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28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잠깐."

말없이 빤히 바라보는 아라를 피하지도 않고 그는 제 할말만 했다.

"확률은 반, 내 직감은 아래쪽."

관심 없다는 듯 아라는 soure foresteria라 적힌 위쪽의 벨을 눌렀다.

"안돼."

그가 내지른 외마디 비명은 DEL GIGLIO 수녀원 건물 외관에 부딪치고서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노래가 천직이려니 하고 살아요. 낭자한 지문의 흔적으로 보아, 제작 이래 널리 또 이롭게 활용되었다는.. 추리는 영 젬병이구먼. 그건 그렇고 아직도 안 갔어요?"

손목의 시계를 대충 건드리며 보란 듯이 아라는 약을 올렸다. 그가 입을 벌리려는 순간, 육중한 나무문이 스륵 열렸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요.. 아라 씨."

"안녕하세요. 수녀님."

비록 부둥켜안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로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눈에 익은 복장, 익숙한 피부색, 반가운 모국어, 이 모두의 합을 예상치 못했는지 진호는 입도 떼지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기 바빴다. 입찬소리로 일관했지만, 숙소 문제가 내동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너른 밤하늘과의 원치 않는 동침은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왔다.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입꼬리는 절로 올라갔고, 만개한 벚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얼굴 가득 새겼다.

"아는 사이.. 인가 봐요?"

머리에서 시작해 목까지 내려온 검은 베일, 그 안쪽으로 덧댄 하얀 깃으로 인해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았지만, 훤한 얼굴 간간이 옅고 깊은 주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광음은 살같이 지나 초로의 여인이 되었고 오롯이 바친 시간 앞에서, 싱싱한 젊음은 영 맥을 못 추었다.

"누구신지?"

"아.. 저는."

"떠날 사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들어가시죠."

수녀의 너그러운 등에 팔을 얹고 안으로 떠밀듯 하자, 다급한 나머지 그는 아라의 옷자락을 급히 잡아챘다.

"이렇게 가면.. 어떡하라고."

"어떡하긴, 네잎클로버는 혼자 찾아야지."

막아 설 틈도 주지 않고, 눈앞에서 나무문이 쿵- 하고 닫혔다. soure foresteria라 적힌 벨을 재차 눌러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 아래 O. Battaglia라 적힌 벨이 다급한 사정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차마 누를 용기는 없었다. 영락없는 외톨이 신세였다. 한창은 아니었지만 햇살은 따가웠고, 돌린 시선에 파고든 수녀원의 외벽에는 갈색 화분 속 양껏 움튼 녹색의 잎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싱그러움이 얄미워져 다시금 하늘에 시선을 두었더니, 뿜어내는 화력은 조금 시들해진 듯했다. 넉넉지 않은 시간임을 퍼뜩 깨달은 그는 더럭 겁이 났다.


아라의 두 눈에 선명히 박힌 그의 모습은 출입문까지 오는 동안 내내 그려봤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양반다리는 고사하고 두 다리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모양새는 엄마를 잃어버린, 울다 지쳐 망연자실한 아이 행색 같았다. 제 나라였더라면 그 모습이 딱해 지나가는 행인이 우유라도 건넸겠지만, 이역만리의 상황은 달랐다. 야박하기 그지없었다. 한 발 또 한 발 다가서자 그제야 눈을 들어 아라를 인지하고는 어깨를 들썩이다 곧장 내리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혼자만 두고 간 것에 대한 서운함일 테지.

"일어나요."

"둬요."

예상했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칭얼대던 조카를 달랬던 것도, 골을 부리는 그를 얼러야 하는 것 역시 제 몫이었다. 뱉지 못할 속마음이 솟구쳤다. '여자, 재미없어.'

"한댓잠은 면했으니, 엉덩이 얼른 떼지."

"정말?"

"거짓말은 철없던 시절의 자화상이고."

한껏 우쭐대고서 아라는 손에 든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어댔다. 그 종이를 냅다 가로채 훑고 또 훑은 후에야 그는 아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천상 가이드인 거 그새 잊었나 봐."

뻐기는 것도 모자랐는지 거드름까지 피워댔다.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가볼까나. 짐짝을 인도하러.."

심술궂은 표정으로, 놀리는 말투로 일관하며 거들먹거리는 것도 모자라 건들건들 걷는 아라였으나, 이렇다 할 토씨 하나 달지 않고 간격을 유지하며 그는 걸었다. 현시점에서 볼 때, 마실 나온 마냥 기분 좋은 강아지 역할이 제격이니 말이다. 봄바람에 나부끼는 싱그러운 잎사귀처럼 그의 걸음 끝은 기분 좋게 살랑거렸다.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힘겹게 나무문이 열리자 짙은 어둠과 묵은 공기가 밀물처럼 쏟아져왔다. 지붕 아래 한껏 드러난 서까래는 거미와 쥐들의 공공연한 놀이터인 듯했다. 열까지 세지 않아도 그것들을 찾기란 식은 죽 먹기일 듯싶어 재빨리 시선을 떨구어 방 안을 휙- 둘러본다. 굳이 눕지 않아도 짐작 가능한, 탄성이라고는 애진작 사라져 버린 이름뿐인 침대와 콘솔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하기 그지없는 다리 네 개가 달린 나무로 된 짐짝과, 그 위에 버젓이 놓인 성경책,, 그 흔한 갓등 하나 없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쉼 없이 올라온 커다란 끌낭은 비좁은 제 자리를 못마땅해했고, 들숨 날숨을 연거푸 반복하자, 좁아터진 실내는 이내 웅웅 거렸다.

폐쇄적인 공간에 제 몸하나 간신히 뉘이며 옴짝달싹할 틈조차 허락지 않았던, 느슨해진 신앙생활,, 스스로를 채찍질할 목적이었을까? 아님 퇴마의식을 치렀던 장소? 애당초 수도원으로, 현재는 순례객들을 위한 용도로 확장했으나 여전히 수도회 소속이 아니던가? 딛는 무게에 비례한 반복되는 음산한 소리와 윤기 하나 없는 나무 바닥에 찍혀있는 알 수 없는 자국들,, 과연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실제 접하지 못했다는 DEL GIGLIO의 수녀, 덮어놓고 한걸음을 달려온 자신, 이 사단의 원인이 그,, 과연 그 누구의 잘못이던가?? 고풍스러운 외관을 병풍 삼고, 환한 웃음으로 반기던 푸근한 인상의 큰어머니만 같던 원장 수녀에게 속았다는 생각뿐이었다.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 따지고 싶었다. 고국의 건축 문화와 손님 접대의 예를 설명해주고 싶었다. 방의 면적과 맞먹는 커다란 창문에 또렷하게 박힌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외관,, 그렇다고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상념들은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불을 켜니 괜찮은데."

어느 틈엔가 스위치를 찾았나 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듯 흐릿한 빛은 끔벅대며 방 안에 흘렀다. '괜찮기는 뭐가..' 울컥하는 속마음을 채 누르지 못한 탓에 아라의 목소리는 어수선했다.

"이런 줄은 몰랐어요. 수녀님도 나도"

"한댓잠은 면했으니. 이만하면 천국이지."

침대 위 벽에 매달린 나무 십자가를 보며 그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 십자가마저도 거슬렸다. 방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맘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딱 오늘 밤뿐이에요. 체력 다 탕진하고 와요. 눕자마자 지쳐 잠이 들게끔."

"오케이."

안심시키려 했던 대상이 그녀인지, 아님 자신인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는 끄덕였고, 그들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듬성듬성 비어져 나온 초록색 잎사귀 아래 설핏 푸른빛이 도는 회색의 네모난 철문은 한풀 꺾인 여배우의 모습처럼 이렇다 할 매력 하나 없었고, 모든 것의 시작점임이 무색할 만큼 시큰둥하게 서 있었다. 그 옆으로 난 총합 여덟 개의 쇠창살로 이루어진 철문은 굳게 닫혀 있어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뾰족한 창살과 창살 사이 드러난 틈으로 인해 외부인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고, 궁금함을 증폭시켰다. 언덕 위의 도시, 하늘 바로 아래 우뚝 선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등지고 서면 아로새겨지는 Istituto Beata Amgelina,, 최전선의 수문장 격인 철문을 통과하면, 자갈로 된 모래사장을 연상시키는 듯한 새하얀 조각돌이 널따랗게 펼쳐진 그 사이로, 길게 놓인 팥죽색의 벽돌이 레드카펫처럼 깔려 있어, 건물의 출입문까지 이어진다. 비록 나팔 부는 천사는 없었지만, 클라라 성녀의 얼굴을 조각한 석판과, 출입문 위 발코니에 놓인 소담스러운 꽃이 담긴 화분은 다분히 환영 인사를 보내는 듯했다. 그로 인해 천국의 문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화이트 톤의 4층 건물의 외관은 그늘진 구석 하나 없었고, 조용했다. 해서 성스럽기까지 했다. 번지수 없는 문패 없고, 사연 없는 사람 없듯, 건물에는 감춰진 공간들이 있다.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보통의 지하 아닌 지상이란 것이 달랐을 뿐,, 그 점은 괜한 두려움을 부추겨 형체 없는 공포심을 가중시켰다. 드러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빛 한 줄기 새어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끔 꼭꼭 잠그고 있었다. 어디쯤인지 가늠도 안 되는, 까마득한 실체에서 눈을 돌려 건물 외벽에 등을 기대니 제멋대로 붙여진, 울퉁불퉁한 벽돌이 무게감을 달리하여 짓눌렀다. 건반 위로 다섯 개의 손가락이 머물렀다 멀어진 흔적처럼, 각기 다른 무게감은 머릿속 상상의 회로들을 차례차례 눌러댄다. 떼인 돈을 받으러 온 업자 같기도, 애인을 기다리는 상기된 여인처럼도 보였다. 통금 시간을 어겨 원장 수녀의 문책을 기다리는 속세의 때를 벗지 못한 이름뿐인 수녀인 것도 같았다. 그것은 더 나아가 머릿속 깊숙한 곳의 감춰둔 회로를 무심히 건드려 풍채 좋은 원장 수녀를, 건물 꼭대기 층에 등장시킨다. 좁은 계단을 돌고 또 내려와 출입문까지 오는 동안 상체에 한껏 눌린, 후들거리는 두 다리와 넘어갈 듯 쌕쌕-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 모습을.. 심술궂은 상상은 외벽의 벨을 누르라고 끈덕지게 종용했지만, 성소를 지척에 두고 주의 종을 괴롭힐 만한 담력은 없었나 보다. 교활했던 얕은 상념은 허물을 벗듯 스르르 흘러내렸다.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르고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지."

"언제 왔어요?"

자동차의 보닛을 만져 엔진의 잔열 체크를 하듯 아라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걱정.. 했었구나."

싫지 않은 듯 그는 자그맣게 웃었다.

"밤새 춘향이라도 업고 놀은 이몽룡처럼.. 거칠해서는."

발을 내밀며 그가 거리를 좁혀오자 아라는 딱 그만큼을 물러났다.

"잠자리 투정이 돋았지 뭐야."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는 마주하고 있던 몸의 방향을 틀어 한 걸음을 내딛으며 아라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시공간을 달리해도 변치 않는 한 가지. 긴 공복은 참기 힘들어."

우려했던 밤의 사투는 다행히도 없었는지, 히힛- 꾸러기 같은 웃음을 흘리고 성큼 걸어 나가는 모양새에 한껏 경직되었던 근육들은 단번에 느슨해졌다. 미끄러지듯 유연히 나아가는 그의 보폭을 맞추려 아라는 두 다리를 부산스레 움직여댔다.


개나리색, 아이보리색 천은, 그 아래 놓인 직사각형 원목 식탁과 숨바꼭질이 한창이었다. 술래는 원목 식탁, 우위를 차지한 색색의 천들은 이를 바꿀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고, 그것들의 정돈된 모양새로 보아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닌 꽤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처럼 보였다. 하나 또 하나 무심하게 놓인 듯한 원목 식탁이었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반듯반듯하게 놓인 형국인지라, 흡사 구획 정리가 잘된 네모반듯한 농지를 연상케 했다. 쉬이 접할 수 없는 수녀원이라는 공간적 특성 때문일까?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진호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흠흠."

아라는 목청을 가다듬어 공간 안에 가득했던 무거운 정적을 일제히 흩어지게 했고, 그제야 시선을 돌린 그는 마주하고 앉은 수녀와 아라를 바라보았다.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 기시감이라 했던가? 글자를, 품고 있는 뜻을 다시금 곱씹었다. 수녀와 마주하고 있자니 괜스레 오금이 저린 게, 없는 잘못까지도 실토할 것만 같았다. 슬그머니 말아 쥔 주먹을 무릎 위에 얹으며 흐트러짐 없이 자세를 취했다.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을 구하는 성스러운 곳에서? 더군다나 물잔과 두툼한 돈봉투도 없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는 듯 진호는 그럭저럭 안심한 모습이었다.

"적잖이 놀랐다 들었어요."

침묵 속에서 말문은 연 건 놀랍게도 수녀였다.

"주님의 음성도 그리 따끔하지 않았다오."

호되게 당한 듯한 목소리와는 달리 수녀의 얼굴에는 개구진 표정이 한가득이었다.

"성당 양식에 문외한이라 그렇지, 개인 기도실은 같은 모습이더라고. 아~ 여기 바닥은 타일이더라."

"속상했던지 사진과 함께 설명을 덧붙이길래요."

그제야 그도 이해가 간다는 듯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 보이더라."

그의 말에 동조하지 못하겠다는 듯, 아라는 되물었다.

"어째서?"

"들어봐요. '보이는,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의 간구라!!', 들어갈 때는 미약한 자였어도 그곳을 나올 때는 세상 담대한 이가 되었을 테니, 그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을까?"

본디 가톨릭 신자라도 되는 양, 그는 있지도 않은 믿음을 우쭐대기에 바빴고, 소리가 없었다 뿐이지, '아멘'

수녀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수녀 옆이어서일까? 빈정대는 마음은 바짝 쫄아들어 아라로 하여금 끙- 들릴 듯 말 듯한 앓는 소리를 뱉게 했고, 이와는 달리 장난스럽게 눈알을 굴리며 할 말이 아직이라는 듯 진호는 입을 열었다.

"한동안 비워 둔 것 같던데, 그 이유는 보이는 것에 대한 설렘 때문이겠죠?"

요는, 창문을 액자 삼아 자리 잡은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지칭하는 것일 테지.

"실은 오늘 나도, 아니 우리도 그 비슷한 경험을 했다오."

"무슨요?"

마치 옛날 얘기라도 주워듣듯, 그는 몸을 반 자 앞으로 내밀어 틈을 좁혀왔고, 옆에 놓아둔 종이백에서 꺼낸 것들을 하나하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수녀는 뽑기에서 플라스틱 반지라도 찾은 아이처럼 한껏 들떠있었다.

"이게 다 뭐예요?"

마술사라도 된 양, 손을 넣으면 빈 손으로 나오는 법이 없었고, 소포장된 옥고시, 밤모양의 만주, 둥그런 달고나,, 하나같이 고국의 것들이었다. 자일리톨 껌, 믹스커피, 호박엿, 박하사탕까지 꺼내니 그제야 쇼핑백은 홀쭉해졌고, 수북하지는 않았지만 오목조목 다양했다. 자랑할 게 아직이라는 듯 이리저리 매만진 휴대폰을 진호 앞에 들이밀었다.

"오늘의 아침 기도는 시련이었요.."

세 개의 얼굴, 세 개의 손, 그리고 이가 나간 하트 하나, 다섯 개의 뿔모양이 하나같이 뭉툭해진 별로 추정되는 또 하나, 과자가 사라진 초코송이 모양을 한 마지막 하나,, 그 아홉 가지를 면밀히 살피느라 진호는 여념이 없었다.

"내 것은 우산이었는데, 대를 분질러 먹었지 뭐예요."

그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수녀의 얼굴 가득 여전히 생생했다.

"다른 분들은 난이도 하, 동포인 수녀님은 난이도 상.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날씨가 협조해 줬으면 하트랑 별은 성공했을 텐데."

코끝을 찡긋- 하며 아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아침을 대접하려 했더니 극구 사양하잖아요. 해서 단서를 하나 붙였더니 단박에 오케이 하던걸요."

"움브리아주의 대표 음식,, 하도 운운하길래요."

수줍게 내민 손끝은 정확히 진호를 가리키고 있었다. 책임을 전가하듯 말이다. 주섬주섬 일어난 수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접시들을 내려놓았다. 삶은 돼지고기와 으깬 감자, 스크램블 에그, 모닝롤을 닮은 빵과 버터와 잼, 잘게 자른 브로콜리를 넣은 수프까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정갈한 상차림이었지만 연신 손끝을 쓸며 머뭇거리듯 말을 했다.

"대표 음식이라 하긴 부끄럽고요. 우리 먹는 음식 함께 하는 겁니다."

"제대로 찾아왔네요. 움브리아주의 가정식, 아니 수녀원식인가?"

꾸밈없는 넉살로는 부족했는지 허허- 사람 좋게 진호가 웃자, 이내 물들어 아라와 수녀 역시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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