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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숲섬 Oct 07. 2023

8월 9월 그리고 10월

나는 아직도 손 편지를 주고받는다

많이 사들이고 많이 주워오는 예쁜 편지지 엽서들은 다 어디 가고 너무 많으면 어디에 뒀는지 못 찾는 건 옷장은 그득한데 입을 옷이 없는 것과 비슷할까

Dear~

8월과 9월, 그리고 10월에 걸치는 나의 이야기

우선 안부를 물을게요. 잘 있나요.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있어요. 잘 지냅니다. 잘잘잘 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변화무쌍한 날들을 지내요. 좋기도 하고 놀이기구를 탄 듯 어지럽기도 해요. 제주에 온 이후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것을 즐기고 있어요. 여전히 더 이상 좋을 수는 없다의 날들이에요. 좋다고 좋다고 하면 나의 운이 깎일까 봐 꽁꽁 숨겼었는데 나이 들수록 내 인생 평탄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어요.


 근황의 큰 줄거리. 1) 취직 2) 복학 3) 이사예요

급작스럽고 큰 변화이지만 기꺼이 받아들여요. 분명 오늘의 이 혼란들은 나를 새로운 문 앞으로 이끌어줄 거예요. 그래요, 한숨을 쉬며, 내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그릇이 될까 염려하지만 기대를 품어요. 그래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제주 3년 차. 2021           2022            2023. 서귀포에서 다시 제주시로 돌아가 사라봉 근처에 집을 얻는 것으로 나의 season 3가 펼쳐져요. 3년 차에 들어서며 어쩌면 처음 작정과는 달리 육지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혹은 바람이 들어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생각만으로 쉽게 지티고 마는 타입이니 그 무슨 생각은 안 하겠어요. 

 수십 년 만에 시작한 직장생활.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해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으로는 사표를.... 가장 큰 건 자유가 그리워서이고 그다음은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나의 한계를 느끼는 게 힘들어서예요. 

 옛날을 반추할 때인지, 한가해서 인지 지난 세월을 많이 돌아봐요. 그러고 나서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곱씹어요. 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를 쏟아붓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쉽게 포기하고 늘 차선을 택하는 나를 미워해요. 그 어딘가에서 보답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시간과 노력을 쏟는 분야가 '공부'에 관련되면 좋겠고 그게 제법 그럴싸한 것이면 좋겠어요. 맨숭맨숭하고 밋밋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생은 불공평하고 그다지 재미없는 게 기본값임을 깨닫고 받아들였으면.

 이사를 했어요. 그동안 방(Room)에서만 살다 이사 온 곳은 집(house) 같아요.  거실 없이 방만 3개인,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으로는 언뜻 떠올리기 힘든 구조의 집이에요. 오피스텔에 살다 주택스러운 다세대주택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좋아 털썩 계약금 1백만 원을 보내고 정신 차려보니 세탁기, 냉장고, 옷장... 아무것도 없는 집. 

 살인도 할 수 있을 만큼 더운 날이어서 그랬다라 하기엔.....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어요. 집이 텅 비고 넓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였다는 뒤늦은 깨달음. 가구며 가전제품을 사들여야 하는 step 2. 경솔한 선택의 결과 뒤따르는 후속조치들.

 혼자 큰 결정을 잇따라 해내며 발등 찍고 캔맥주 하나 마시고 방에서 소리 죽여 울고(방에 가구가 없어 소리를 내면 크게 울려요) 그렇게 지내요. 타인을 견디는 일> 외로움을 견디는 일. 타인이 훨씬 힘들어요. 혼자 뚜벅뚜벅 잘 걸어가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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