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의 추억
교실 창가에 피어난 봄날의 햇살처럼, 그의 미소는 늘 따스했다.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복도를 걸을 때면,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설렘에 발걸음이 자꾸만 가벼워졌다. 까만 교복 치마를 매만지며 거울 앞에 서있던 열일곱의 나는, 그날따라 유난히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하교 시간,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게 된 날이면 심장이 쿵쾅거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슬며시 그의 모습을 훔쳐보던 순간들. 손끝으로 살짝 닿았던 우리의 책가방처럼, 그 찰나의 설렘은 지금도 선명하다.
일기장 구석구석 적어내린 그의 이름과,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나누었던 수많은 속삭임들. 체육시간에 그가 농구하는 모습을 보며 친구들과 함께 응원했던 순간들, 급식을 먹으며 몰래 그의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시간들까지. 그 모든 순간이 내 청춘의 가장 빛나는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하지만 설렘만큼이나 아픔도 컸다. 그가 다른 반 여자애와 이야기하는 모습에 며칠 밤을 뒤척이기도 했고, 문자 메시지의 답장이 늦어질 때면 온갖 상상으로 마음을 태우기도 했다. 분홍빛 립글로스를 바르며 거울을 보던 날들, 조금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교복을 몇 번이고 다려 입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이제는 하이힐을 신고 회사에 출근하는 어른이 되었다. 메이크업으로 깔끔하게 단장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지만, 가끔 옛 앨범을 들춰보면 그때의 풋풋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하얀 양말을 단정하게 신었던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넨다.
첫사랑은 마치 처음 신었던 교복처럼 어색하고도 설레는 것이었다. 서툴렀지만 그만큼 순수했고, 아팠지만 그만큼 진실했다. 지금도 봄바람이 불어오면, 교문 앞 벚나무 아래서 그를 기다리며 두근거렸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까만 머리가 휘날리고, 하얀 교복 블라우스 깃이 살랑거리던 그 봄날의 기억이.
어쩌면 첫사랑의 가장 큰 의미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향한 설렘으로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예뻐지려 노력했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으니까.
창가에 놓인 화장품들 사이로 봄볕이 스며들 때면, 나는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린다. 보라빛 잉크로 일기장 가득 써내려갔던 설렘 가득했던 열일곱의 봄, 순수했던 우리의 첫사랑을. 그리고 그 추억은 은은한 향수처럼 내 마음 한켠을 포근하게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