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by 인유당

이런 훌륭한 글을 써 보냈는데, 마침 내 글을 실어주던 매체가 장기 휴간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재촉하지 않고 푹 쉬었더니만.....한강이 노벨상을 정말 받고 말았다.





● 책정보: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332쪽, 14000원

● 첫문장: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 마지막문단: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 내가 그은 밑줄: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 누가 읽으면 좋을까: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소설이 될 수 있는가 궁금하다면, 한강이 도달한 또 다른 작품 세계가 궁금하다면, 상처 덮기식의 가벼운 위로에 지쳤다면, 겨울눈의 서늘한 감각을 느끼고 싶다면.

● 저자의 다른 책: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흰>,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등


연일 방송에서는 제주의 눈소식이 나온다. 폭설로 인한 비행기결항, 중산간 도로 통제, 한라산 나무들의 눈꽃. 한강은 소설 속에 '눈'을 많이 등장시킨다. 특별히 이 소설에서만 눈이 내리는 것은 아니다.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작별>과 함께 <작별하지 않는다>는 ‘눈 3부작’으로 불리운다. 눈의 흰색, 차가움, 적막함, 고립. 오감의 감각이 다 들어있다.

소설은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작중 주인공인 경하는 소설가이다. 광주를 다룬 소설을 썼다. 그리고 계속 악몽을 꾼다. 경하에게는 사회초년생 시절 인연을 맺은 인선이란 친구가 있다. 친구는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했었는데 엄마를 돌보기 위해 제주에 내려가 목공일을 한다. 그러던 겨울 어느날, 경하는 서울병원에 있는 인선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인선은 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았으니 곧장 자신의 제주집으로 가 혼자 남겨진 새를 구해달라고 한다. 급하게 제주도에 오게 된 경하는 인선의 집안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동안 모르던 제주 4 3을 직면하게 된다. 칠십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부모와 동생을 한날 한시에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채로 언니와 둘이 남겨진 어머니 정심의 이야기.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인선은 수술로 접합한 손가락을 살리기 위해 접합 부위를 바늘로 찔러야 한다.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에 한번씩 피를 내야 한다. 너무 고통스러워 손가락을 포기하겠다고 의사에게 말한다. 그러나 의사는 손가락이 없어도 고통은 계속된다고 설명했다. 환지통이라는 것인데 소실된 팔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그 신체기관이 없어도 뇌에서는 실제 감각으로 인지된다고 했다. 소설에서 인선은 이렇게 말한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역사의 기록이란 선명하고 구체적인 것들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심이 후대에 전달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잘려나간 손가락을 살리려면 바늘로 찔러 계속 고통을 느껴야하듯 상처를 내고 피를 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948년의 일을 직접 겪은 세대(1세대),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2세대)를 거쳐 이제 이 사건을 책으로 배우는 세대(3세대)가 대부분이 되었다. 학살 이후 생존자의 고통스러운 길고 긴 서사가 있고 이 서사는 딸의 눈과 입으로 전해진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속솜허라, 4 3 희생자 인선의 아버지가 동굴에 숨어 딸에게 가장 많이 했다는 말. “숨을 죽이라는 뜻이에요. 움직이지 말라는 겁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거예요.” 소설은 이 말을 듣는 딸처럼 속솜허며 조용히 전개된다. 작가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했다. 사랑해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야 되는 것에 관한 소설, 정말로 아끼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형철평론가는 어떤 소설은 사건이 작가를 선택한다고 했다. 이야기되길 원하는 사건이 한강이라는 작가를 통해 씌여졌다. 누군가는 좀 더 또렷하게 역사적 사실이 직시되지 않았음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폭설을 뚫고 인선의 외딴집에 들어가서 마무리될 때까지 현실인지 환상인지가 불분명하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소설을 읽기 어렵게 만들고 불친절하게 보인다. 그러나 읽고나면 여운이 참 길다.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소설가라는 직업의 경하,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다큐멘타리 감독인 인선의 두 세계는 역사를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에 대한 비유로 보인다. 역사라는 투쟁과 꿈이라는 개인의 서사가 결합할 때 공동체의 기억이 된다고 소설은 말하는 것 같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나온다면 한강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설가가 아닐까 점쳐본다. 인간의 고통, 그것을 받아낸 몸, 침묵과 상실들. 몸이 변화되어 다른 사물이 되어가며 윤회를 떠올리게도 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기꺼이 고통을 선택하는 작중 인물들. 눈보라를 뚫고 당장 그녀의 집으로 가는 경하. 그 모습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길임을 한강의 소설들은 말하고 있다. 한강의 다른 소설 <작별>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어둠보다는 빛을 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해, 윤아’. 한강의 소설들은 숙연해진다. 인간의 본원적 문제, 인간이 인간이어서 가질 수밖에 없는 고통들이 나온다. 그러나 언제나 빛을 향해 가기를 바란다. 빛을 향해 간다해서 환하고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극한 사랑인만큼 무엇보다 무서운 숙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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