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아이는 '맑은 눈의 광인'은 아니었다. 물담배를 피우는 애벌레와, 공작부인, 하트의 여왕은 없었지만, 크기와 위치는 달랐어도 케이크는 있었다. 순간, 아라는 토끼를 따라 토끼굴에 뛰어들어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만 같았다. 테이블 위 층층이 쌓인 거대한 케이크와 하나가 되는 순간, 몸은 절로 부풀려질 거란 끔찍하기만 한 상상에 고개를 젓던 그때였다.
"Benvenuto!!"
백발의 노신사는 풍채만큼이나 넉넉한 웃음을 건넸다. 노신사를 상대로 한바탕 하소연을 쏟아낸 아이 엄마가 걸음을 떼었다. 좀 전과는 달리 안정된 자세로 보아, 밟고 선 이곳이 꽤나 익숙한 듯했다. 그녀의 뒤를 밟으니 비로소 모든 것이 보였다. 나이, 성별 피부색마저 천차만별이었으나 공통점은 있었고, 그것은 바로 의복이었다. 체형은 달랐으나 위아래 격식을 갖춘 남성들은 흡사 물 찬 제비 같았고, 스타일은 달랐으나 하나같이 드레스 차림의 여성들은, 흔히 접하는 탓에 더러 과소평가되는 국화꽃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이로써 모자의 복장 역시 이해가 갔다. 길의 이정표인 듯, 극의 주인공인 듯, 식사의 마지막이라는 듯,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한 웨딩케이크의 자태가 꽤나 용맹스러웠다. 그 기세에 눌린 걸까? 새벽녘 몰래 내려앉아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눈처럼, 케이크는 미세한 포크 자국 하나 없이 매끄러운 살성을 뽐내고 있었다. 대체 이곳은 어디쯤일까? 참나무, 오리나무, 밤나무가 포진해 있는 것으로 보면 이브의 동굴 근처인 듯했고, 푸른 등나무로 덮인 계단이 저만치에 있어, 로즈 테라스의 인근인 듯도 했고, 덩굴과 꽃으로 기둥과 보를 장식한 퍼걸러가 눈에 아로새겨져 혹 광대의 거리가 아닐까도 했지만, 거리상 일치하지 않았다. 또한 초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맞닿은 바다를 상상하기가 어렵기에 무한의 테라스 역시 용의 선상에서 제외시켰다. 익숙한 듯 낯선 곳이었다. 잡히지 않는 그림자를 잡아보려는 노력으로, 아라의 고개가 절도 있게 돌아가던 순간이었다.
"welcome!!"
노신사의 중후한 음성은 아라의 시선을 붙잡았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크고 거친 손은 진호의 몸을 덥석 안았다. 때론 말보다 행동으로 인한 전달력이 깊이 박힌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노신사의 유연함은 그들 사이에 놓인 장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제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아이의 얼굴에도 미소를 새겨 넣었다.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에 한참 밑도는 것이 다시금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 마음을 대변하듯 아라의 입에서 바람이 새어 나왔다. 앞장선 노신사를 따라 회중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이미 예식은 끝이 났는지 신랑 신부의 모습은 쉬 찾을 수 없었고, 발그스름하게 볼을 물들인 사람들은 종종 있었다. 하얀 천을 덮어쓴 기다란 테이블 끝에 진호와 아라의 자리를 마련한 건, 사람들의 이목을 대비한 노신사의 배려였으리라.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눈앞에 있었다. 일말의 대가를 바란 그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라는 보답이 하고 싶었나 보다. 이마를 짚고 고민하기를 얼마, 그녀의 눈에 번쩍-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즉각 노신사의 귀에 속삭여댔다.
불이 꺼지고 웅성대던 장내에 정적이 깃들면, 막이 오르고 비올레타의 살롱은 무대가 된다.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는 날인지, 사교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다. 알프레도 제르몽이 입장하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새 손님을 환영하는 동시에 그에게 노래를 청한다. 이에 그는 술과 사랑을 찬미하는 '축배의 노래'(Libiamo ne'lieti calici)를 부른다. 때마침 옆방에서 왈츠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춤을 추러 우르르 나가지만, 평소 폐렴을 앓고 있는 데다 현기증마저 느낀 비올레타는 홀로 남는다. 이를 걱정한 알프레도는 비올레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방탕한 생활에 충고를 하는 한편, 그간 간직해 온 연정을 어렵게 고백한다. 그러나 비올레타는 그의 정중한 충고를 비웃고, 가슴에 꽂은 동백꽃 한 송이를 건네며 '이 꽃이 시들 때에 다시 찾아오라'며 용기를 낸 그의 고백을 거절하지만, 피티가 끝나고 홀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알프레도의 거짓 없는 태도와 진실한 고백에 자신의 마음이 기울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내 '아! 그대인가'(Estrano!-Ah, fors’e lui)를 통해 자신 역시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시인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1막은 끝이 난다.
다시 커튼이 올라가면 무대는 파리 교외의 작은 별장으로 바뀌어 있고, 두 사람의 행복한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올레타의 개인 세간을 처분한 돈으로 전원생활을 영위하고 있음을 알게 된 알프레도는 돈을 벌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그의 부재를 틈타 알프레도의 아버지인 조르조가 등장한다. 알프레도와의 이별을 명령하듯 권하는 조르조의 압박에 비올레타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떠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별장으로 돌아온 알프레도는 슬픔에 잠긴다. 부친이 제안한 '귀가'를 거부한 채 그는 자신 아닌 화려한 생활을 택한 비올레타를 오해하여, 오직 복수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무대는 다시금 바뀌어, 비올레타의 친구인 플로라의 자택에서 열린 화려한 가면무도회가 한창이다. 무리의 사람들과 어울려 알프레도가 들어오고, 비올레타는 듀폴 남작과 나란히 들어온다. 알프레도와 그의 친구들 사이의 도박판에 듀폴 남작이 합세한다. 번번이 패해 큰돈을 잃은 듀폴 남작에 반해 거듭 승리를 거둔 알프레도는 비올레타가 들으라는 식으로 목청껏 크게 말한다.
'사랑에는 패했지만 도박에는 이긴다. 돈을 따면 여자를 사서 시골로 돌아갈 테다.'
자신을 향한 그의 원망에, 혹여 그들이 대립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게 떠날 것을 간청한다. 이에 순순히 응하는 알프레도의 태도에 한시름 놓는가 싶더니 '자신과 함께 가자'는 그가 내건 조건을 단박에 거절하며 다시금 불안에 떤다. 기다렸다는 듯 '배신'에 대한 알프레도의 추궁이 이어지자, 조르조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비올레타는 결국, 듀폴 남작을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한다. 이에 격분한 알프레도는 사람들을 모아, 그 중심에 비올레타를 세우고 비웃는 것도 모자라 도박에서 딴 돈을 그녀에게 던진다. 알프레도를 향한 사람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비탄에 빠진 비올레타는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그때 마침, 조르조가 등장하여 아들의 무례함에 한탄하는 한편,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 비올레타의 태도에 감동한다. 이런저런 슬픔 속에서 2막은 끝이 난다.
다시금 막이 걷힌 무대는 비올레타의 침실로 바뀌어 있다. 내내 자신의 곁을 지킨 하녀가 없는 틈을 타 비올레타는 조르조의 편지를 꺼내 읽는다. 조르조의 사과와 더불어 알프레도와의 오해도 풀었기에 더없이 기뻤으나 정작 죽음을 목전에 둔 현실에 한탄스러워하던 그때, 알프레도가 등장한다. 그는 그간의 일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남은 여생의 행복에 대해 다짐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사진이 박힌 목걸이를 건네며 축복을 빌고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죽음을 맞이한다.
'방황하는 여인'이라는 뜻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을 원작으로 한, 총 3막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중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졌으며, 1853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뒤마 피스의 자전적 소설은 희곡으로 각색되어 연극 무대에 올려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고, 연극에 깊이 감명을 받은 베르디는 이를 오페라로 제작하였다 전해진다. 세간에 알려진 바는 이러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연극의 유명세로 인해 그 먼 파리에 갔던 걸까? 여기에는 베르디의 남모르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
베르디는 마르게리타와의 사별로 힘든 나날을 보낸던 중 '나부코'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후 '맥베스' 등의 오페라를 작곡하며 입지를 굳건히 쌓던 중에, '나부코'에서 아비가일레 역을 맡았던 주세피나 스테로프니와 사랑에 빠졌다 한다. 그러나 1800년대의 당시 시대 상황은 그들에게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아내와 사별을 했지만 실질적인 후원자였던 그의 장인이 버젓이 살아 있었고, 더군다나 재혼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풍토 역시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주세피나에게 있었다. 베르디를 만나기 전, 그녀는 아버지가 다른 두 명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였으며, 뭇 남성과의 스캔들에 이름을 올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베르디는 세상으로부터 오롯이 그녀를 품었다. 대중들의 공공연한 손가락질과 멸시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은 굳건했고, 약 11년의 동안의 동거 생활 끝에 1859년 결혼식을 올렸다 한다. 타인에게는 그저 강산이 한 번 바뀔 시간이었을 몰라도, 당사자들에겐 분명,, 모진 시간 시간이었으리라. 그래서일까? 베르디는 주세피나와 함께 돌연 파리로 건너갔다. 그리고 고국에서처럼 고까워하는 시선은 덜했기에 평탄한 나날을 보내던 중, 파리를 들썩이게 한 '동백꽃 여인'을 접한다. 고급 창녀라는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와 이뤄지지 못한 연극의 내용이 자신들의 처지와 다른 듯 닮아서일까? 그는 이에 깊이 감동했다고 한다. '리골레토'를 통해 이미 성공을 맛본 베르디는 이를 차기 공연으로 낙점한 후 파리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곧장 이탈리아로 돌아가 각본가였던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연극 내용의 각색을 의뢰하는 한편, 원작의 충실한 재현을 위해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다. 이런 갖은 노력 끝에 1853년 3월 6일,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는 초연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참혹했다. 그의 전작 '리골레토'에 반해 한참 모자라다는 비평으로는 부족했는지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상 최악의 작품이라는 오명까지 얻게 된다. 실패의 원인에 대해 작품 자체가 아닌 '미스 캐스팅'이라 하나같이 입을 모았는데, 극 중 비올레타는 결핵을 앓는 청순한 이미지이나, 정작 무대에 선 가수는 건강한 이미지였고, 알프레도 역의 가수 역시 심한 감기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실패의 상징적 원인이었을 뿐, 본질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라 트라비아타' 이전의 공연들을 살펴보면,, 헨리 8세의 이야기, 괴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우스트처럼 '신화'나 '전설' 혹은 '역사 속의 인물'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 당시 유럽 전역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의 성향이었다. 이에 반해 '라 트라비아타'의 배경은 1850년대의 파리로, 작가 자신의 동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으니, 이는 최초의 현대 오페라인 셈이었지만, 이런 도전적 시도는 외려 대중들에게 이질감을 불러왔고, 정숙하지 못한 여인을 향한 부잣집 도련님의 허랑방탕한 로맨스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결국, 작가의 도전 정신과 한낱 가십거리인 내용은 시대상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고, 대중들의 공감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센 비판에 위축되기는커녕 그는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다 한다. 곧바로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음악적인 부분을 수정했고, 배경을 1700년대 파리로 변경했고, 가수진 역시 대거 교체하며 1854년 5월 6일 베니스의 산 베네데토 극장에서 수정된 버전의 '라 트리비아타'를 재차 올렸다. 이런 노력은 더 이상 초연의 실패를 입방아에 올릴 수 없을 만큼의 대성공을 이뤄냈고 이후 날개를 단 듯,, 파리, 런던, 뉴욕 등의 공연에서도 홈런 세례가 이어졌으나, 그럼에도 베르디는 만족하지 못했다 한다. 그것은 '외면당한 동시대성으로 인한 배경의 수정' 때문이었는데, 대중의 눈높이와 자신의 타협에 대한 아쉬움이 늘 그를 붙잡고 있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원작 소설과 각색된 희곡을 토대로 한 연극 무대가 그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처지와 닮은 '동병상련'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혹여, 사회적 통념에 막혀 환영받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대중들이나마 공감함으로 거기서 오는 위로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그로 하여금 '동시대성'이라는 배경에 그토록 목을 매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베르디 최고의 걸작이라 손꼽는 이유는 작품 속에 내포된 '사회 비판'이라 한다. 그러나 대중의 생각과는 달리 그런 '거창함'이 아닌, 신분과 직업, 환경들을 몽땅 제쳐두고서 오롯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의 현상은 천차만별이어도 사랑의 본질은 오직 하나이기에, 그 진실한 마음을 호소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종내, '진실한 사랑 앞에 돌을 던질 자격 있는 자 과연 누구인가!!' 하는 권고이며 일침은 아니었을까??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건반까지 도합, 다섯 명이 다인 작은 규모의 하우스 밴드였고, 그중 바이올린 활을 잡은, 연장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노신사와 말을 맞추었고, 밴드와는 합을 맞추었다. 수차례의 공연을 한 듯, 능숙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좋은 날에 풍악이 빠지면 쓰나!! 인간 축음기가 마침 옆에 있지 않은가!! 해서 아라는 진호의 재주를 교묘히 이용하기로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무대 중앙에 그를 밀어 넣었다. 별안간 수십 개의 눈동자가 제게 쏠림으로 순간,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진호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꼈으나 그것도 잠시, 크게 시선을 돌리며 어쭙잖은 죄의식을 눌렀다. 좌중은 침묵했고 주변은 고요했다. 그제야 준비가 되었다는 듯 악기가 토해낸 선율은 '축배의 노래'였다. 본인에게나 어려운 클래식이지, 본고장의 어른 아이가 가리지 않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생경스런 문화에 넋을 잃고 있을 때였다. 젊은 남성의 에스코트하에 중년 여성이 무대 중앙에까지 이르렀다. 진호와 다소 간격을 두고서는 비올레타 파트를 소화하는 것이 아닌가? 음정, 박자, 가사가 어느 정도는 들어맞았나 보다. 함께 선 진호의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졸지에 가스통이 된 아라의 떠밂에 알프레도가 선창을 하고 여기에 비올레타가 답하며 이중창이 되었고, 이윽고 모두가 함께 부르며 합창으로 끝을 맺었다. 이보다 완벽한 곡의 해석은 없었다. 피식- 새어 나온 웃음은 잠시를 못 가고 뚝- 멈췄다. 하필 '축배의 노래'가 나올 줄이야. 예상 밖의 곡이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는 듯,, 해서 아라는 다시금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본디, 클래식 공연이라 하면 연미복에 나비넥타이가 공식화된 의상이라 여겼는데, 아니 그런 모습만 눈에 익었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 건지, 의식이 변한 건지는 몰라도 진호의 무대 의상은 이에 크게 벗어나 있었다. 마치 지느러미가 S자를 그리는 싱싱한 은갈치를 연상시키 듯, 광택감이 있는 은회색 슈트에 노타이 차림이었다. 실로 이단아 같았기에 혹 연배 지긋한 선배가 보았다면 '예끼, 이놈!!' 할 정도로 파격적인 모습이었고, 그것은 아라의 뇌리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물론, 조금 전의 진호는 흰 면티에 청바지 차림이었으나 그럼에도 익히 접했던 영상 속의 모습 그대로가 되어 제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실로 묘했다.
따지고 보면,, 애먼 드라마를 들먹인 것은 호기심에 의한 행동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물론 진호의 만류가 없었다면 하다가 말 장난이었겠지. 하지 마라 하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뽀는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으니 말이다. 제 눈에 띈 붉은 실도 그렇고, 불현듯 나타난 아이도 그렇고, 뜬금없는 결혼식도 그렇고, 의도한 바 없는 축배의 노래도 그렇고,, 결국 이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면? 이를 단순한 우연이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뻔한 클리세는 진리일까???
'길의 끝에서 자신이 기다리고, 자신을 기다렸던 이가 그였다면????'
아라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혹여 그것을 들킬까 싶어 조심스레 제 심장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