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31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시작점은 코뮤네 광장,, Fontana dei Tre Leoni를 등지고 서면 마주한 1 Croso Giuseppe Mazzini, 외관을 하얀색 벽돌로 꾸민 건물 앞을 점령한 자동차들의 열을 따라 진입금지 표지판까지 걷다 보면 나란히 선 건물과 건물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몇 발자국 옮기면 좁다란 마당, 청동 조각상이 반긴다. 바짝 다가가 들여다보면 여자의 오른손엔 쇠사슬이, 남자의 왼손엔 잘 개어진 겉옷이 들려 있고 어깨와 어깨를 맞댄 채 손을 잡고 있다. 눈을 들어 동상 위로 향하면 외벽 흰 대리석에 새겨진 PIZZA CHIESA NUOVA, 시선 을 내리깔면 만나게 되는 AI GENITORI S.FRANCESO라 새겨진 검은 동판,, 그 모두는 프란체스코 성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찾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아라는 에코백 안 손바닥만한 노트를 꺼내 책갈피가 붙어 있는 페이지를 열고 눈으로 읽어 내려간다.


이곳은 베르나르도네(Bernardone) 가족의 집이었으며, 성 프란체스코 성인의
출생지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조반니 디 베르나르도네(Giovanni di Bernardone)의 아버지는 부유한 비단상이었다. 이곳에서 그의 영적 체험은 시작되었다. 부와 가난에 대한 성찰과 기독교의 사명은 그의 생활 방식의 변화를 불러왔다. 세속의 삶을 버리려는 아들을 막기 위한 아버지는 그의 육신을 쇠사슬에 묶어 감옥에 가두고 만다. 이를 딱히 여긴 어머니는 그 쇠사슬을 풀어 주었고 이에 그는 입고 있던 옷을 아버지에게 건네며 주의 종이 되겠다는 자신의 뜻을 피력한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하나님 곁으로 간 이후, 이곳에 작은 교회가 세워졌고 순례자들의 중요한 기착점이 되었다는 1398년의 기록이 있다. 그 당시 아시시에 지어진 마지막 교회였기 때문에 키에사 누오바(Chiesa Nuova)라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차 항폐해져 갔다. 1613년 아시시를 방문한 스페인 총독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로마 주재 스페인 대사관과 스페인 국왕 필립 3세의 기부금으로 그 집을 사서 바로크 양식의 새로운 교회를 건축하게 된다.

조용히 노트를 접은 아라는 마주한 동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곳엔 자식을 염려했던 부모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자식이란 품고 있어도 내어 보내도 기쁨보다는 걱정거리인 존재,, 제 마음 감싸기 급급해 정작 부모 마음은 뒷전이었다. 퍼 주기만 하는 사랑을 당연하다 여겼고, 살피는 눈길을 귀찮아했으며, 애달파하는 그 마음을 때론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는 행여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려한다면 지옥 끝까지라도 가서 끌고 오는 것이 도리요, 때에 따라서 악마와의 거래 또한 불가피하다 여긴다. 상의 없이 당신들 뜻대로 세상 구경 시켰다는 그 잘못 하나로 강인한 탈을 쓰고 억척스러움을 부러 몸에 입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전전긍긍하는 어찌 보면 미련스러운 그들,, 멀쩡한 제 자식을 가둬 놓은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감히 짐작도 안되었다. 아라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엄마.. 그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나.'


꽤 늦은 밤이었다. 아니 애진즉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 새날의 어느 한 지점이었다. 수차례 오간 술잔에 굳게 채웠던 마음의 빗장이 풀렸는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그녀의 넋두리 같은 혼잣말이었다. 손 가는 남편, 눈 가는 아들을 둔 세 살 많은 20대 후반의 선임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던 당시의 아라에게는 먼 나라 얘기만 같아 얼큰히 취한 와중에도 피식 웃음을 흘렸던 기억이 또렷했다. 붉은 화마가 훑고 지나간 자리 애처롭게 달린 담뱃재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라? '밥은~' 끼니부터 챙기는 엄마 생각에? 곁에 없어야 비로소 내어 놓는 비겁함 때문일까? 난데없는 상념들로 눈 언저리가 묵직해졌다. 그 눈에 비친 운동화 끝이 휘청거렸다.


'저깟 동상이 뭐라고.'


입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고, 눈은 생각지도 못한 눈물을 토해냈다. 못 견디겠는지 두 다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름만으로도,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그 엄마가 보고 싶었는지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아라였다. 마치 제 자식이라도 되는 양, 말없이 선 부부는 다 이해한다는 눈길로 아라를 쓰다듬었다.


피렌체, 로마를 거쳐 오며 화려한 양식들을 익히 보아서일까? 집은 주인을 닮는다고,, 벽돌로 된 건물의 외부나 들어간 내부나 이렇다 할 특징 없이 평범했다. 프란체스코 성인의 생전 모습을 조심스레 그리고 찬찬히 새기는 아라였다. 돔 천장 아래의 내부 벽을 장식한 성화는 여느 성당과 다를 바 없었고, 그나마 눈길을 끄는 건 단 두 가지,, 성인이 실제로 감금되었을 장소로 추정되는 굳게 닫힌 나무문과 당시의 모습을 모형으로나마 간직한 곳,, 가지런히 모은 두 손, 경외심을 담은 그의 두 눈은 벽에 걸린 십자가에 닿아 있었다. 성당의 가장 깊숙한 공간인 후진(後陣)에 위치한 제단 측면에 놓인 오르간에서 시선은 멈췄다. 모차르트의 영세와 결혼식이 거행된 육천여 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이 있는 잘츠부르크의 대성당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소소했지만, 제단의 측면 촘촘히 놓인 파이프에 시선을 꽂으며 생각을 더듬었다. 우연히 방문한 명동 성당, 예상치 못한 파이프오르간 선율에 걸음을 멈추었던 그때의 계절은 가물가물해도 귀에 박힌 소리는 여전히 명확했다. 혹여 이곳에서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손은 절로 올라가 은색의 늘씬한 파이프관을 향했다.

"열, 일곱, 스물, 하나."

몸을 돌리자 마주한 그는 안도 밖도 잔뜩 긴장한 듯했다.

"떨려요?"

"말이라고."

이미 엎어진 물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신이 증인을 서지 않았던가. 흐트러지려는 그의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엄살은."

"스무 개.. 거기까지 세다 말았어. 이 작은 성당에 파이프오르간이 있을 줄이야. 그거 세고 있었던 거 아닌가?"

아라는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녀님 반주에 맞춰 연습해 봤는데.."

"파이프오르간에 맞춰?"

"응."

마주한 이가 진호가 아니었다면 껑충껑충 뛰어올랐을 텐데, 눈치도 없이 튀어 오르려는 두 발을 힘을 다해 힘껏 눌렀다. 자꾸만 벌어지려는 입모양을 감추려는 손은 급해졌다. 누가 봐도 부산스러운 그녀의 움직임이었건만 애가 타는 진호는 알 턱이 없었고, 한껏 어깨를 올렸다 이내 툭- 떨어트리며 끙- 앓는 소리까지 덧붙였다.

"너무 기대는 말고, 시간 되면 번역기 돌려 관객들에게 꼭 전하고."

그러고는 등을 돌려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가 지나간 걸음 그리고 걸음을 따라가니 그곳에는 불안, 긴장, 그리고 설렘이 찍혀 있었다. 분명히.


순례객과 관광객이 뒤엉켜 1년 내내 북새통인 아시시, 그중 유독 5월 24일과 10월 4일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시계 초침은 한껏 기울어 5월 23일의 7시를 막 넘긴 시점이었다. 인력과 관심은 일찌감치 24일을 향해 달음박질쳤고, 그로 인해 직사각형의 좁은 CHIESA NUOVA 내부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성당의 중앙 현관에서 제단까지 이어지는 신랑 양쪽에 놓인 몇 개 되지 않는 신도석에는 신부와 수녀뿐이라 따로 또 같은 모습이었고, 그 맨 앞에는 검은 슬랙스에 흰 남방을 걸친, 나름 구색을 맞춘 아라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손을 쭉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홀로 선 진호가 지척의 수녀에게 눈짓을 하자 그에 맞춰 수녀의 손이 오르간의 건반을 건드렸고 이내 묵직한 소리가 파이프관을 통해 터져 나온다. 오르간 건반에 닿을 듯 말 듯 움직이는 상체, 세게 또 가볍게 밟는 페달,, 그로 인해 생성된 웅장한 선율 위로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Stare qui davanti a te

Guardare con questi occhi miei

In cui convergono le stellari vie


Occhi ignari di colui che silenzioso regna in voi

Da sé, dalle stelle

Luce sconfinata prenderà


Penso al giorno che Così pieno sarà di stupore per la tua semplicità

Che tiene in pugno il mondo E in esso durerà


Fino a qui vivrà

E al di là

E al di là


Chiuderò le palpebre davanti al tremulo bagliore

Meno io saprò(Meno io saprò)

Di più crederò


Fammi aprire gli occhi chiusi

E che tu possa avvolgere

Nel tuo vento immenso

L'esile soffio d'anima


Penso al giorno che Così pieno sarà

di stupore per la tua semplicità

Che tiene in pugno il mondo

E in esso durerà

Intatto e qui per sempre vivrà

sempre vivrà


Penso al giorno che Così pieno sarà di stupore per la tua semplicità

Che tiene in pugno il mondo

E in esso durerà


Penso al giorno che

Così pieno sarà di stupore per la tua semplicità


Che tiene in pugno il mondo

E in esso durerà

Fino a qui vivrà

al di là

al di là

al di là


그대 앞에 서서

내 두 눈으로 그대를 바라봐요

당신의 눈 안에 별들의 길이 모여드네요


내 눈은 침묵하는 그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별들로부터

영원한 빛을 받을 거예요


나는 당신의 순수함에 벅차오를 그날을 생각해요

당신의 순수함은 이 세상을 다스리고 그 세상은 계속될 거예요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저 너머까지

저 너머까지


꺼질 듯한 불빛 앞에서 난 두 눈을 감을래요

내 아는 것이 가벼워질수록

내 믿음은 더욱 굳건할 거예요


내 감긴 두 눈을 뜨게 해 주세요

날 감싸주세요

거대한 그대의 바람 속에서

약한 영혼의 숨결을 감싸주세요


나는 그날을 생각해요

그대의 순수함으로 가득할 날을요

당신의 순수함은 이 세상을 다스리고

그 세상은 계속될 거예요

여기서 영원할 거예요

영원할 거예요


나는 당신의 순수함에 벅차오를 그날을 생각해요

당신의 순수함은 이 세상을 다스리고

그 세상은 계속될 거예요


나는 그날을 생각해요

그대의 순수함으로 가득할 날을요


당신의 순수함은 이 세상을 다스리고

그 세상은 계속될 거예요

살아있는 한 영원히

저 너머까지

저 너머까지

저 너머까지


성직자가 되기 전 배우이며 작가였던 요한 바오로 2세는 실제로 많은 수필과 시들을 발표했고, 그의 시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들 중 'la tua semplicita'는 소박함과 순수함을 지닌 그대를 찬미하며, 그런 그대가 나와 함께 세상을 정화시켜 주길 바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찬가였더라면,, 손바닥이 바스러질 만큼 박수를 쳤으련만, 아라는 맞잡은 두 손을 조심스레 가슴팍으로 옮겼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바람과 프란체스코 성인의 삶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을 선포하듯, 진호는 자신 있는 맑고 청량한 고음을 버리고, 기교 하나 없이 진심을 담아 음 하나 또 하나를 찍어 불렀다. 그 울림들이 성당이라는 공간을 가득 메웠고 그로 인해 은혜스러움은 배가 되었다.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묻힐 거라는 자신 없던 그의 말도,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설렐 것이라던 섣부른 그녀의 생각도,, 모두 틀렸다. 오르간 선율 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목소리뿐이었으니 말이다. 남은 감정을 정리했는지 진호는 그제야 아라를 향했고 마주한 시선, 그녀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느닷없는 엄마 생각에, 주책없이 뜨거워진 눈시울에,, 아라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꼭꼭 걸어둔 마음의 빗장을 거대한 힘이 풀어 헤치는 것만 같아 절로 어수선했다. 해서 저만큼 고개를 돌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우레와 같지는 않았으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신부와 수녀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푸근한 풍채의 큰어머니 같은 원장 수녀는 실내를 뒤덮은 기세등등한 환호의 한 중간을 쭉 가르며 거의 뛰다시피 하여 와락- 그를 안았다. 그 바람에 절로 감긴 그의 눈이 자신을 보지 못했다 여긴 아라의 속마음은 말을 한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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