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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집에 머무는 저녁 공기

by Camel

텅 빈 집에 머무는 저녁 공기


현관문을 열자 차가운 저녁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텅 빈 집 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유난히 크게 울린다. 창밖으로는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붉은빛을 머금은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모습이, 오늘따라 유독 쓸쓸해 보인다.


집 안 가득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늘 누군가의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로 채워지던 공간이, 이제는 저녁 공기만을 품고 있다. 스위치를 누르자 불빛이 켜지고, 그제야 내 그림자가 벽에 드리운다. 하나의 그림자. 오늘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부엌에서 물을 한 잔 따라 마신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저녁의 적막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식탁에 놓인 의자는 두 개. 하나는 비어있다. 늘 누군가와 마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자리에, 이제는 저녁 공기만이 앉아있다.


창가에 기대어 서니 유리창이 차갑다. 이제야 느끼는 계절의 변화. 함께일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공기의 온도가, 홀로 있는 지금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일 때, 서로의 온기로 많은 것들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귓가에 들리는 것은 시계 초침 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바람 소리뿐. 이 고요함이 불편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 시간이 내게 작은 위안을 건네는 것 같다. 마치 저녁 공기가 살며시 어깨를 감싸 안아주듯이.


창밖으로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저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문득 깨닫는다. 나만이 이 고요함을 느끼는 것은 아닐 거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는 때로 이런 순간을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방 창문을 살짝 열어본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부드럽게 밀려들어온다. 이제는 이 공기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때로는 이렇게 홀로 저녁 공기를 마시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시간.


어둠이 깊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가워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 같다. 아마도 이 고요한 시간이 내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고 있나 보다. 텅 빈 집, 차가운 저녁 공기, 그리고 홀로 있는 이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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