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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Feb 28. 2024

엄마 간병기 1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세 번째.


2021년 6월 어느 일요일 저녁 11시 30분쯤

집에 돌아온 나는 거실에 있는 두 덩이의 토사물과 식탁 위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는 반찬들을 보며 엄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직감하고 안방의 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에서 엄마는 마치 잠을 자듯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고 나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잠깐동안 현실을 외면했지만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어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흐리멍덩한 엄마의 눈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엄마.


나는 뇌출혈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뇌출혈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저녁밥을 먹다가 갑자기 피곤해서 안방에 들어가서 자는 거고 거실에 토한 게 아니라 음식물을 흘린 거뿐이라고, 엄마가 그렇게 말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를 흔들며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길 바랐지만 엄마는 대답 대신 갑자기 구토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구토한 사실을 알았는지 두리번 휴지를 찾다가 베개 커버를 벗겨 닦는 엄마. 나는 그 구토의 더러움보다도 엄마의 움직임이 안쓰러워 이 상황을 잠시 멍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엄마를 일으켜 세워 내 차로 데려가려 했지만 엄마는 이 상황에 대한 인지가 없고 대화도 통하지 않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119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구급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9년 전 결혼해 따로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해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오늘 아침에 통화했을 때 멀쩡했다는 동생의 말. 그래 나도 오후에 나가기 전까지는 엄마가 멀쩡했었지.


엄마는 구급차로, 나는 내 차로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나는 정말 병원이 싫다. 아니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쨌든 여기에 이런 일로 또 오기는 정말 싫었는데 결국은 다시 이런 일로 이렇게 오게 되었다.


응급실 한 편에 누워 있는 엄마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리고 답답한 지 연신 마스크를 벗으려고 하는 엄마. 그리고 계속 씌우는 나. 코로나로 이것저것 불편했지만 이 상황만큼 코로나가 나한테 와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의식은 있지만 인지가 없는 것 같았다. 현재 여기는 병원이고 자신이 아파서 왔으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옆에 있는 것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 이런 것들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 같다. 지난 두 차례 뇌출혈에서는 적어도 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인지했었는데 이번에는 나를 못 알아보는 거 같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누군지는 모르는 거 같다.


멍하게 누워 있는 엄마.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누워 있는 엄마.

간호사와 의사가 번갈아가며 와 엄마에게 말을 건다.

"성함이 뭐예요? 여기가 어디죠? 오늘이 며칠이에요?"

그러나 엄마는 그 말에 관심조차 없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아니면 들리기는 하는데 의미를 알지 못하는 걸까?

나 나름대로 이번 뇌출혈로 인해 엄마의 뇌 어느 부위가 손상되었을지 추측을 해 본다.


자정이 넘어 병원에 도착했으니 어제, 그러니까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진 날.

나는 아주 오랜만에 소개팅을 하러 외출을 했다.


오후 4시 30분쯤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집에서 나서는데 엄마가 찬장에 있는 라면 하나만 꺼내 달라고 말한다. 첫 번째 뇌출혈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한 엄마는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지 못해 나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때 나는 퉁명스럽게 몸에 좋지 않은 라면은 먹지 말고 그냥 집에 있는 밥과 반찬을 먹으라고 말했다. 엄마는 나의 퉁명스러운 말에 "그래"라고 대답한다. 이제 내 퉁명스러운 대답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겠지. 이게 내가 엄마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다.


소개팅은 아주 순조로웠다. 여태까지 여러 번 소개팅을 하면서 오늘처럼 순조로운 적이 있었나 싶은 정도였다. 횟집에서 7만 원짜리 회를 먹고 가까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내친김에 그 근처 공원을 한 시간 정도 함께 걸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나 역시 호감이 가는 상대방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아주 기분이 좋았고 상대방을 집 근처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는데 엄마가 쓰러져 있던 것이다.


왜 아주 드문 좋은 일과 아주 드문 안 좋을 일이 같은 날 일어났을까?

그 두 가지 일이 같은 날이 아니라 다른 날이었다면, 예컨대 소개팅을 하고 며칠 뒤에 엄마가 아팠다거나 아니며 아예 엄마가 먼저 아파서 소개팅 따위는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나는 잠시 이런 식으로 이미 벌어진 일들을 부정하고 만약에 이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들을 해 본다. 사실 이런 식의 생각은 엄마가 첫 번째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했던 생각들이었는데 아이러니한 상황들은 인생에서 반복되는 것 같다.


어쨌든 엄마의 MRI촬영 결과는 왼쪽 뇌에 뇌출혈로 나왔다.

새벽 6시였나 7시였나. 엄마 담당 교수가 결과를 설명해 준다.

이번에는 출혈량이 많아서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다. 우선 중환자실로 옮긴 후에 시술(머리에 호스를 꽂아 피를 제거)을 할지 약으로 피를 녹일지 결정할 예정이다. 현재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서 대기를 해야 한다.

담당 교수는 엄마가 두 번째 뇌출혈이 왔을 때부터 담당했었고 3개월에 한 번 외래 진료 때마다 만났던 사람이다. 실력은 잘 모르겠지만 참 친절하고 겸손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전 8시쯤

어제 소개팅을 했던 상대방이 카톡을 보냈다. 자기는 지금 출근 중이라고 출근 잘했냐고 물어본다.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가?

어제 만나고 집에 돌아왔더니 엄마가 쓰러져 있어서 지금 응급실에 와 있어요라고 말해야 될까? 아니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출근 잘했다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대답해야 될까?

잠시 고민을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거 자체에 짜증이 난다.


그래, 나는 솔직히 엄마가 또, 또 뇌출혈이 온 거에 이제 별로 슬프지도 않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눈물을 한 바가지 넘게 흘렸었는데 이제는 정말 슬프지도 않다. 그래 솔직한 내 감정은 이제 짜증이 난다.

또 쓰러졌어? 또 병원 생활해야겠네……. 지겹다 참.

소개팅 상대방의 카톡에 잠시 고민하다가 일이 생겨 출근을 못 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잠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어쨌든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설명해 놔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과 웃으며 잡담하고 귀엽고 예쁜 이모티콘을 보내기는 좀 어려울 거 같다는 설명들.


엄마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중환자실로 갈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15시간쯤 대기했던 셈이다.

그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엄마에게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반응을 보려고 했는데 엄마는 사진에 관심도 없었고 관심 있게 쳐다볼 때도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적어도 외손주는 그러니까 이제 3살이 된 여동생의 아들은 알아볼 줄 알았는데. 엄마가 정말 정말 사랑하는 외손주는 알아보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엄마의 상태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병원 침대에 누운 엄마가 세 번째로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때 엄마가 고개를 빼꼼히 들어 나에게 말한다.

"얼른얼른 밥 먹어"

이 상황을 알고 말하는 건지 아니면 평소에 나한테 했었던 말이 그냥 나온 건지 모르겠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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