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37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언덕 위 작은 마을이나 믿음만큼은 대도시 못지않았다. 다수의 성당 중,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라 대성당(Basilica of Santa Maria degli Angeli)은 프란체스코 성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물론 아시시를 통틀어 성인과 연관 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럼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 틈에 아라와 진호도 함께였다. 성당 외관을 대충 둘러본 진호의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아까 본 성당이, 이 성당이냐 그 성당이냐?"

"아직이다만 이성당은 빵집이라던데."

그의 투덜거림에 아라는 시답잖은 농으로 맞불을 놓았으나 흥미가 떨어졌는지 종내 꾸짖듯 한소리를 했다.

"정면 꼭대기 마돈나 동상은 그 성당에는 없었는데. 분명."

"그래서요?"

"특이하게도 이 성당의 특별함은 안에 있어요."

아라는 가이드로 뛰어나다손 치더라도 눈치는 젬병이었다. 보란 듯이 투정 부리는 그를 달랠 생각은커녕 줄곧 제 말만 늘어놓으니 말이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보아 대충 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해서 진호는 마음을 다잡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아니 경청하는 척을 했고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라는 말을 이었다.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 들어 본 적 있어요?"

"코카콜라는 내 안다만."

분명, 버럭 화를 낼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잠잠했다. 닥친 상황이 무섭게 느껴지자 이에 진호는 다소곳한 눈빛으로 아라를 바라보았고, 이때다 싶은 아라는 손에 쥔 여행책을 들춰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흰색 아치형 대리석 아래, 금빛으로 칠해진 입구가 개방된 공간이었다. 전면에 빼곡한 성화로 보아 고해성사를 하는? 그러나 머릿속에 각인된 그곳은 대개 막힌 장소 아니던가!! 설마?? 한껏 커진 눈을 대신해 그의 입이 먼저 반응을 했다.

"교회는 아닐 테지."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아라는 대답을 대신했다.

"교회 안에 교회라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진호는 연신 고개를 저어댔다.

"<포르치운콜라>라는 이름은 1045년 문서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이에 대한 기록은 산 루피나 대성당 기록 보관소에, 작은 예배당은 안젤라 대성당 안에 있어요. 그러나 근원지는 따로 있었다는 사실,, 전설에 따르면 포르치운콜라는 교황 리베리우스(352-366) 치하에서, 복자의 무덤에서 유물을 가져온 요사파트 계곡의 은수자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516년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의 소유가 된 이후 요사파트 계곡의 성모 또는 천사들의 성모로 불리게 됩니다. 수바시오 산(Monte Subasio)의 성 베네딕트 교단에 속한 '땅의 작은 부분'에 위치해 있어 'Portiuncula'라 명명되었다 해요. 중요한 건, 지금부터에요. 로마로 순례를 떠난 프란체스코는 아시시에서 약 2마일 떨어진 산 다미아노의 길가 예배당에서 신비로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 '가서 내 교회를 수리하라'는 주의 음성이었어요. 순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작은 오두막을 지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합류해요. 이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작은 형제회)가 설립된 배경입니다. 이어 그는 아시시에서 약 6km 떨어진 산 베네데토 알 수바시오 수도원(Abbey San Benedetto al Subasio)으로 향해요. 수도원 소유의 가장 작은 교회인 포르치운콜라의 성모 마리아를 간청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에 수사들은 두말 않고 동의하였고, 이로써 1211년 경 그 땅의 이름인 'Portiuncula'는 작은 형제회에 전달되었죠. 이에 보답하고자 프란체스코는 수도원 예배당의 등불에 쓸 기름을 바쳐요. 이 내용은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라 대성당 기둥에 적혀 있는데 다음과 같아요.


'형님, 당신이 요청한 것은 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포르치운콜라의 장소가 여러분 모두의 원칙이기를 바랍니다.'


1211년 종려 주일에 프란체스코는 포르치운콜라에서 아시시의 클라라를 영접하고 '가난한 클라라'를 창설함과 더불어 최초의 작은 수녀원(프란체스코 수녀원)을 건립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거룩한 복음에 순종하며 기도와 묵상을 합니다. 1216년 8월 2일 7명의 움브리아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작은 건물이 축성되었고, 고대 주민들에 의해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라(Santa Maria degli Angeli)라 불리게 됩니다.

1226년 프란체스코가 선종하자 수사들은 포르치운콜라 주변에 여러 개의 오두막을 지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규모는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요. '아시시의 용서'를 받기 위해 엄청난 수의 순례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을 수용하기에 작은 교회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이에 규모 확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를 받아들인 교황청의 뜻을 따른 교황 비오 5세(1566-1572)의 명령 하에 건물을 철거합니다. 단 프란체스코 성인이 사망한 트란시토 예배당은 제외한 채 말이죠. 그리하여 1569년 3월 25일에 대성당의 건설은 시작됩니다."

여기서 일단락 짓고 아라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꽤나 긴 설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투정조차 부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하고도 신기했다. 자신에게나 흥미로울 터, 그에게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아라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왕 맞을 매라면 미루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인가?"

"듣다 보니 흥미가 조금 생겨서."

"진심..이에요?"

"따순밥 먹고 헛소리 지껄일 만큼 떨어진 놈은 아니라."

풋- 절로 웃음을 터트리는 아라를, 그는 채근했다.

"하고 많은 성당, 그럼에도 온 이유 아직이잖아. 어서 읊어봐요."

"그렇다면 심도 있는 얘기를 꺼내 볼까요? 바로,, '아시시의 용서'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은 알죠?"

"알다마다요."

"그 출발점 또한 알죠?"

"메디치가문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 아니던가? 목요일의 뇨끼 편에 언급했잖아."

"오~."

아라의 손이 그의 뒤통수로 향했다. 당연 피할 줄 알았던 진호가 움직이지 않아 졸지에 쓰다듬는 형국이 되었다. 이에 되레 놀란 아라는 황급히 손을 거두고 주춤주춤 했다.

"피하지 않고 어째서?"

"개띠라 사람들의 손길이 익숙해."

"푸하하.."

아라가 거짓 없이 웃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은지 진호도 웃음을 흘렸다.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포르치운콜라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해서 작은 형제회는 작은 교회와 성인을 기념하게 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거예요. 8월 2일, 교회의 봉헌 축일임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해서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니. 글쎄.."

"면죄부를 팔고 있었던 거지."

"와~ 소름!!"

양팔을 감싸 쥐고 눈을 치뜨며 놀란 척을 하는 아라의 연기가 수준급이었다.

"그 정도의 눈치는 있습니다만.."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면죄부란,, 이미 용서받은 죄로 인해 하느님 앞에서 일시적 형벌을 면제받는 것, 정당히 처분을 받은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일정한 조건 하에서 성령의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어요.

풀어 말하면,,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닌 벌을 면제해 주는 것이기에, 면죄부가 아닌 대사(大赦)가 맞는 표현이라고 해요.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71항에 의하면,,


'대사(大赦)란, 이미 그 죄과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았지만, 그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잠시적인 벌(暫罰)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활용한다.'


즉, 범한 죄는 고해성사로 용서를 받고 하느님과 친교를 회복했지만 그 죄로 말미암은 벌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이 벌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 했고, 이는 특정 기도문을 외거나, 순례를 떠나거나, 특정 선행 등의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거죠. 대화의 요지가 명칭의 진실규명이 아니기에 면죄부라 칭할게요. 가톨릭 신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이니.. 용서를 받았다 함은 천국행 열차의 앞좌석에 탑승한다는 의미일 터, 해서 면죄부를 천국행 티켓이라 부른 이유는 이 때문일 테지요. 이 매력적인 조건은 가진 자나 없는 자 모두를 솔깃하게 했어요. 부자들은 그 권세가 하늘에서도 이어지길 바랐고, 가난한 자들은 하늘에서라도 편히 살고 싶었던 거죠."

"그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가는데, 과연 수도회가, 교황청이 이를 허락했을까?"

"적절한 질문입니다. 1277경의 공증된 문서에 따르면, 아레초의 복자 베네딕트는 작은 형제회의 마세오 형제와 교황 호노리오 3세의 입회 하에 면죄부를 부여받았다 기록되어 있어요. 이후 몇몇의 수도사들이 면죄부를 옹호하는 책자를 발간했다는 기록뿐 아니라, 한 수사에 따르면 교회의 봉헌 축일과 그에 따른 면죄부는 교회에서 마리아와 프란체스코 전통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이라며 입장을 보탰어요. 그런데 정작 프란체스코 성인과 면죄부가 별개라는 의견이 제기되자, 이에 교황청은 서둘러 입장을 표명하게 됩니다.


'8월 1일 오후부터 8월 2일 일몰 사이에 Porziuncola 예배당에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노라.'


제기된 의혹은 교황청의 선언으로 종식되었고, 결국 면죄부는 법적-교회법적 관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게 됩니다. 8월 1월과 2일 사이 포르치운콜라 예배당에서만 얻을 수 있던 면죄부였지만, 1480년 경에는 프란체스코회를 위한 성 프란치스코 교회까지, 이후에는 성 프란치스코 교회가 속한 여타의 교회까지 그 범위는 확대되었어요."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재건한, 성인의 삶과 죽음이 공존한, 그 여정의 중심,, 본질로나 형상으로나 최적이었다고 한들 그럼에도 씁쓸한 건 오로지 나의 몫인가?"

채 떨어지지 않은 우산의 물기처럼 진호의 목소리에는 여운이 잔뜩 묻어 있었다.

"본질을 훼손시킨 것도, 그렇다고 성인과 수도회의 취지와 어긋난 것도 아니라잖아. 물론, 당시 시대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한들 결국 인간의 뜻이었잖아. 혹 계시에 의한?"

"자살한 자, 술에 취한 자,,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성경에 쓰여 있어요. 노아는 술에 취해 자신의 아들에게 벌거벗은 하체를 보이고 말아요. 은화 30냥에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는 자살을 하고. 성경의 내용대로라면 두 사람은 천국에 못 갔겠죠? 정말 그럴까요?"

"가 보면 알겠지."

"맞아요. 성인과 면죄부의 연결성은 물론 면죄부의 이면 역시 그런 선상이지 않을까."

"순례길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을 결심한 프란체스코는 아시시로 돌아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요. 뜻을 같이하려는 수사들과 함께 작은 형제회를 설립하고 산 베네딕토 알 수바시오 수도원에서 Portiuncula를 인도받아, 이곳에서 클라라 성녀를 영접하여 작은 수녀회를 설립합니다. 이 작은 교회는 1216년 축성되어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라(Santa Maria degli Angeli)라 불리죠. 1226년 성인이 선종하자 수도자들이 Portiuncula 주변에 오두막을 지어요. 그러나 점점 그 수가 늘어났고, 게다가 아시시의 면죄부를 얻으려 엄청난 수의 순례자들까지 합세하자 결국 1569년 3월 25일에 대성당 건설은 시작됩니다. 단, 성인이 사망한 트란시토 예배당은 그대로 보존한 채 말이죠."

성당 외관을 다시금 획 둘러본 후 진호는 입을 열었다.

"결국, 프란체스코 성인이 다했네요."

"그 말을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서로의 눈을 보며 그들은 하나인 듯 웃었다.

"맞았네. 문패나, 건물이나, 사람이나, 그냥은 없네. 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거야."

"성경공부는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위장 운동하러 갑시다."

쉽지 않을 거란 아라의 예상은 빗나갔고, 대충 넘기려 했던 진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리 이어지던 설명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의견들,, 애당초 얻으려 버리려 한 목적은 아니었으나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 끝은 왠지 모르게 가벼워 보였다.


"수녀님 아니죠?"

"제 말이 맞죠? 수녀님?"

진호는 생생한 눈빛이었고, 아라는 허리춤에 다부지게 두 손을 얹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잡힌 DEL GIGLIO의 수녀는 데구루루- 눈동자만 굴릴 뿐, 정작 이러지도 그렇다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고요한 수녀원 앞, 그들이 옥신각신한 이유는 이러했다. 엊저녁 수녀원으로 돌아오던 길,, 아라는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라 성당의 장미 정원에 얽힌 얘기를 늘어놓았다. 어느 날 밤, 프란체스코 성인은 죄에 대한 강한 의심과 후회에 사로 잡혀 가시덤불이 있는 장미 정원에서 알몸으로 뒹굴었는데, 놀랍게도 성인의 몸에는 상처 하나가 없었다고 한다. 뾰족한 장미 가시가 성인의 몸에 닿자마자 모두 사라졌다는 전설과 함께 오늘날도 가시 없는 장미가 핀다는 것,, 가시 없는 장미라? 혹 본다면 믿어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미철이 아니었다. 궁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진호는 눈을 뜨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이를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이성과 법칙으로 이해 안 되는 일들은 부지기수건만, 그와 같은 현상을 수녀님은 영적 체험이라, 형제님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라 할 테지."

성질 급한 아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라의 말을 끝까지 들은 수녀는 작은 소리로 웃었다. 이에 그들의 눈이 일제히 수녀에게로 쏠렸다.

"아~ 햇살이 좋아서 본능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 이에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온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답니다."

분명, 명쾌한 답을 들으리라 예상했건만, 아니 아라의 말장난이었음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DEL GIGLIO의 수녀는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에 진호는 김이 빠진 사이다처럼 밍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낀 아라는 장미철이 아직인 것을 무엇보다도 아쉬워했다.

이전 14화[연재소설] moments_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