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허용

by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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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허용이라는 말이 있다.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더라도, 특정한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허용되는 경우를 뜻한다.

사람들은 단어를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시적 허용이 만연한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나의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유난히 감정을 다루는 문장을 말할 때만큼은 시적 허용이 용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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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짐과의 투쟁’ 이라는 문장은, 틀린 문장이다.

문법적으로는 ’잊힘과의 투쟁‘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힘 보다는 잊혀짐 이라는 단어가 이 문장에서만큼은 더 어색하지 않다 느낀다.

‘잊힘’ 은 무언가가 순식간에 사라져 없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잊혀짐‘ 은 짙었던 무언가가 오랜 시간이 걸쳐 서서히 옅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머릿속 한 켠에서 조용히 바래지고 있는 무언가’ 를 표현하고 싶을 때,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잊힘’보다 ‘잊혀짐’ 이라는 단어를 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법적인 딱딱한 요소는 고려할 여유조차 없다.

이처럼, 시적 허용은 이미 우리네 삶에 만연하다.

감정 하나를 표현할 때에도 조금 더 함축적인 단어를 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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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은 감정에 능숙하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상을 시처럼 표현할 줄 아는, 작디작은 순간에 대해 말할 때에도 단어를 소중히 선택하는,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할 때 희열을 느낀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일종의 시적인 순간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나눠지며 굴러가는 세상에 산다 우리는.

발음될 때 소리의 끝까지 여운이 남도록,

단어 하나하나를 딱딱하게 따져가며 고르지 않는, 시적 허용이 온몸에 배어있는 사람은 참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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