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에 진호는 눈을 떴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힘겹게 올리고 베개 옆에 놓아둔 손목시계를 집어 들었다. 8시 45분, 약속 시간까지 1시간 남짓 남은 셈이었지만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침대에 걸터앉았다. 밤새 머물렀던 묵은 숨을 내어 보내던 크게 벌린 입이 황급히 닫혔다. 그것은 콘솔 위에 놓아둔 와인병을 본 후였다. 애당초 그가 원한 것은 거창하거나, 우아하다거나, 그렇다고 로맨틱한 것도 아니었다. 홀로 그려본 그림은 그럴듯했으나 마주한 현실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초장부터 정신없던 상황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종내 엉망진창 되었다. 대충 술기운이 달아난 듯한 그녀는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댔고, 그러고는 일언반구도 없이 황망히 사라졌다. 한참 남은 술을 기울이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던 그녀의 행동을 분석해 보았다. 알 것도 같은 아라를 떠올리며 한 잔, 잡히지 않는 그녀를 곱씹으며 또 한 잔,, 연거푸 부어댄 탓에 술뿐만 아니라 그의 이성도 차츰 바닥을 드러냈다. 정작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괜한 뜀박질만 한 셈이었다. 소득 없는 한밤중의 사투는 취기를 부추겼고, 무거운 몸을 뉘었다. 기억은 정확히 거기서 멈췄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진호는 침대 위로 벌렁- 누워 버렸다.
"사실이었어."
"뭐가?"
"베스트셀러나 천만 관객 영화의 포인트는 단 하나.."
말끝을 흐리며 아라는 조금 뜸을 들였다가 진호의 눈이 커진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궁금함."
단어 하나 툭 던져 놓고는 슬쩍 곁눈질을 했으나 진호의 호기심은 이미 시들해진 듯했다.
"곱씹느라 새벽 공기 마셨을 테고, 만나자마자 대뜸 묻는 것만 봐도, 아니라고 잡아떼기에는 너무 많이 흘렸다."
추궁,, 얼굴을 맞대자마자 진호는 어젯밤 일에 대해 물었다. 아라의 답이 시원치 않다 여겼는지 대화는 뚝 끊겨 버렸고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고 판단을 오롯이 그녀 몫으로 돌렸다. 목적지인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지척이었다. 찜찜한 기분을 성당 안까지 가져가기는 싫었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라'.. 스치듯 떠오른 말씀을 붙잡고, 아니 절실한 기도를 올리며 아라는 입을 일였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한번 잡아 봤다. 그게 잘못인가."
가타부타 진호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에 아라는 더 이상 들추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이라 여기며 그 마음 씀씀이를 새삼 깨닫는다. 잠시 침묵하던 진호가 입을 열었다.
"전공자도 그러진 않을진대. 휴대폰 벨소리가 월광 소나타라니."
"원래 중국집 아이들은 자장면 안 먹어요."
아라가 싱겁게 웃자 그 역시 웃음을 흘렸다.
"1악장은 빠르게,,라는 당시의 형식에서 탈피하여 느리게 시작하길래. 신선해서.."
순간, 진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저 멀리 있던 기억 하나가 거센 파도처럼 몰려왔다. 그녀를 만난 곳은 연습실이었다. 일이 있어도 없어도 연습을 핑계로 늘 머물렀던, 피아노 한 대가 전부였던 작은 공간,, 큼지막한 이목구비 시원스러운 인상의 그녀는 하얀 페인트, 검은 피아노뿐인 밋밋한 공간을 대번 화사하게 물들였다. 교수님의 압력이라는, 자의에 의해서라는, 하늘 같은 선배의 애인이라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 일정치 않던 등장은 그녀의 존재를 궁금하게 하는 기폭제였다. 정면승부 대신 지켜보기를 택했다. 어쩌다인 그 만남에도 만족감을 느꼈고 연습실로 향하는 발걸음 끝엔 어느 틈엔가 설렘이 묻어 있었다. 사고는 늘 예상치 못한 상황, 익숙한 공간에서 발생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던 오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연습실로 향했다. 굳게 잠겨 있어야 할 연습실 문은 열려 있었고, 피아노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히 걸어 열린 문틈으로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깨를 덮은 찰랑거리는 머릿결, 건반을 두드리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그녀였다. 늘 머리를 묶어서일까? 처음 접한 광경을 간직하고 싶었다. 마치 목욕하는 선녀를 바라보는 나무꾼이라도 되는 양, 숨마저 삼킨 채 바라만 보았다. 그녀의 시간을, 자신의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피아노 소리가 멈췄고 그녀의 눈동자가 쏘아보고 있었다.
"문이 열려있길래,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은 다시 빠르게 연주하는 당시의 형식을 벗어나 월광 소나타의 1악장은 Adagio sostenuto 즉, 느리게 그리고 음을 충분히 끌어서 연주해야 하는 섬세하고도 감상적인 표현이 요구되는 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셋잇단음표 진행이 끊기지 않고 주 멜로디 역시 움직임의 보폭이 크지 않아 전반적으로 튀는 구석이 있거나 클라이맥스가 도드라지는 부분이 없는 비교적 단조로운 구성이죠. 그러나 C#단조의 느리고 잔잔하면서도 어둡고 쓸쓸한 베토벤의 바람을 그대로 표현하기란,, 연주하는 입장에서 쉽지만은 않아요."
귓가에 와닿는 그녀의 목소리는 달빛처럼 밝고도 온화했다.
"다시 한번 들어 볼래요?"
느리게, 또 처연하게,, 그렇게 시작된 연주는 끝이 났다.
"홀로 있는 달빛을 마주하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월광 소나타의 수많은 공연 영상을 돌려보며 듣고 또 들었다.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애당초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해서 그녀를 기다렸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돌아온 건 공연 연습차 당분간은 참석 못한다는 답변뿐이었다. 이름이라도 알았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혼자만의 감정이 아닐까 하는 걱정과 그로 인한 수습의 과정들을 그려보니 덮어두고 그녀의 행적을 쫓을 수도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미소를 몰랐더라면,, 깊이 스며든 그것들은 쉬이 수그러들려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려보내던 가슴 시린 시간 속에 어느 날 그녀가 나타났다.
"오랜만이에요. 여기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마치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람처럼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의 일들을 짐작한다는 듯한 얼굴로 말이다. 알면서도 오지 않았다는,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입장 표명에 섭섭함이 앞섰다. 해서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고백에 대한 답 들으러 왔어요."
마치 허를 찔린 듯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져 내렸고, 기꺼이 그녀의 줄리에타가 되었다. 서로의 손끝이 스친 자리에 전해지는 짜릿한 전율, 맞잡은 손에 집중되는 거역할 수 없는 서로의 존재감.. 좁은 공간에서 몰래하는, 제한 없는 공간에서 드러내는 끓는 감정은 각각의 매력이 있었다. 계절은 계절을 밀어냈고, 치우지 못한 눈 위에 다시 눈이 쌓이듯,, 마음은 보태어져 두터워져만 갔다. 헤아릴 수 없는 행복,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이었다. 늘 그렇듯이 어두운 그림자는 예고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왔고, 고백만큼이나 이별 통보 또한 갑작스러웠다. 헤어지자는 그 한마디에 찬란했던 빛은 사라지고 일순간 깜깜해졌다. 빛은 어둠을 뚫고 돌아왔지만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목소리만이 왕왕거렸다.
'홀로 있는 달빛을 마주하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그녀의 소식을 접한 건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였다. 교류협정을 체결한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으로 유학길에 오른다는 소식이었다. 졸업생 자격이 아닌 이례적인 케이스에 다른 이들의 이목이 쏠린 반면, 동행 여부에만 관심을 쏟았다. 오직 그것만이 궁금했다. 이별은 유학길에 오른 정해진 수순인가? 아니었는가? 그렇게 묻고 또 물었지만 되돌아온 답은 없었다. 언제였던가? 슈퍼문을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너도 나도 떠들어 댈 때,, 보기 드물게 크고 밝은 달이었다. 소원을 빌기는커녕 따져 물었다.
'홀로 떠 있는 달빛을 보며,, 그래서 당신은 행복한가요?'
넋두리 같은 하소연을 끝으로 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잊은 듯이 살았다. 그러고 보니 잊혔다 생각했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앞에서도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불편한 것이 그 기억인지, 끄집어낸 당사자인지, 연기처럼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절망의 심연 속에 내던져진 채 너울너울 춤을 추던 지난날의 모습이 뚜렷해졌고 이에 더럭 겁이 나 뒷걸음질을 치다 발을 헛디뎌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야 말았다.
"괜찮아요?"
걱정하는 아라의 눈빛을 마주하자 놀란 가슴은 조금 진정되었는지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손바닥을 차례로 쓸어내렸다. 말없이 서 있던 진호가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아라는 급하게 막았다.
"괜찮은 거라면 가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서 있는, 지금은 더없이 성스러운 장소이나 과거 이곳은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장소였다. 사람들이 기피하던 이곳에 프란체스코는 묻히기를 바랐다. 예수님이 못 박힌 골고다 언덕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뜻대로 되었다. 그의 선종 2년 후인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었고, 다음날 대성당의 초석을 놓았다. 언덕 경사면에서 공사를 진행하였기 때문에 전체 구조는 하부와 상부로 나뉘었고, 하부 성당은 1230년, 상부 성당은 1253년에 완공하여 5월 25일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봉헌되어 교황의 직접적인 종속 아래 놓였다.
성당 건축의 목적은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골을 보관하는 것이었다. 1230년 하부 성당이 완성되었고, 그해 5월 25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 제오르지오성당(성녀 클라라 성당)의 임시 매장지에 있던 프란체스코의 유해를 가져와 하부 성당 비밀스러운 장소에 숨겼다. 그것은 유해의 훼손과 이슬람 세력을 우려한 프란치스코회에 의해서였다.
도시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세워진 성당,, 그러나 빈곤의 기본 규칙에 따라 교회 건축을 원한 성인의 엄격한 유언과는 첨이하게 벗어난 건축 양식이었다. 이는 거룩한 설립자와 수도회 자체의 영광을 드높일 것이라는 뜻에 의한 결과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하부 교회가 상부 교회를 지지하는 구조로 19세기에는 하부 성당 아래 별도의 지하 공간을 만들었다. 반원형의 하부, 다각형의 상부, 독립 종탑까지 전체적으로 보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고딕양식의 본당 출입문 위로 난 장미의 창을 통과하면 르네상스 스타일의 현관으로 이어진다. 즉,, 이 건축물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합성물로, 이탈리아 고딕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의 결과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눈'이라 불리는 장미창을 지나 하부 성당에 들어서면 현관의 반대편에 1270년 경에 세워진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예배당, 입구 왼쪽으로 성 세바스찬의 작은 예배당과, 입구 오른쪽으로는 익명의 예술가들이 만든 기념물인 Giovanni de' Cerchi의 영묘가 있다. 중앙 본당은 화려하게 장식된 반원형 에프스(apse)에서 끝이 나며, 배럴아치형 천장 아래로 십자가 모형의 트랜셉트의 오른쪽에는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프레스코화와 프란체스코 성인을 나타내는 세 개의 프레코화가, 트랜셉트의 왼쪽으로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 본당을 반쯤 따라오면 이중 계단을 통해 지하실로 내려갈 수 있다. 1818년의 일이다. 비오 7세의 허가 아래 성인의 유해 발굴에 나선 고고학자들은 하부 성당의 제대 앞 회중석 자리에서 숨겨진 입구를 발견했다. 입구를 덮고 있는 바닥을 뜯어내자 무덤을 보호할 때 쓰던 철제 난간이 있었고 이어진 통로를 따라 내려가니 성인의 관을 안치한 지하 석실이 나타났다. 성당 건축 공사를 맡은 프란체스코 성인의 첫 번째 추종자 중 한 사람이자 전직 성 프란치스코 교단 총대리였던 엘리야스 형제가 숨겨둔 성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1253년 생을 마감했다 기록되었으니 대략 600년 가까이 보관된 것이다. 이에 교황 비오 7세는 하부 성당 깊숙한 곳에 별도의 지하 공간을 만들고 제단 위 열린 공간 안에 유해를 안치시켰다.
상부 성당의 내부 역시 십자가 형태의 트랜셉트이나, 다각형의 후진, 파란색 바탕에 금색 별과 그림이 번갈아 장식된 네 개의 늑골로 이루어진 둥근 천장 구조로 볼 때 하부 성당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부 성당의 방점이 성인의 유해라면, 상부 성당은 조토의 작품인 28개의 프레스코화 시리즈라 하겠다. 성당 신도석 아래 부분을 따라 좌우 벽면에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생애를 담은 28개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 조토가 재구성한 성인의 삶을 따라가면 성가대석과 중앙의 높은 단상 교황의 주교좌에 이르게 된다.
상부 성당, 이탈리아에서 가장 완벽한 중세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은 성당 내부를 빛으로 가득 채워 경이로움을,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997년 이곳에 규모 5.5 이상의 강진이 연달아 발생하여 상부 성당의 조토의 프레스코화 시리즈의 일부가 벽면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잔해 더미에서 파편들을 골라 작업하였기에 복원 과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간혹 조각난 흔적이 눈으로 식별 가능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때 지옥의 언덕이라 불리던 곳은 프란체스코 성인에 의해 천국의 언덕으로 바뀌게 되었다. 소박한 교회를 원한 그의 바람과는 조금 어긋났지만,, 결국 성인의 유해는 안전하게 돌아왔다. 그것은 단연코 많은 이들의 수고와 바람 덕이었다.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 조반니 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Giovanni di Pietro di Bernardone)는 어느 날 신의 음성을 듣고, 그 즉시 속세의 삶을 버리고서 작은 형제들이란 수도회를 조직해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나섰다. 1224년 새벽, 라베르나산에서 기도하던 중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다섯 상처를 자신의 손과 발, 옆구리에 똑같이 입었다. 이것은 최초로 공식 확인된 성흔이었다. 성흔 이후 눈이 멀었고 심한 병까지 얻자 죽음이 다가온 것을 깨닫고 다른 수도자들에게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주고 시편 141편을 묵상하고는 선종했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많은 부분이 겹쳐 온다. 해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한 성인이라 칭송받았던 것은 아닐까? 철저히 기피하던 장소를, 움브리아주의 작은 마을을, 말씀에 순종하고 치유의 역사가 임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시는 프란체스코 성인 전과 후로 나뉠 수 있지 않을까? 다 가진 이가 그 모두를 버리고 청빈한 삶을 산다는 것은 종교인의 관점에서, 세속적인 관점에서도 가히 드라마틱한 스토리이니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신자든, 비신자든,, 아시시를 방문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