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우 Mar 07. 2024

엄마 간병기
5

2021년 6월 말

코로나 때문에 중환자실 면회가 모두 금지되었다.

중환자실 간호사가 추가로 필요한 물품을 전화로 알려주었고 이를 전달할 때 잠시 엄마의 면회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중환자실 있을 때가 편하다. 그런데 이제 하루 두 번 있던 면회도 금지되었으니 '더' 편해진 것이다.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보호자들의 하루 두 번 면회는 어떤 역할을 할까. 나는 솔직히 면회를 가지 않아 편했지만 인지 능력이 없는 엄마가 나조차도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조카가 함께 찍은 사진, 조카 사진을 간호사에게 건네 엄마가 볼 수 있는 곳에 붙여 달라고 요청했다.

엄마가 중환자실로 들어간 날 저녁. 나는 전 날 만났던 소개팅 상대방을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소개팅 상대방은 갑작스러운 만남에 전 날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어 내가 만나자고 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아니. 사실은 만나고 와서 새벽에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 새벽부터 몇 시간 전까지 병원에 있다가 집에서 조금 자고 나온 거야.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네. 말은 해놔야 될 거 같아서. 한 한 달쯤 뒤에 다시 보고 그동안 연락만 해도 될까.

잠깐 놀랐다가 그래도 된다고 대답하는 상대방. 그리고 지금 여기 있어도 되냐고 묻는다.

어차피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어제 처음 만난 사람한테 내 지금 상황을 얘기한다는 게 과연 맞을까?

내 동생과 친한 형은 굳이 왜 했냐고 말한다.

아니면 그냥 가볍게 얘기해 놓았거나. 상대방은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럴까. 내 결정이 이상한 걸까. 나는 그냥 솔직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3일쯤. 카톡으로 잘 연락하던 상대방의 답장이 엄청나게 늦어진다.

나는 그게 뭔지 알지. 완곡한 거절. 이제는 그게 뭔지 아주 잘 안다.

아마도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생각해 볼수록, 또는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니 만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겠지. 그래 내가 생각해 봐도 나는 참 부담스러운 상대방이다.


내가 19살 때, 그리고 지금. 엄마가 땅바닥에 누워 내 발목을 턱 붙잡아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느낌이다. 계속 벗어나려 해도 계속 붙잡을 거 같은 그런 느낌.

그래도 엄마는 딱 한 번 내 발목을 붙잡지 않았다.

10여 년 전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할 때까지 엄마는 아프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또 아프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내가 19살 때 엄마가 나한테 남긴 그런 불안감은 무의식 속에서 항상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던 그 10여 년 전의 6월 말.

그 뒤 엄마는 매년 6월 중순쯤 되면 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었던 얘기를 꺼내며 '세상을 모두 이긴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는 매년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시켜 먹는 것으로 그 기념일을 축하했다.

내 기억에 올해도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며칠 전 어느 식사 때 '세상을 모두 이긴 기분'이라는 말로 내 공무원 시험 합격을 상기했다. 그리고 며칠 뒤 피자를 시켜 먹자고 말했다.

세상을 모두 이긴 기분? 나는 그 기분이 뭔지 모른다.

엄마는 나로 인해 그런 기분을 느꼈다고 말하지만 나는 엄마로 인해 세상을 모두 잃은 기분을 느낄 뿐이다. 그것도 여러 번.


올해는 엄마랑 피자를 먹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별로 피자를 먹고 싶지 않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어차피 면회가 되지 않아 나는 출근을 했고 틈틈이 간병할 때 사용할 물건들을 타포린백에 챙겼다. 마치 여행을 가듯이.

팀장에게 엄마의 사정을 얘기하고 한 달쯤 연가와 가족 돌봄 휴가를 사용해 간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별 말하지 않는 팀장.

연가와 가족 돌봄 휴가를 결재 올리며 내 나이 때쯤 동료들은 결혼 휴가,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쓰는 데 나는 아직도 엄마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서글퍼진다.

엄마가 일반 병실로 옮길 때쯤. 중환자실 간호사가 전화해 간병을 누가 할지 묻는다. 내가 하겠다고 답하자 피딩을 할 줄 아냐고 묻는다. 엄마가 콧줄로 식사를 해서 피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엄마가 콧줄로 식사를 했었는데 그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간호사가 대신해 줬던 거 같다.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모른다고 대답하고 인터넷이나 유튜브 보고 배우면 되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간호사는 간병인을 구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피딩이 중요하다면서. 잘 못하면 폐로 들어가 폐렴이 생길 수도 있다면서.

간병인? 나는 간병인을 싫어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내가 배워서 간병하면 된다고, 간병인은 구하지 않을 거라고 고집을 부린다.

그런데 엄마는 공동간병인실로 배정되었다.

간병인에게 하루 4만 원 주는 공동간병인실. 나는 신청하지 않았는데 혹시나 엄마가 신청했을까? 물론 아니겠지.

엄마의 상태를 보고 잠깐 고민을 해 본다.

엄마는 콧줄과 소변줄을 끼고 있고 기저귀를 차고 있다. 나를 알아보는 듯, 못 알아보는 듯하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아니 내 말이 전혀 안 들리는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정상적인 말을 하지 못하고 '예, 예, 예'라는 단어만 여러 가지 억양으로 반복해 말한다.

과연 나는 기쁜 마음으로 엄마를 간병할 수 있을까.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엄마가 공동간병인실로 들어간 순간, 나는 엄마를 하루종일 간병하고 싶지 않아 졌다.

낯선 엄마 옆에서 하루 종일 있을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간병인을 싫어하지만 지금 상태의 엄마 옆에 계속 있기가 더 싫어진 것이다.

이전 04화 엄마 간병기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