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면 막연히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일 줄은 몰랐다. 나는 스물여섯 2월에 마지막 학생의 신분을 빼앗기고도 꼬박 육 개월을 더 공부해 공공기관 인턴 자리에 합격했다. 10개월 짜리 임시직이었지만 경쟁률이 상당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면 애인에게 청혼하고자 했던 계획은 모래 위에 쓴 글씨마냥 한 차례 파도에도 부서지듯 흐트러졌다. 인턴의 월급은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최저시급이었고 그나마도 진짜 내 것이 아닌 자리였으니 내가 그리던 나의 미래 역시 웅장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대기업에 입사한 나의 애인은 그 시간 동안 신입사원 티를 적당히 벗어내고 목에 파란 끈의 사원증을 걸고 길을 걷는 것이 자연스러운 진짜배기 직장인이 되었다. 햇빛만 받아도 죽기도 한다던 개복치처럼 그 애 앞에서 종종 기가 죽곤 했지만 애인은 그런 내 꼴을 두고 보지 않았다.
잘 됐다. 그 기관, 자기네 회사 출신 인턴은 공채 때 가점을 준다던데. 공공기관은 정년까지 다닐 수 있잖아. 나는 당장 10년 후면 어찌될지 모르는데....... 나 잘리면 네가 먹여살려주라.
제 월급의 반토박이나 되는 돈이라도 처음 받은 월급이라고, 좋은 것 사주겠다고 마주앉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무리 보아도 레어인 듯한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를 썰며 애인은 쾌활하게 웃었다. 주말이라 알람이 안 울려서 급하게 나오느라 화장도 못 했다는 그녀의 얼굴 중 입술만은 빨간 립스틱으로 꼼꼼히 채워져 있었다. 애인은 잘게 썰린 고기 한 점을 제 입에 쏙 집어넣고 잠시 우물거린 뒤 내 접시에 한 점을 놓아주었다.
애인의 버릇이었다. 꼭 한 입을 먼저 먹고는 맛이 좋아야 내게도 나눠주었다. 제가 먼저 맛을 보아 별로다 싶으면 말로는 맛있다 하면서도 내게 주지 않고 저 혼자 먹고는 하는 사랑스러운 배려가 담긴 버릇. 그러니까 방금 내 접시에 올려진 고기는 합격점을 얻어낸 귀한 한 점이다.
나 합격하면, 결혼할까?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던 애인의 손이 멈췄다.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반히 바라보던 눈이 가로로 길게 휘어진다. 아무래도 장난을 칠 모양이다.
싫어.
왜?
더 멋있게 해.
마무리로 통통한 새우를 콕 찍은 포크가 애인의 빨간 입술 사이, 그 틈을 비집고 쏙 들어간다. 으흐흐. 몇 천 번쯤 보았을 텐데도 귀여움을 견디기 어려운 그 콧소리에 나는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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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는 적당히 책도 읽고 적당히 놀기도 하다가, 중학생이 되면 입시학원도 다니고 어린이 때보다는 조금 더 공부해서 학구열이 높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생 3년은 내 인생에 없다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면, 그러면 다 된다기에 그런 줄로 알고 살았지만 세상에 '그러면 다 되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꿈을 약간 접었다. '남들처럼'.
'남들처럼'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해서 취업하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적당히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적당히 타협했다 생각했는데 이 타협안도 도무지 순순히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그 길을 걸으며 가장 괴롭고도 우스운 것은 내가 손에 쥔 대부분의 희망을 내려놓고 납작 엎드려 기다시피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자리를 누군가는 얻지 못해 안달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진짜배기'가 아니라며 열등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일조차도 바닥은 아니라는 두려움이 이따금 나를 감쌌다. 나는 그래서 손에 쥔 조그만 것을 더더욱 힘을 주어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소설 속에서는 그럴 때마다 주인공이 붙잡고 안도를 느끼는 무언가가 있던 것 같은데, 내게는 그런 것이 없었고 나는 나의 두려움을 대체로 홀로 오롯이 감내했다.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탈피할 줄 아는 동물이었다. 이 고통이 지나가면 나는 새로운 껍질을 갖게 되리라. 흠 없고 반짝이고 아름다운, 이전보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것으로.
인내하는 것은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편안한, 그야말로 다디단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