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30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Waft her, angels through the skies

Waft her, angels through the skies

Far above yon azure plain, far above yon azure plain

Angels, waft her through the skies, waft her through the skies

Far above yon azure plain, far above you azure plain

Glorious there like you to rise, there like you forever reign

Glorious there like you to rise, there like you forever reign

Forever reign, there like you forever reign

*헨델의 오라토리오 예프타(Jephtha) 中 ' Waft her, angels through the skies'


저만치 떨어진 나무 숲에 누가 있기라도 한 듯 진호는 그곳에 눈을 박고 입을 벙긋거려 낮고 높은, 높고 낮은음을 연신 내어 보냈다. 누구의 목소리인가 싶었는지 떼를 지어 이동하던 새들도 잠시 제자리걸음을 한다. 이에 질세라 음정, 박자, 호흡 그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라는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벌렸다.

"찾았구나. 나의 원픽."

"일요일의 로마, 차 없는 그 도로에서 알았지. 곱상한 외모에 반한 줄 알았는데 조심스레 동전을 놓고 돌아서는 그 모습을 보고야 말았네. 그때 알았지."

"잊지 못할 거리 공연이었다는."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아라는 지그시 눈을 감았고, 진호는 마뜩잖은 표정을 새겼다가 곧바로 지웠다.

"오라토리오를 아는 팬심이라? 실은 나도 같거든. 당연 부러웠고, 솔직히 질투가 조금 앞섰다는."

칭찬을 덧입은 훅 들어온 그의 말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고개를 숙인 채로 아라는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부끄러워서요. 실은 나 무곡(舞曲)인 줄 알았거든. 쿵짝짝- 쿵짝짝- 들리기에 옷자락 잡고 턴까지 할 뻔했는데, 가사를 그리고 배경을 알고는 어찌나 놀랐던지."

노래를 복기하듯 진호는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집중한 탓에 절로 새긴 미간의 주름은 어느 틈엔가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들릴 수도."

"편들지 마요."

쌜쭉 내민 입술, 그러나 더없이 단호한 목소리였다.

"상상도 못했다."

"누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호는 아라의 팔뚝을 거머쥐고는 앞으로 슬쩍 밀었다. 그러나 돌난간에 걸터앉은 그녀의 몸이 한차례 휘청거릴 뿐, 그 가벼운 장난은 더 이상 그녀를 흔들지 못했다.

"떨어져도 좋다고."

"뭐?"

"늘 궁금했다며. 고통보다는 설렘일 테지~ 하는 그 막연한 상상이, 없는 시간 쪼개서 외우고 또 연습한 건데 불러는 듣고는 가야지. 아니 그런가?"

"세상 가장 섬뜩한 고백일세."

"고백이면 고백이지, 섬뜩한 고백은 뭐야?"

"부러 시간 내서 보러 오는 거나, 없는 시간 쪼갠 거나,, 결국 같은 말이잖아."

"말꼬리 잡는 여자 매력 없는데."

"그렇다면.."

아라는 말끝을 급히 뭉갰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겨 단정히 한 후에 자세를 바로 잡고 눈꺼풀을 잘게 깜박였다. 필살기라도 되는 양 말이다.

"이래두?"

"그런다고 없는 매력이 생기나?"

다분히 빈정거리는 어투였다. 밸이 꼴리는지 허공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괜한 분풀이를 하자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가 재빠르게 아라의 팔을 잡아챘다.

"위험해."

"죽으라고 떠밀 때는 언제고."

"그럼 난 어떻게 살라고."

잠깐이었지만 두 사람의 눈동자가 단단히 엉켰다.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문득, 불쑥할, 추억이 그 기억들이 슬픈 거라면.. 그건 싫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진호는 말을 잇는다.

"높은 곳에 올라오니 머리가 절로 맑아지네. 대체 얼마만인지."

빤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제법 무뎌졌다고 자신했던 아라였다. 그러나 조금 전 그의 시선은 분명 달랐다. 추궁해 볼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일 테지. 그렇다고 잠자코 있어? 그건 너무 바보 같잖아. 만약에 다시 마주한다면? 그때는,, 연이은 상념들은 한데 몰려와 그녀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 주변 산새에 넋을 잃고 있는 듯했으나, 정작 그의 목언저리에는 땀이 다 맺혀 있었다. 빈정대는 말과는 달리 앞서나간 마음을 대신한 손끝이 자칫 그녀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릴 뻔했다. 만약 그녀가 휘청거리지 않았다면? 해서 팔을 거머쥐지 않았다면?? 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목 언저리에 다시금 열이 올랐다. 장애물 하나 없는 하늘, 바짝 성이 난 태양은 이글거렸고, 빛살은 낙하하여 바로 비추었다. 그때,, 거짓말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들을 어루만졌다. 잠시 머물고 이내 사라진 그 자리에는 타는 듯한 화기만이 남았다. 마치 그것은 마지막 경고인 듯 강렬했다.


"금방 올게요."

"천천히 와요. 계단 조심하고."

다정한 그의 말투에 속마음과는 달리 아라는 괜스레 입을 삐죽였다. 나무문이 그녀를 삼켜버렸고 남겨진 진호는 익숙한 땅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몇 초나 지났을까? 귀에 익은 문 열리는 소리에 목소리가 앞서 나갔다.

"천천히 오래두."

마주한 시선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라 대신 정숙한 모습의 수녀가 꽉 차게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멋쩍은지 그는 뒤통수를 긁적였고 자애로운 표정, 가벼운 목례로 수녀는 인사를 대신했다.

"두고 간 게 있다고 해서, 기다리는 겁니다."

물은 이 하나 없는데 진호는 꾸역꾸역 말을 이었다. 보일 듯 말 듯 끄덕이는 수녀는 마치 다 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없이 바라보는 그 시선은 제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고, 이미 눈치를 챈 것만 같아 더럭 불편함을 느꼈다. 수녀를 피하고자 재빨리 돌린 시선은 수녀원의 외벽을 향했다.

"봄은 또 머물러 생명을 움트게 했네요."

흔한 날씨 얘기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생명, 그것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신의 영역까지 들먹이며 그는 낚싯줄을 드리웠고, 덥석- 미끼를 물은 수녀는 내내 일자로 닫혀있던 입술을 달싹였다.

"식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숨을 불어넣어, 움트게 하는 계절이지요."

수녀의 입에서 흘러나와서 그런지 더없이 성스러웠다. 뜻과 소리에 심취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그냥은 없답니다. 존귀하신 그분은 계획하시고 정확히 행하시는 분이니."

분명 수녀의 입을 통한 것이었건만 진호의 시선은 하늘 저 위에 닿아 있었다. 그곳 누군가의 음성을 눈앞의 수녀가 대신 전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체험이었다. 그러나 굽이쳐 움직이는 그것들은 오롯한 자신의 몫이었다. 바라다본 수녀는 잘게 쪼개진 햇빛을 이고 있는 잔잔한 물결처럼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수녀는 그를, 그는 수녀를 아니 혹 그 안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 무언가를 더 면밀히 보고자 속눈썹 하나 끔벅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밖으로 나온 아라의 시선에 두 사람의 대치 상황이 아로새겨졌다. 심각한 듯, 평온한 듯한 그 기묘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다가갔다.

"천천히 온다고 온 건데."

"그럼 이만."

가벼운 인사를 남기고 수녀는 걸음을 재촉했다.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눈은 멀어지는 수녀의 뒷모습을 붙잡았고, 아라의 시선은 그를 따랐다.

"더 천천히 올 걸 그랬나?"

"원래,, 그런 거예요?"

그의 관심을 돌리는 것은 성공했으나, 딱 그뿐이었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 사람 말은 아닌 것 같은. 소리는 있되 사람이 주체가 아닌,, 그런 거."

아라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인지.. 아라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꿈꿨어요?"

답답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어깨를 들썩여 고인 숨을 뱉어 내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다본다. 그를 따라 눈을 들어 바라보니 파란 하늘빛이 시리게도 펼쳐졌다.

"이기지도 못 할 싸움일랑 관두고."

아라의 만류에도 진호의 시선은 하늘에 꽂혀있었다. 앞서 걸으면 곧 따라오겠지 싶어 이에 아라는 그에게 닿으라고 일부러 크고 묵직하게 발을 내디디며 잇달아 걸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뭘 하라고?"

"노래. 수녀님이랑 그 얘기한 거 아냐?"

"처음 듣는 얘기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전달자는 나였는데 수녀님이 선수 친 줄 알았어. 칠십 넘으면 대졸이나 국졸이나 매한가지라고, 정작 할 말은 뒷전이고 안 할 말은 기를 쓰고 한다고 하길래. 괜히 겁먹었잖아."

"그 정도까지는 아니신 거 같은데."

"포인트는 그게 아닐 텐데."

"괜한 재주 부렸네. 아까 로카 마조레에서. 사람이 참 야박도 하지."

"오늘은 행운이 가득한 날이 아닌 듯."

혀를 빼꼼 내밀어 보란 듯이 덧붙이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라는 불씨를 잠재웠다.

"고아라."

"말을 왜 잘라먹지?"

불편한 심기는 절로 눈썹을 추켜올렸다.

"나이도 같은데 뭐. 억울하면 말 놓던가."

딱히 변명할 거리가 없는지 아라는 눈으로만 쏘아댔다.

"어쨌거나 그렇게 부르지 마요. 친한 사이도 아니면서."

후훗- 그는 웃었다. 차마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겠고, 그렇지만 끝은 내야 했다.

"은혜 갚은 까치 알죠? 그쪽 숙소 수녀님이 학수고대하고 계신다고. 사자성어라 모르쇠 할까 봐 짚어 말해요. 목 빼고 기다리고 있다고. 짐작할지 모르겠지만 숙소 얻는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어요. 오페라의 본거지라는 문화적 특성에 힘입어 당신 정보를 슬쩍 흘렸더니 덥석 물잖아. 2020년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안드레아 보첼리 님이 친히 오셨는데 애석하게도 수녀님이 그 공연을 못 보셨다고."

"어째, 술술 풀린다 했다."

고개를 크게 젓더니 뭔가 떠오른 듯 그는 입술을 떼었다.

"코로나가 지구를 꿀꺽 삼킨 상황,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는 관객 없는 공연, 곡은 'Dolce è Sentire', 내 기억과 당신 기억은 다른 모양이지."

"성부가 같잖아. 무튼,, 선택지는 없다. 왜? 무조건 해야 하니까. 이럴까봐 헤어지기 전에 말하려고 한 건데, 수녀님이 먼저 운 떼신 줄 알고 지레 겁먹어서는."

아쉬운 건지, 못마땅한 건지, 아라는 발끝으로 애먼 땅을 콕콕 찍어 댔다.

"이따가 말하면?"

"시간이 촉박하면 고민은 덧없으니, 게다가 밤은 뭐다? 감성. 해서 게임 끝이라는."

"고아라!!"

"친한 척하지 말래도. 짱구 돌리지도 말고. 맞다. 나한테 빚졌잖아. 그 카드 쓰자. 그럼 되겠네."

잃어버린 돈이라도 찾은 듯 목소리는 기뻐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한다고."

"어? 정말? "

"그리고,, 카드는 그렇게 쓰는 거 아니지. 정말 필요할 때 마지막이다 하고 던지는 거지. 그 카드의 효용 가치가 얼마짜리인데."

바로 말하지 않고 그는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둘러댔다. 어찌 됐든 결론은 yes.. 그것만은 확실했다.

"말 바꾸기 없기. 퉤 퉤 퉤."

"더럽게. 정말."

훤히 드러난 팔뚝을 쓱 문지르고서 진호는 배시시 웃었다. 그의 불만과 그녀의 불안이 충돌해 일촉즉발의 긴박한 대치 상황이었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가 튀어 버리면 폭발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고, 이때다 싶은 대응할 답변들 역시 한 보따리건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흰 수건을 던져 버렸다. 것도 너무 일찍,, 분명 이긴 싸움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기는커녕 패자는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저 웃음, 저 여유는 원래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스며들지 못하고 곁에서 맴돌기만 했다. '진 싸움인가?' 스르륵 내려가는 어깨는 앞서가는 생각을 붙잡았고, '뭐가 이렇게 쉬워' 감출 수 없는 속마음은 비쭉 고개를 내밀었다.


*오라토리오 - 16세기 무렵에 로마에서 시작한 종교 음악. 성경의 장면을 음악과 함께 연출한 교회극에서 발달하여 오페라의 요소를 가미한 영창, 중창, 합창, 관현악으로 연주한다.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 <사계>가 특히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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