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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Mar 14. 2024

엄마 간병기 6

2021년 7월

이제 엄마의 간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하든 간병인이 하든.

아니면 엄마의 재활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이 표현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재활의 의지도, 생각도 없는 상태니까.


나는 병원에 하루 종일 있을 수 없었다. 공동 간병인실에 있는 엄마는 간병인이 있는 상태고 나는 원칙적으로 상주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은 간병을 하고 싶었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그렇게 간병인과 내가 공존하는 묘한 공동 간병.


그래서 나는 오전 7시 30분쯤 병원에 도착했고 틈이 날 때마다 휠체어에 태워 휴게실로 이동해 이런저런 말을 걸고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길 하루동안 반복하다가 저녁 8시가 넘으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런 패턴의 간병이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공동 간병인실의 간병인은 최소한의 간병만 했다. 끼니때마다 피딩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기저귀를 확인해 갈고. 그리고 밤에 잠을 안 자고 새벽 내내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엄마를 처치실로 옮겨 놓고. 사실 이 이상 기대하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건 개인 간병인을 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모두 다 남이다. 그나마 기대하는 건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냉정한, 그러니까 감정적으로 엄마를 대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나는 엄마의 회복이 빠를 거라고 기대했다.

팔, 다리, 손이 모두 움직이는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엄마가 정신만 돌아오면, 현재에 대한 인지만 생기면 모든 것이 금방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엄마가 콧줄을 뺄 수 있게 간호사는 요플레를 사서 입으로 먹는 연습을 해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입을 열지 않았고 요플레가 입술에 묻자 더러운 것이 묻은 듯 퉤퉤 뱉어냈다. 2, 3일을 시도하다가 간호사는 결국 더 이상 시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음식물이 폐로 잘못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다고.


엄마는 무척 잘 먹는 사람이었다. 너무 잘 먹어서 반강제로 식사량을 조절해야 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먹는 걸 거부하는 걸 보고 있으니 꼭 죽으려고 일부러 안 먹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고 이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서.

계속 대화가 통하지 않는 엄마. 마치 귀가 안 들리는 사람처럼 나의 말, 주변 사람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뜬끔없이 친척들의 이름을 말한다. 나는 알기도 모르기도 하는 그런 이름들.

나와 내 동생, 사위, 외손자의 이름은 말하지 않으면서. 엄마는 옛날 그 어느 시절에서 머물러 있지 않을까. 좋은 시절일까 나쁜 시절일까. 나는 알 수 없다.


그러기를 며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병실을 옮겨 하루종일 내가 간병할지, 아니면 계속 이 상태로 지낼지에 대하여.

내가 종일 간병하자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엄마 상태를 봤을 때 하루하루 너무 힘들고 같고, 공동 간병인실에 있자니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많고. 사실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 돈은 어쨌든 버틸 만큼은 있다. 문제는 현재 내가 현재 엄마 상태에서 간병을 견딜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나는 사실 1년 전쯤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어느 날 불현듯 과거의 모든 회한이 밀려왔고 현재가 절망스러웠으며 미래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그때 처음 해봤다. 갑자기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나를 없애버리고 싶은 그런 충동들.

그러던 중 하루는 출근하기 전 내 방 책상에 유서를 남기고 출근하기도 했다. 동생에게는 내 휴대전화의 잠금 패턴과 은행 계좌 비밀번호 같은 것들을 뒷정리를 위해 보내 놓을 생각이었고 며칠을 정말 죽을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질 엄마와 동생의 모습이 떠올라 계속해서 죽음에 대한 내 의지를 꺾어놓았다.

그러길 며칠 반복. 나는 결국 죽지 않기 위해 가기 싫었지만, 약을 먹긴 싫었지만, 정신과병원을 찾아 우울증, 죽음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고 약을 타먹기 시작했다.

그 뒤 내 모든 상황이 호전되진 않았지만 정신과 약은 적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주는 거 같았다. 아니 약간은 기분을 좋게 해주기도 했던 거 같다. 그러나 지독한 무기력은 해결되지 않았고 회사나 볼 일이 없을 때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계속해서 잠만 잤다.

그때 그런 나를 보며 엄마도 우울증이 오지 않았을까? 끼니를 거르고 모든 걸 귀찮아하던 나를 보며 엄마도 알게 모르게 우울증이 온 게 아닐까? 그래서 그 우울증이 이번 뇌출혈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나는 엄마가 세 번째로 쓰러질 때 우울증 약을 먹고 있던 우울증 환자인데 그런 사람이, 그렇게 무기력한 사람이 현재 상태의 엄마를 간병하는 건 무리라는 것.

나는 결국 공동 간병인실 간병인과 공존하는 간병을 택했다.


어떤 날은 아침에 너무 일어나기 싫어서 오후에 일어나 병원에 가 엄마를 휠체어에 태운 적도 있고, 어떤 날은 너무 병원에 있기 싫어서 저녁 시간도 되기 전에 병원을 떠난 적도 있다. 하지만 하루도 가지 않은 날은 없었다. 그 사이 엄마는 별다른 차도가 없었고 어떨 때는 내가 알던 엄마였다가도 어떨 때는 너무 낯선 사람이었다.


늦은 저녁 내 방에 누워 이번에는 정말 사라지고 싶다고, 엄마고 동생이고 이제는 다 모르겠고 사라질 방법을 궁리하던 나.

아무것도 위안이 되지 않는 내 삶.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위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

동생에게 이번에 정말 죽을 거라고, 사라질 거라고 며칠 밤마다 메시지를 보내던 나. 그리고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노래 가사.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엄마는 이제 어쨌든 재활 병원으로 가야 한다. 나는 또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간병할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지금의 내가 엄마를 간병하면 나도 죽고 엄마도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재활 병원으로 옮긴 뒤 결국 개인 간병인에게 엄마를 맡겼다.


병원복이 바뀐 엄마. 이제 병원복이 마치 엄마의 평소 옷 같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엄마.

나는 엄마가 입원한 병원으로부터 떠나고 싶다. 아주 멀리.

그래서 엄마도 없고 그 옆에서 고민하는 나도 없고 콧줄도 소변줄도 기저귀도 그런 내가 알던 것들이 모두 없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다.


엄마를 재활병원으로 옮기고 간병인에게 몇 가지를 일러준 후 나는 무작정 동해로 차를 몰았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도시를 떠나며 해 질 녘의 비구름들이 짙은 분홍색을 띤다.

그 흩어진 구름들을 보며 나는 엄마의 뇌를 촬영한 CT사진이 떠올랐다.

세 번의 뇌출혈로 흩어진 엄마의 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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