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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지현 Aug 09. 2023

도마뱀, 06

다섯 겹

  입대하던 날 엄마는 내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상을 차렸다. 나는 파충류답지 않게 나물을 참 좋아했다. 그것도 참기름이 아닌 들기름으로 무친 것을 정말 좋아라했는데, 엄마는 소금과 마늘, 들기름으로만 무친 나물을 일곱 가지나 상에 올렸다.




  아버지는 엄마가 분주히 부엌을 활보하는 동안 슬그머니 일어나 오랫동안 씻었다. 그리고 한동안 입지 않았던 빳빳한 하늘색 셔츠를 꺼내 다림질했다. 옷장에서 옷걸이를 고르고 골라 가장 두툼하고 묵직한 검은 옷걸이를 골라 다린 셔츠를 걸어두고, 충분히 각이 잘 잡힌 바지를 다시 꾹꾹 눌러서 다렸다. 다음에는 푸른색 체크무늬 타이와 갈색 민무늬에 아주 작은 붉은 보석이 박힌 타이를 양 손에 들고 잠시 고민하다 푸른 쪽을 골라 다리미로 땀까지 흘리며 힘주어 다렸다.




  아버지, 원래 넥타이도 다려서 쓰는 거예요?




  내 물음에 아버지는 무슨 불똥이라도 맞은 듯 파드득 놀랐다. 그 모습이 마치 갑작스러운 쿵 소리에 펄쩍 튀어오른 고양이 같아 웃음이 났다. 아버지는 내가 웃는 것을 보고 민망한 듯 웃으며 관자놀이를 네 손가락으로 벅벅 긁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허허. 허허, 그게... 네 아버지로 어딜 참석하는 게 처음이다보니, 좀, 멋있고 싶어서. 허허허.





  아버지의 양쪽 볼우물에 나도 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아버지는 웃는 나를 보고 누런 이가 열여섯 개쯤 드러나게 활짝 웃고는 다시 타이를 다리미로 꾹꾹 눌렀다.





-





  세 식구가 아침 여섯시에 상에 둘러앉았다. 일곱 가지 나물, 열두 시간을 푹 고아내느라 엄마가 밤을 꼴딱 새운 소갈비찜, 등갈비 김치찌개, 포슬포슬한 감자가 닭고기보다 더 많이 들어간 닭도리탕과 고기와 미역이 반반일 듯한 소고기미역국, 일곱 가지 색색의 나물, 거기에 아무리 대단한 걸 차려두고 제발 한 술만 뜨고 가래도 꾸역꾸역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가던 내가 이것만 구워놓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했다던 엄마표 고등어자반까지, 내가 좋아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모아놓은 듯한 밥상에 나도 가슴 한 켠이 뭉근하니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우리 아들 임금님 대접 한 번 해줘보려고 십이첩 반상 한 번 차려봤어.

  당신, 정말 고생 많았네. 좀 도와달라구 하지 그랬어. 이렇게 많이 하는 줄 알았으면 내가 옆에서 뭐라도 했을 텐데.

  아이, 당신이 뭘 더 하려구. 얘, 너희 아빠가 너 입대 전에 꼭 좋은 것 해먹여야 한다고, 장 보라고 오십만 원이나 줬어. 이거 다 늬 아버지가 사준 거야.




  나는 오랜만에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고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며 아버지를 향해 한 번, 어머니를 향해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웃으며 아버지 팔을 톡톡 쳤고 아버지는 핫하하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숟가락을 들어 미역국을 후루룩 소리가 나게 한 입 뜨고는 어서, 어서 먹어. 하며 내게 손짓했다. 행복이 벅찼기 때문에 나는 십이첩 반상을 차릴 때는 조리법이 겹치는 음식이 올라와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





  아버지의 차 뒷좌석에 앉아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오직 엄마만이 조잘조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나와 아버지는 그저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 한 시간을 지나쳐 밤새도록 수라상을 차려낸 엄마가 피로에 지쳐 잠들었을 때, 나는 침묵의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쓰잘데 없을 이야기들을 꺼내어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 태몽은 도마뱀이었대요. 아주 커다란 코모도 왕도마뱀.

  왕도마뱀? 너희 엄마가 그러니? 코모도 도마뱀이라고?

  네. 엄마는 코브라 도마뱀이라고 하는데, 아마 코모도 왕도마뱀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아주 이만큼 큰 도마뱀이 엄마 품에 달려들었는데, 치워주려고 했더니 엄마가 안 된다고 내 거라고 막 울면서 지켰대요.

  정말 너희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그게 네 태몽이라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묘한 얼굴로 웃었다. 또 처음 보는 표정이라 나는 입술 양 끝을 당겨 다물었다.




  그랬구나.




  묘한 음성에 할 말이 없어 네에-....... 말꼬리를 늘이자 아버지는 몇 번 입을 다셨다. 혀를 내밀었다 집어넣었다 하며 입술을 적시는 모습에 기시감이 들었다. 룸미러를 통해 나를 넘어다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져 괜스레 창밖을 쳐다보았다. 깨끗한 창문에 까까머리를 한 내가 희끄무레하게 비쳤다. 어색한 머리를 손으로 빗어넘기니 까슬한 촉감이 닿았다.




  네 태몽은 내가 꾸었구나.




  아버지의 말은 혼잣말 같았지만 내가 듣고 모른체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돌아간 내 시선이 룸미러 너머의 아버지의 시선과 부딪혔다. 아버지의 눈이 아득했다. 잠시간 눈을 떼지 못하다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 소리 없는 입모양에도 아버지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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