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50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대략 11세기 경의 일이다. 티레니아 해 인근을 향해 중이던 범선 한 척이 있었다. 포지타노 해안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거짓말처럼 뚝- 멈춘 바람으로 인해 더 이상의 항해는 불가능했다. 이에 선원들은 실은 짐의 일부를 배 밖으로 던져 항해를 재개하고자 노력했지만 헛된 시도였다. 그때였다.


'posa.. posa..'


소리의 근원지는 배에 실려 있던 성모마리아를 그린 그림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머물겠다'는 성모마리아의 의지의 표현이자 기적이라 여긴 선장은 뱃머리를 항구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안에 도착한 선원들은 이콘(icon)을 건네었고, 주민들은 그것을 마을 광장의 Piazzetta dei Mulini 교회로 옮겼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음 날 아침 해변 근처의 덤불에서 그림이 발견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성모께서 자신들의 마을을 안식처로 선택했다는 표시라 여기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다. 지금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Chiesa di Santa Maria Assunta)은 그렇게 세워졌다.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와 인접한 플라비오 조이아 광장(Piazza Flavio Gioia)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Chiesa di Santa Maria Assunta)의 축성은 대략 12세기 전후로 추정되며 그 시작은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의 수도원이었다. 축성 이후 번영을 누렸으나, 15세기 이후 쇠퇴의 국면을 맞게 된다. 해적들의 출몰과 약탈에 겁을 먹은 당시 수도원장 안토니오 아치아파치아(Antonio Acciappaccia)가 떠나자, 교회는 버려졌고 그로부터 몇 년 후, 수도원은 세속 사령부로 선포되어 아말피 대주교로 선출된 니콜라 미로발리(Nicola Miroballi))가 인수하게 되나, 이전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다. 이후, 훗날 교황 베네딕토 13세로 선출된 빈센조 마리아 오르시니 추기경(세속명 Pietro Francesco Orsini)을 비롯한 대수도원장들에게 맡겨진 후, 1711-1712년 미켈레 볼로냐 주교에 의해 손상된 지붕과 바닥 그리고 돔은 철거되었고, 새 종탑(1707년), 대리석 제단(1740년), 노화 복원 및 바닥 공사(1766) 등등,, 꾸준히 이어온 보수 작업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이를 보다 못한 포지타노의 성직자들은 1777년 당시 수도원장인 리보리오 만나(Liborio Manna)의 모든 권력을 박탈하는 동시에 교회 복원에 총력을 가했다. 바닥 교체, 바로크 양식의 전형적인 치장 벽토와 금장식 추가, 두 개의 측면 본당과 성가대석에 이르는 대대적인 전면 개조 공사는 5년 동안 이어졌다. 1783년 8월 10일 안토니오 푸오티 주교에 의해 봉헌되었고, 다음 해 8월 15일에 성모마리아의 성상에 황금관이 씌워졌다. 이로써 수년간 방치되었던 교회는 이전의 영광을 되찾게 되었다. 이후 1889년에는 대리석 바닥을, 1927년에 외관 보수 작업을, 1963년에는 합창단 재건과 종탑 복원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758년에 재발견된 고대 로마 빌라 유적에 서 있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의 직사각형의 마당 테라스 아래로 해변이 내려다 보인다. 외관은 Trani 대리석으로 덮여 있으며 입구는 세 개의 포털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념 명판으로 덮인 작은 청동 구조인 두 개의 측면 포털에 비해 중앙 포털은 큰 청동 구조로 설정되어 있다. 노란색 벽과 상부의 다색 유리창과 녹색, 파란색, 노란색의 마졸리카로 마감된 돔으로 이루어진 성당의 외관은 단순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다.

중앙 문 위로 장엄한 기계 오르간을 갖춘 합창단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멋진 세례반이 있는 작은 방이 있다. 흰색과 짙은 회색 대리석이 깔린 성당의 내부는 라틴 십자가 모양으로, 세 개의 회중석으로 나뉘어 있다. 둥근 지붕과 벽이 맞닿은 곳에 생긴 반원 공간에 아치형의 천장이 있으며, 정사각형 기반 기둥 위에 놓인 다섯 개의 둥근 아치는 세 개의 예배당으로 이어지며, 측면 회중석과 중앙 회중석을 분리하고 있다. 요약하면, 다섯 개의 아치가 있는 세 개의 본당으로 나누어진 구조이다. 왼쪽 본당을 따라가면, 십자가상 예배당, Annunziata 예배당, San Nicola di Bari의 예배당, 나무 흉상과 은 장식이 있는 16세기 San Vito 예배당이 있고, 그 뒤로는 16세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오른쪽 본당을 따라 성찬실로 들어가면 Sant'Anna 예배당, Sant'Antonio 예배당, dell'Immacolata 예배당, San Biagio 예배당이 있다. 오른쪽 본당과 익랑 사이의 합류점인 아치의 오른쪽에는 1506년에 제작된 성 비투스의 성물함으로 추정되는 얕은 부조가 있고, 그 앞에는 1600년 나폴리 신부 Pirro Giovanni Campanile의 수도원장 임명을 기념하는 명판이 있다.

중앙 제단에는 한쌍의 기둥과 대리석 및 회반죽 벽이 있는 사원 형태의 작은 구조물이 있고, 그 내부에는 비잔틴 양식의 성모 성상이 놓여 있다. 다각형 후진(apse)의 측면에는 호두나무 합창단이 있고, 그 오른쪽 끝의 벽감에는 '슬픔의 성모마리아(Addolorata)'가, 기둥에는 1798년 Michele Trillocco가 제작한 '귀중한 그리스도'가 있다. 중앙 제단 오른쪽으로 18세기 목조 마돈나와 아기 조각상이 있는 스테파노 예배당이, 왼쪽으로는 산티시모 새크라멘토 예배당이 있다.

교회 마당으로 나가면 몇 결음 떨어진 곳에 1707년에 지어진 종탑이 있다. 모서리는 흰색으로, 처마 장식은 검은색 응회암으로 칠해져 있고, 총 4층 정사각형의 건물 1층에는 뱀, 여우, 물고기를 묘사한 중세의 얕은 돋을새김이 있고, 그 위로 나침반을 발명한 포지타노 출신 플라비오 조이아를 기념하기 위해 1902년 세워진 명판이 있다.


양껏 빛을 머금어 신비롭게 반짝이는 색색의 마졸리카로 마감된 돔을, 종탑에 새겨진 장식을 헤아리느라 여념이 없는 그들 곁으로 젊은 남녀 무리가 다가섰다.

"Did you just get married?"

젊은 남녀가 한바탕의 말을 쏟아냈지만, 그들이 알아들은 건 이뿐이었다.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도 않고 멀뚱히 바라만 보는 그들의 시선이었지만, 남녀에게서 당황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it's free."

손잡이가 달린 라탄바구니에서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집어 내밀었다. 종합해 보면, 신혼부부에게 주는 공짜 꽃?? 진호의 해석도 그러했는지 이에 반응한 그의 손이 앞서 나가던 그때였다.

"No, Thanks."

세상 단호한 아라의 음성에 젊은 남녀의 얼굴에 이제껏 없던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잠시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멋쩍은 미소를 짓고 걸음을 물려 표적을 물색했고, 좀 전의 실랑이와는 달리 마주한 남녀는 환히 웃으며 덥석 꽃을 받아 들었다.

"머리숱도 많아 보이는데 웬만하면 좀 받지. 사람 무안하게."

"저들 기분 맞추자고 내 기분 망치고 싶지 않아."

한번 가라앉은 분위기는 진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쉬이 회복되지 않았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신경 쓴다고, 혼자서만 꼿꼿한 척은."

"분위기에 휩쓸려 휘청이고 싶지 않아. 언제든, 어디서든."

"아, 예,, 그러세요?"

분명 비아냥이었다. 딱 잡아 정색을 하는 아라의 태도가 사뭇 못마땅한 진호의 속마음이 다분히 작용한 비아냥거림이었다.

"나 좋자고 생명을 자른다? 그건 싫네."

이어진 아라의 변명에도 진호는 서운했다. 잘 지내가다도 불현듯 쭉- 선을 긋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겠노라, 기다리겠노라,, 다짐을 한 터라, 차마 표현은 못하겠고, 그렇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 차곡히 쌓인 돌덩어리들이 힘껏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이, 그저 잠자코 있는 자신이,, 영 탐탁지 못해 이래저래 무겁기만 했다.

"누군 억지로 절 받고 싶은 줄 알고?"

콧방귀를 뀌고 휘적이며 걸어가는 진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라 역시 속도를 냈다. 그의 곁에 서고자 두 다리를 바삐 움직였고, 그보다 앞서 나간 조급한 마음은 몸의 상체를 숙여 구부정하게 하여, 어지간히 볼썽사나웠다.


이상하리만치 찜찜했다. 성당에서의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뱉은 목소리는 기억에도 없고 짓고 있던 표정은 알 수도 없지만, 시종일관 온화하던 그들의 표정이 일순간 경직된 것은 분명 보았다. 그것은 자신에 의한 것이라 아라는 확신했다. 이렇다 할 타박이 없던 진호의 태도 역시 쉬 사라지지 않았다. 그깟 장미 한 송이 받는 게 뭐라고 별나게 행동했을까? 잘못 뒤에 뒤따르는 후회였으나, 바로 잡을 기회는 분명 있다. 물론, 다소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도, 뺨을 내어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생각을 정리한 아라는 꾹 감았던 눈을 크게 떴다.

"큰소리칠 만하네. 보람도 있고."

손잡이가 있는 유리잔 안에 담긴 레몬 조각의 수를 셈하듯, 진호의 눈은 고정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하면 또 탄산수. 산펠레그리노 탄산수가 다했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초록색의 탄산수 병을 가리키는 척을 하며 아라는 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어째, 답답한 속이 좀 뚫리는지?"

한참을 곱씹던 진호가 아라의 의중을 파악했는지 별안간 눈을 크게 떴다.

"병 주고 약 주고라. 찜찜하긴 했나 보네."

"찜찜은 무슨. 소신껏 했을 뿐이야."

"고아라만 있었어도 해방의 그날은 더 빨리 왔을 텐데."

실없는 농담에 아라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진호 역시 웃음을 흘렸다.

"언제쯤 말해 줄 건지."

"뭘?"

빤히 보는 아라의 시선에 한참을 골똘하던 진호가 머뭇거리기를 얼마, 굳게 닫힌 입이 스륵 벌어졌다.

"비엔나에 살아. 남편 역시 피아니스트래."

"그건 크게 한 상 받아놓고. 밤새 해도 끝이 없는 얘기니까. 여행 온 진짜 이유.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물사발 안 건네니, 우물은 목마른 내가 파야지 뭐."

"이거야 말로 밤새 해도 끝이 없는 얘기 같은데, 술은 몇 병이나 있나? "

"맨정신에 듣고, 하고 싶은 얘기라서."

"나도 듣는 건가?"

"상대방 패만 까는, 그렇게 치사한 사람 아니야."

"치사하진 않다만 비겁은 하지."

"말 돌리지 말고."

괜한 얘기를 갖다 붙이며 진호는 머뭇거렸다. 그리고 조금 틈을 주었다. 그러고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는 듯 꿀꺽- 침을 삼켰다. 그 바람에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처음 보았다 했지?"

자칫 말이 끊길까 싶은 아라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행운이란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며, 그 기회를 잡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 말들 하지만, 그럼에도 운 좋은 케이스였어. 전에 없던 관심이, 물질이, 명예가,, 낯설기도 했지만 기분 좋았어. 늘 누군가를 빛나게만 했던, 그런 내가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황홀했지. 갈 곳 없어 방황했던 두 다리는 무대 위에서 바삐 움직였고 큰 무대, 많은 관객, 좋은 의상,, 우레와 같은 호응에 점점 젖어들었어. 그것들을 영위하기 위해 나를 채찍질했고, 그로 인해 날이 갈수록 아름답고 화려해져 갔지. 그러던 중 선후배들과 함께한 모교 행사를 위한 연습 현장에서 일이 생기고 말았지. 한참 까마득한 후배가 실수를 하잖아. 다시, 그리고, 다시,, 거듭되었지만 그런데도 화음은 좀처럼 융합되지 않았고, 선배들의 불쾌함과 후배의 미안함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로 연습은 끝이 났어. 한참 후 나는 무릎을 치고야 말았지. 화려하기만 한 획일화된 여럿의 목소리가 꾸밈없는 진실한 목소리 하나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귓가를 울려대던 심장 소리가 멈췄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거지. 아니 그렇게라도 알게 된 것을 다행이라 여겼어. 스스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고 싶다는 내 입장 표명에 여기저기서 마찰과 잡음이 생기더라. 관심은 비수로 변해 찔렀고 환호는 화살이 되어 날아와 꽂혔지. 무섭고 두려웠어. 서운하기도 했지. 헤쳐나가할 일이라 굳게 마음먹었음에도 또 모진 사람이 아니라, 마음 한편 꾹 눌러 두었던 유학을 괜히 끄집어내며, 떠나 보면 어떨까 했던 마음이 컸지. 그렇다고 무작정인 도피는 아니야."

내내 자신 없던 말투였지만, 말끝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클래식,, 관심을 가진 소수의 팬층이 열광하는 장르였다. 그 관심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방송사의 의도에 따라 전공자와 비전공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경쟁을 펼쳤다. 웅장하고 화려하긴 했어도 결코 화합의 장은 아니었다. 바라보는 입장에서나 편한 것이지, 정작 무대 위에서는 피를 토하고 살점을 떼어내는 처절한 사투였다. 그렇게 실력을 증명한 그들을 기다린 건 팬들과, 무대와, 카메라였다. 그러나 돌연 전해진 그의 활동 중단 소식으로 한동안 잡음이 이어졌다. 어디서든, 어딜 가든 따르던 그 달콤한 열매는 철퇴가 되어 그를 때렸다. 깊어가는 오해와 힘을 잃은 신뢰는 각자 뻗어 나갔다. 한때 궁금했던, 왜였냐고 다그쳤던 제 마음보다, 그가 겪었을 아픔이, 꽁꽁 감추고 말하지 못했을 속상함이 먼저 다가왔다. 지금 아리에겐 그게 먼저였다.

"지금은 좀 어때?"

"글쎄, 지금은 고아라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는데."

"뭐?"

짓궂게 진호가 웃었다. 아라는 그의 팔뚝을 가볍게 쳤다.

"여전히 길을 찾고 있는 중."

"속속들이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것까지 알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김진호의 소신을, 의지를, 응원할게."

"이왕이면 사랑도 좀 응원해 주지."

"끝까지 장난이지."

아라가 다시 진호의 팔뚝을 쳤다. 이번에는 조금 강도를 세게 했다. 슥- 문지르며 그가 웃었다.

"당신 차례야."

"글쎄.. 한마디로 현실과 꿈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중이지."

"창업을 꿈꾸고 있다만, 기술자로는 쓸만하나 서비스업에 특화된 성격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는. 스스로 넘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애써 모은 부모님 돈을 허투루 쓸 수는 없다 했지. 목을 조일 밧줄인 대출을 제치면,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니.. 모아도 시원찮은 형편에 웬 여행이냐는 내 물음에, 일했던 가게 확장 공사 중이라 두어 달 정도 텀이 있어 온 거라 했지. 그건 돌아가서도 일 한다는, 한동안은 쳇바퀴 도는 다람쥐 한다는 의지 아니었어?"

"나 좀 무서워지려고 해. 지나치게 세세하다."

"관심..이라는 좋은 표현도 있는데 하필.."

제 말끝에 피식 웃은 진호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랑이 두려워? 여전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이 벌어졌다. 꺼내 놓을 패를 생각하듯 아라는 자못 신중했다.

"사랑이 두렵다기보다 이별 후의 모습이 두렵다는 게 맞겠지. 사랑이라는 테두리는 소중한 것을 지키려 들고, 이별이라는 감옥은 소중했던 것을 파괴하려 드니까. 점점 변해가는 그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랄까."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으니."

"어렵다. 고아라의 사랑은."

"쉬이 얻어지는 것은 금세 사라져 버리니까. 모든 것이 빠르게 빠르게를 외쳐대는 상황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사이 오가는 감정만은 느리게 갔으면 해."

"중간은 없고, 관계 특히 남녀 사이는 단칼이구나. 일말의 여지를 주지도 남기지도 않겠다."

"그것 만큼은 지키고 싶어, 정확하고 그리고 확실하게."

"이성적인 듯하지만, 이기적이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맞아. 결국 덜 상처받기 위한 교묘한 방어막이니."

"하긴, 남의 일이란 말이 괜히 있겠어? 남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한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니. 들어봐도 생각해 봐도 정말 별로지만 그렇다고 덮어 놓고 욕은 또 못하겠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깎고, 보태는 것이 인간의 관계요, 어른들의 사랑이니."

잠시 다물고 있던 입을 진호는 다시 열었다.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자. 그렇다 해도 여전히 본인 마음만 다그치고 있을 거야?"

"사과나무는 심을지언정, 아마도."

"내가 졌다."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진호는 크게 소리 질렀다.


*티레니아 해 - 이탈리아반도 서쪽의 지중해에 있는 해역으로 가장 깊은 곳은 수심 3,785m이다. 서쪽으로 코르시카 섬과 샤르데냐 섬이, 남쪽으로 시칠리아 섬이 있다.


*이콘(icon) - 정교회에서 주로 그리는 종교적인 상징물.


*Trani 대리석- Trani는 바리에서 북쪽으로 42km 떨어진 아드리아해 연안이다. 바리 하류의 Murgia지역의 Puglia에서 추출된 탄산염 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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