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지현 Jul 26. 2023

도마뱀, 04

세 겹

  우리나라 최고는 아니어도 너 공부 좀 했구나 하는 대학에 운이 좋게 붙었다. 우리 집은 서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아홉 시 수업을 위해 일곱 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일곱 시에 집에서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여섯 시에는 눈을 떠야 했고, 십 분이라도 늦어지는 날에는 아침을 걸러야만 했다. 삼 일인가 아침을 거르고 집을 나서고 몇 번인가 신입생 환영회니 뭐니 하며 알코올에 흠뻑 젖어 들어오고, 그러다 동기의 자취방에서 대충 쪽잠을 자고 했더니 엄마가 넌지시 물었다.


  자취방을 알아볼래?


  우리 집은 그다지 가난하지 않았지만 그다지 부유하지도 않았다. 서울의 억울한 월세는 모를 사람이 없는 것이었고, 나는 혹하기도 전에 자취하는 동기들의 말을 떠올렸다. 통학한다고? 엄마 밥 먹겠네? 부럽다. 그 뒤로 이어지는 보증금이 얼마고 월세가 얼마며 그에 지지 않을 관리비가 얼마인지 하는 말들. 나도 그들의 자유가 부러웠지만(술 마실 것 다 마시고 항시 새벽에 귀가하곤 하는 내가 어디가 자유하지 못하느냐 물으면 대답할 수는 없지만서도) 돈은 조금, 무서웠다. 엄마의 월급은 빤했고, 나는 대단한 효자는 못되어도 그 큰 돈을 내 편의를 위해 엄마에게 손을 벌릴 만큼 뻔뻔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엄마의 월급만치 빤히도 데록데록 굴러가는 내 눈동자가 너무 많은 말을 했는지 엄마가 웃으며 덧붙였다.


   네 아빠가 도와주신대.


  아. 나는 그 말에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내 속을 홀라당 들킨 것 같아 조금 민망했지만 원래 도마뱀은 생존을 위해 눈을 사정없이 사방으로 굴려 주위를 살펴야만 하니 이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그 주말에 엄마와 아저씨와 함께 학교 바로 앞의 집 네 군데를 둘러보고 그중 가장 저렴한 1층 방에 계약을 했다. 아저씨의 이름으로 월세 계약서를 작성했다. 아저씨는 앉은자리에서 보증금에 십 개월치 월세까지 한 번에 집주인에게 송금을 마쳤다. 집주인은 퍽 만족스러운지 감기에 걸려 코를 연신 들이마시면서도 크카카카 웃으며 아저씨에게 덥석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드님이 아버님을 쏙 빼닮아 정말 미남이십니다.


  아저씨는 그 손을 덥석 맞잡으며 집주인보다 더 호탕하게 웃었다.


  핫하하하, 그, 그렇지요? 이 녀석이 얼굴만 이리 잘난 게 아니라 학원 딱 하나 다니면서 혼자 공부해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딱 붙었다 아닙니까. 핫, 핫, 하하하!


  우리 학교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 할 수 없었고 나는 빈말로도 미남이라 하기 어려운 얼굴이었으며 학원은 한 개만 다녔지만 과외를 두 개나 더 받았던 나는 부끄러움에 두통이 밀려드는 느낌이었지만 다행히도 집주인은 그저 맞장구를 쳐주었다. 얼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에 괜스레 새로 바른 듯한 벽지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돌렸다.

  그날의 기억은 어느 날만큼 아주 선명하다.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어쩐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던 것이,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집을 떠나 혼자가 되었지만 외롭지가 않고 거창하고 웅장했던 여덟 평짜리 단칸방이 기묘하고 신기했기 때문에.







작가의 이전글 도마뱀, 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