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황홀했던 순간이 날아가 버린 뒤, 가슴속에는 바람 같은 허기가 찾아왔다. 마치 정오의 태양이 순식간에 구름 뒤로 숨은 듯, 눈앞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 어둠은 완전한 종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잠시 멈춘 심장박동 속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속삭임 같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삶이란 언제나 유한한 선율로 이루어진 곡이다. 어떤 음표는 하늘을 향해 맑게 치솟아 영혼을 설레게 한다. 또 어떤 음표는 낮고 어두운 땅에 스며들어 우리의 심연을 건드린다. 자아낸 음은 점점 멀어지다 이윽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흔적은 악보에 남아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도’는 겉보기에 어둡고 초라하다. 화려한 화음을 지니지도 않는다. 또 이 낮고 깊은 ‘도’는 가장 오래도록 남아 울리는 음이다. 한 번 울려버린 ‘도’는 애석하게도 마음속 깊숙이 남아 도통 사그라들지 않는다.
낮은음이 없다면 높은음의 고귀함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깊은 바다의 어둠이 있어야만 밤하늘의 별빛이 빛나듯, 모든 조화는 서로의 존재로 완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조화 속에서 모든 순간을 살아간다. 삶은 결코 단조로운 선율의 도돌이표가 아니라, 높고 낮은음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이루는 화음이다. 어둠 속에서 울린 우리의 ‘도’는 가장 찬란한 화음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남아 여운을 준다.
짧게 울린 음표가 사라질 때마다, 공허함은 내 안에 자리 잡는다. 그러나 그 공허함은 슬픔이 아닌 기다림의 자리다. 떠나간 선율이 남긴 여운은 다음 선율을 위한 쉼표가 된다. 나는 떠나간 행복을 애도하기보다는, 다가올 화음을 기다리며 지금의 음을 온전히 노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