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51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포지타노 내, SITA 버스 정류장은 Spiaggia Grande 해변과 가까운 sponda와 마을 중턱에 위치한 Chiesa nouva 단, 두 곳이었다. 서둘러 이불을 걷어찬 보람은 물론 종종걸음을 한 수고도 없이 숙소 근처의 Chiesa nouva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이제 막 여덟 시를 넘긴 상황, 대도시의 흔한 모습 아닌 관광지의 생경스런 풍경에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의 숫자를 세느라 여념이 없는 그들 곁으로 SITA 버스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왔고,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린 사람들이 차례를 지켜 속속들이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발걸음은 뚝 멈췄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 굉음만을 남겨두고 버스는 냅다 꽁무니를 뺐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30분, 일정치 않은 배차 간격이지만 그렇다고 운행 횟수를 놓고 장난질한다는 풍문은 아직이기에, 아라는 SITA 버스 시간표를 펼쳤다. 다음 버스는 30분 후였다. 시간표를 쥔 손으로 이번에는 제 앞에 선 사람들의 수를 셈하였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 안도감도 잠시, 문득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여, 이런저런 이유로 잠시 대열을 이탈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이 합류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 한번 피어오른 불안감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녀로 하여금 버스 시간표를 재차 확인하게 했다. 불행히도 다음 버스는 1시간 10분 후에나 배정되어 있었다. 차라리 저만치에서라면 또 모를까? 자신 차례에서 딱 끊긴다면?? 아라의 숫자 놀이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전보다는 좀 느릿했고, 더 신중했다. 약속했던 30분이 지났는지 버스 한 대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좀 전과 같은 몸집, 동일한 외관의 버스였다. '차체가 조금 더 컸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속으로 삭이고 목을 한껏 잡아 올려 정확히 가늠도 안 되는 버스 내의 좌석 수를 셈하느라 인간힘을 썼다. 비록 뒷자리이긴 했으나 다행히 오른쪽 좌석이었다. 안전벨트를 채우기도 전, 성질 급한 버스는 꿈틀- 몸을 움직여댔다. 그러기를 얼마, 예열을 끝내고 본격적인 회전을 하는 바퀴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Spiaggia Grande 해변으로 향하는 내리막 코스가 시작되었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는 안전벨트를, 다른 이는 좌석 손잡이를, 커플들은 서로의 손을 단단히 맞잡으며, 각자 불안에 맞서고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대략 40여분 후면 아말피에 도착하건만, '아는 맛이 무섭다'고 굽이진 산허리를 칭칭 감으며 오르고 내리고 할 걱정은 정작 본게임 전임에도 불구하고 공포감을 극대화시켰다. 속도를 줄이고 잠시 서행하던 버스가 길을 찾았는지 부릉- 한차례 힘을 주었고, 그로 인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상체를 들썩여가며 양팔을 크게 조였다 푸는 버스 기사의 움직임에 비례해 맞닿아 있던 푸른 바닷물은 눈 아래로 점점 멀어져 갔고,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버스의 몸체가 튕기듯 절벽 쪽으로 몰리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승객들의 눈도 그쪽으로 쏠렸다. '오른쪽 창가로 제 몸의 중심을 두는, 혹여 누군가의 생각 없음이 실행된다면?' 그대로 깊은 바다로 직행할 것만 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이 꼭 현실이 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각도, 위험천만한 높이, 속수무책의 상황이었다. 유난히도 굴곡진 산자락이었다. 깊게 파인 산허리를 파고들었다 이내 물리는 반복되는 상황 속에 버스 내의 가득했던 열기도 점차 사그라들었고, 환호성이 난무했던 자리에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머물렀다. 빠앙- 경적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정숙을 요하는 일침 아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것이며, 여전히 창가에 달린 몇몇의 시선을 향한 형식적인 경종이었다. 그리고 이 모두는 관심 밖이라는 듯 더러 눈을 감은 무리들이 있었고, 진호 역시 그중 하나였다.


'바닥에 뒹구는 과일을 주으려는 사람, 푸드득- 한껏 날갯짓을 하여 날아오른 닭을 잡으려는 사람, 이들을 피하려다 중심을 잡지 못한 몸이 착석한 다른 이에게 불시착함으로 멋쩍어하는 사람, 이렇듯 얽히고설킨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잠을 청한 사람,, 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도로 한편, 세워진 차량의 열린 보닛 안쪽에서 올라오는 흰 연기 꼬리, 연신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운전자가 엄지를 치켜들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나, 보란 듯이 외면하며 끝도 없이 이어진 해안 도로를 타고 미끄러지듯 달리는 스포츠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승객들을 가득 실은 버스가 비포장된 시골길로 한 번, 정신없는 승객들로 또 한 번, 휘청거리던 모습을 담은 오래전 어느 영화 속의 장면과, 콕 짚어 아말피 해안 도로라 못 박을 수는 없지만 구불텅거리는 도로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유유히 미끄러지는 외제 자동차 광고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시각을 자극한 그것들은 '주'와 '객'이 뒤바뀌어 각인되었고, 비포장된 시골길이 아닌 정신없는 승객들 중 하나로, 스포츠카 아닌 구불텅거리는 해안 도로로 깊게 박혀, '여행'을 떠올릴 때면 으레 따라오곤 했다. 자신이라면 지나간 차에 얽매이지 않고 다가올 차를 기다리는 다급함이란 전혀 찾을 수 없는 히치하이커를 택했으련만,, 그려본 제 선택과 현재 진호의 모습을 보며 피식- 아라는 웃음을 흘렸다. 채 달아오르지 않은 햇살은 창문을 흔들고도 성에 안 찼는지 진호의 눈꺼풀마저 파르르 떨리게 했다. 이에 쉬 벌어질 것만 같던 얇은 피부 조직은 외려 감감무소식이었지만, 좌우로 굴러다니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애써 잠든 척을 하는 진호를 방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아라는 시선을 돌렸다. 빵-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빠앙- 실체도 없는 소리가 꼬리를 늘어뜨린 채 저만치에서 울려왔다. 끊일 줄 모르고 이어진 경적 뒤로 마주한 육중한 몸체는 맞닿지 않고 느릿하고도 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운송 수단의 겁 없는 도전장을, 거방진 산자락은 흐뭇하게 수락하고 있었다.


곡예와도 같던 운전 실력을 비웃듯, 버스는 28분가량을 연착하였고, 결국 포지타노를 출발한 지 1시간 10분이 지나서야 아말피 땅을 밟게 되었다. 지연, 연착을 밥 먹듯 하는 이탈리아에서 고작 28분쯤이야 문제 삼을 명분은 없었으나, 굽이굽이 돌고 또 돌아온 여정이었기에 인자함을 내던진 육신과 정신은 적잖이 일렁였다. 그들처럼 대중교통을, 누군가처럼 자가용을 이용했음에도 집결지는 한곳이었다. 크고 작은 운송 수단과 각양각색의 사람들까지 더해져 주차장은 북적였다. 이에 질세라 저만치 떨어진 여객선 터미널에 때마침 유람선이 머리를 들이밀었고, 앞을 다투어 내리는 사람들까지 더해져 항구 주변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사라진 승객들로 인해 텅 비어 버린 유람선은 자그맣게 일렁이는 파도에도 몸의 중심을 잃고 갈지자로 왔다 갔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지나 가뜩이나 불편한 속에 부채질을 해대는 것만 같아, 그들은 등을 돌려 군집한 무리 끝을 밟았다. Piazza Duomo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이미 익혀두었던 Duomo di Amalfi로 향하는 계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가운 것은 성당이고 그보다 반가운 것은 계단이겠지' 울렁거리는 속을 잠시 내려놓을 생각에 아라는 크게 발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음료수 사 올 테니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어."

이 한마디를 툭- 뱉은 진호는 금세 멀어져 갔다. 아마도 모퉁이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올 심사였나 보다. 제 마음에, 그의 권유에 귀를 기울인 아라는 계단 몇 개를 성큼 올라 비어 있는 곳에 엉덩이를 붙였다. 목을 돌려 성당의 외관을, 목을 원위치하여 계단에 착석한 사람들을, 목을 한껏 늘어뜨려 계단 아래의 무리들을 살폈다. '이쯤이면 보일 테지' 하는 심정으로 매섭게 살폈으나 계단 인근 무리 속에 진호는 없었다. 저 아래 모퉁이를 돌면 가게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냐 싶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불안감이 밀려왔다. 안 되겠던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아라는 엉덩이의 흙도 털지 않고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빤한 길이었지만 그럼에도 행여 어긋날까 싶어 진호와 헤어졌던 곳에 정확히 멈춰 섰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없었다. 성당의 계단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어보았으나 여전히 진호는 보이지 않았다. 혹여 놓친 것이 있을까 싶은 조급한 마음 때문인지 고개는 연신 돌아갔다.

"먼저 가 있으라니까."

"기다려도 안 오길래."

"저 집 아주 노났어."

아라의 왼쪽 뺨에 냉기를 전하며 늦은 것에 대한 해명과 미안함을 동시에 전하는 진호였다. 사람 많은 것이, 늦게 온 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기에 아라는 말없이 캔음료를 손에 거머쥐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친근함이 브랜드가 가진 가장 큰 힘인 것처럼, 눈에 익은 스프라이트의 디자인에 한껏 긴장했던 그녀의 어깨는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캔뚜껑을 열 틈도 주지 않고 그는 비어 있는 아라의 손에 제 것을 건네었다. 그러고는 상체를 구부정하게 숙였다. 그 동작의 각도에 뒤질세라 아라의 고개 역시 숙여졌다. 그리고 자세히 관찰해 본 결과, 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를 본 아라의 두 눈은 다급했고, 입은 그보다 먼저 성급했다.

"뭐 하는 거야?"

튕기듯 날아오른 아라의 목소리였다.

"운동화 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조금 전, 진호를 기다리던 중 성당의 계단으로 향하던 무리 중 누군가가 아라의 발을 밟았고,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목소리는 분명 남자였다. 아마도 그때의 충격으로 인해 풀렸던 것이리라. 진호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던 터라 풀려버린 끈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아라였다. 마찬가지로 지금 중요한 것 역시, 운동화 끈이 아닌 진호의 행동 아닌가? 본인 스스로가 할 일인가? 굳이 무릎까지 꿇어 가면서?? 많고 많은 사람들과, 성당이라는 장소를 퍼뜩 떠올린 아라는 대차게 말을 쏟았다.

"내가 할게."

"됐다. 편한지 움직여봐."

진호의 시야에서 발을 크게 물리며 아라는 대답을 대신했다.

"움직여 보라니까. 왜?"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만 들어 올려 진호는 물어왔다.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없는 그에게 아라는 캔음료를 건네었고, 그제야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시선은 다시 마주했다. 시선이 공평해지면 조금 편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괜히 멋쩍은 아라는 눈동자를 일정한 방향 없이 굴려대며 보란 듯이 진호의 시선을 피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외려 아라의 시선 끝을 바짝 좇았다. 바로 그때, 계단으로 향하던 누군가가 방해가 된다는 듯 아라의 어깨 끝을 살짝 쳤고 그 힘에 반응하여 아라는 캔음료를 바꿔 쥐었다. 분명 냉기 가득했던 캔음료였건만 더 이상 냉랭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라의 체온은 그렇게 껑충 올라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사랑했던 '아말피'라 불리는 요정이 있었어. 어느 날 요정의 죽음 앞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묻어주마 했고, 결국 이곳을 찾았던 거지. 구전되어 온 전설 중 하나이나, 4세기 중엽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향하던 한 귀족이 풍랑을 피했던 곳이라는 것이 아말피의 기원이라는 또 다른 설이 존재하고, 실은 여기에 무게가 실려 있어. 역사적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533년이라 하고, 그러고 보면 우리네 보길도와 비슷하네. 안 그래?"

진호의 두 눈이 아라를 향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풀어져 있었다. 대꾸는커녕 빤히 보는 시선도 알아차리지 못한 아라였다. 해서 진호는 팔뚝으로 아라의 어깻죽지를 슬쩍 건드렸다. 이에 아라는 움찔하며 뒤늦은 반응을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길래?"

"중요한 얘기였어?"

"못 들었다면 다행이고. 사랑 고백이었거든."

"뭐?"

튕기듯 아라가 물었고, 진호는 능청스레 굴었다.

"뭘 또 그리 정색을 하는지."

"터가 안 좋은 건가? 성당 근처면 왜 그리 뻣뻣하게 구는 건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진호는 괜한 궁금한 척을 했지만, 그 모습마저 태연스럽게 느껴졌다. 해서 아라는 고개를 번쩍 쳐들어 자신과 다른 감정선인 듯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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