 조용했다. 이건 뭘까.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 안 들어 본 목소리. 하지만 제일 중요한 목소리. 동동이는 알게 된다. 그건 나의 목소리구나. 내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거구나. 언제나 마지막은 나의 용기와 나의 목소리구나. 그 투명한 사탕에 색을 입히는 건 나의 말이구나. 동동이는 말한다. “나랑 같이 놀래?” 맞습니다, 여기가 나의 마지막 울음포인트죠. 초1 동동이는 성장하는 거죠. 성장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후벼판다. 제일 중요한 건 내 목소리, 그리고 용기 내보기. 초1의 깨달음은 옳고, 귀엽고, 진리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면, 동동이와 동동이의 친구-이 친구 여간 어설프게 생긴 게 아니다. 그래서 동동이와 잘 어울리고, 내 마음에도 쏙 든다.-는 즐겁게 논다. 한 명은 킥보드를, 한 명은 보드를 타고. 비슷하지만 다르게 킥보드와 보드. 둘이 아마도 비슷하지만 그래도 서로 개성 있고, 존중하면서 놀기를. 삼둥이 엄마가 바란다, 흑.
뮤지컬이 끝나고 보송거리는 세 아이들과, 남편에게 정말 울었냐는 약간의 놀림과 비아냥을 듣는다. 뮤지컬 알사탕을 보기 한 주 전에 다른 뮤지컬을 봤었다. 막내에게 알사탕 재밌었냐니까 ‘매 주 뮤지컬 보는거 힘들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우, 진짜! 근데 재미없었으면 재미없지 왜 뮤지컬 매주 보기 힘들다는 대답을 하는 걸까. ‘알사탕 재밌었니?’ 다시 물어도 매주 뮤지컬 보기 힘들단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재미있었어? 재미없었어?’ 하니 ‘재미 있었어!’ 하고 돌아선다. 아놔, 재밌었는데 재밌었다고 나한테 인정하기 싫었던 거다. 대체 왜!
남편은 집에서 영화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뮤지컬, 연극 같은 건 본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다. 내가 근데 이거 자기 태어나서 첫 뮤지컬 아니야? 했더니 절대 아니란다.
“오잉, 진짜? 그럼 자기 첫 뮤지컬이 뭔데?”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아아~~ 우리가 봄에 본 거.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걸 봤으니까 마트에 가서 알사탕을 사야 한다는 무논리에 굴복해 마트로 간다. 나 근데 왜 이렇게 울어, 갱년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