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그라운드 자기 소개하기

- 보통의 연애소설 -

by 슈크림빵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즐거운 낙원이라. 크리스천이라니. 의외인데.”

“어디 제 심정만 할까요.”

눈빛이 선해 보이는 예지가 손을 올리자 정은도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했다. 연신 입을 오물거리던 진수의 움직임이 멈췄다.

“라면이 전부였지. 제 손으로 뭐 만들어 본 거 처음이에요. 심지어 맛도 좋아.”

“남자도 가사노동을 해야 해. 조기 교육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어머님.”

보다 못한 성은이 정은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요섹남이 요즘 대세니 생각해 보렴~. 접근 방식이 옳지 않구나.”

이어진 성은의 말에 정은의 입꼬리가 비뚤어졌다.

“수업 통틀어 오늘이 제일 좋았어요. 제가 만든 거라면 엄마, 아빠도 좋아하시겠죠.”

“효녀구나 연재는. 동그란 얼굴에 길게 늘어진 눈매가 많이 본 관상인데, 아 맞다. 효녀 심청이라고."

첨벙- 소리는 없었지만, 물속으로 뛰어들 듯한 연재의 연기가 그럴싸하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첫인상 완전 별로였는데, 일단 수업 들어보고 아니다 싶음 튀려 했었죠.”

“올 때는 네 맘대로였어도 내 허락 없이는 못 가지. 그리고 얼굴 갖고 그러는 거 아니다.”

수찬과 정은이 티격태격했다.

“난 좋았는데.”

“나도 연수 보고 있으면 좋더라.”

정은과 연수가 얼굴을 마주하고 웃었다.

“어이, 거기 대장은 할 말 없나?”

성은의 옆자리, 다부진 체격의 진호를 향해 정은이 물었다.

“확인하고 싶은 건 있어요. 데크 오븐 위아래 각기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얘기. 아무 말인 거죠?"

“that is true. 진호가 대장인 거 넌 어떻게 안 거야?”

궁금함에 성은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실세는 실세를 알아보는 법. 옆자리에 떡하니.”

성은이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진호 아니었으면 오늘 이 자리는 없었지.”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 이제는 할 거예요. 다 성은 쌤 덕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없네. 후배님은요?”

인범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학원 앞에서 담배 피우다 딱 걸린 거죠 뭐. 교복 입은 학생이 담배가 웬 말이이더냐? 가끔 마주하는 상황이니까. '아~ 꼰대' 하다가도 틀린 말도 아니니. 뻔한 잔소리려니 한 귀로 흘리자 했는데, 일요일에 시간 있냐고 물으시길래. 데이트 신청은 아닐 테고 혹시 이상한 종교? 했었죠."

정은과 인범을 번갈아 보며 진호는 차근차근 말을 늘어놓았다.

“창문 닫으러 교육장 왔다가 진호를 봤어. 나도 학부모야. 처음엔 저놈 보소~ 삐딱한 시선이었어. 한자리에서 두 가치를 내리 피우는 내내 침을 안 뱉는 거야. 단 한 번도. 차라리 똥 밟는 게 낫지. 무슨 지뢰밭도 아니고 거 피하느라 접촉 사고 날 뻔했다고. 우리 큰 애 고등학교 입학식 날, 담배는 피울 수도 있지만 침은 안 된다고. 걸리면 그날이 제삿날이라고 못 박았어. 휙- 던지겠지 했던 예상과는 달리 꽁초를 손에 쥐더라. 그게 결정적이었던 거지."

어쨌거나 절반은 기특하다는 듯 성은은 진호를 바라보았다.

“오~ 잘 배웠네.”

정은의 눈과 마주친 진호의 시선은 괜히 찔린 듯 흔들렸다.

"근데 열여섯 명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일이 조금 많이 커진 거지."

머리를 긁적이며 싫지 않은 표정으로 성은이 말하자 진호의 입이 급히 열렸다.

"다 제가 모은 건 아니에요."

"정말?"

'처음 듣는 얘기야.' 성은의 눈은 물었고, '자 그럼 들어 봐.' 진호의 입은 답을 달았다.

"영훈이, 진수, 연수는 같은 학교 같은 동네, 해서 같이 봉고 타는 사이고, 수찬이는 중학교 베프, 실제 인맥은 여기까지고 희선이, 예지, 연재는 초등학생 때부터 연수 베프고, 도겸이는 진수 이종사촌, 해영이는 영훈이 구 여자 친구, 원선이는 현 여자 친구."

‘이게 바로 요새 고등학생들의 진취적 사고방식이라네. 듣고 있나 꼰대들.’ 하듯, 진호의 목소리에서 결연함마저 느껴졌다.

“와우~ 쏘쿨.”

놀란 토끼눈을 한 정은의 입은 크게 벌어졌다.

“병철이랑 영훈이는 영어 학원 친구, 세현이는 병철이 여자 친구고 건우랑 인서는 수찬이 학교 친구예요. 인서, 수찬이는 피아노, 건우는 바이올린 전공, 유명세 타기 전에 싸인 받아 두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수는 우리 반 반장,, 스스로 지원했어요."

할 말이 아직인 듯했지만 진호는 일부러 입을 닫았다.

“해수도 진호 인맥 맞네. 반장과의 인맥이라니 건, 좀 의외다.”

“그게 조금 복잡한데 실은 제가 해수 마니토라서, 교화인지 일탈인지 담탱이의 계략은 모르겠으나, 해수가 도서관 도서 정리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에 지원하자고, 책과 친한 사람 중에 악인이 없다나 뭐라나, 하필 일요일이잖아요. 해서 커피 수업 얘기를 했더니 심심하던 참에 잘됐다며.. 그니까 스스로 지원한 걸로 해주세요."

“나는 이 연애 찬성일세. 수업 아니었으면 지금쯤 두 사람 도서관에 있었겠네. 서가에 책 집어넣으려다 눈도 얽히고 손도 얽히고 사랑도 리더십이야. 멋지다 해수."

성은이 소녀 감성으로 너스레를 떨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은 심드렁해했다.

"4년 내내 학교 도서관 근로 장학 도우미였던 유경험자의 소견은 이렇습니다만, 그런 낭만 1도 없답니다. 드라마는 픽션이야. 뻔한 거짓부렁이지요."

성은을 향한 정은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시원했다.

“본인 얘기를 모두화 하지는 말고, 나도 들은 적이 있어.”

인범의 말에 동조하듯 성은이 테이블을 가볍게 내리쳤다.

“사랑이 싹트는 교실도 낯설지 않은 레퍼토리고.”

“본인 경험담처럼 말하지 마요.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하나 없는 걸 뭐.”

호기롭게 몰아댔지만 인범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자 화제를 돌리듯 정은은 말했다.

“일진과 반장은 상상도 못했다.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다채롭기는.”

웃음을 누르려는 듯 정은은 부러 목을 조이며 쿡쿡- 거렸다.

“두 분은 어떻게 오신 건데요?”

반장다운 말투로 해수가 물어왔다.

“이 학원이 배출해 낸 최고의 졸업생이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난 걸 보면.."

정은이 한껏 어깨를 올리자 어이없다는 듯 인범은 고개를 저었다.

“육체의 노동으로 이별의 아픔을 잊고자 노력하는 중이고.”

성은이 인범을 가리키자 그는 아픈 듯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그럼 두 분이..”

“어디가? 나도 있어. 남자 친구. 멋대로 단정 짓지 마라. 너 거짓말 진짜 성의 없게 한다. 이런 기분이구나. 그동안 미안했어요."

정은의 두 눈이 이내 성은을 향하자 그녀는 깔깔대며 답을 대신했다. 데크 오븐의 열기가 식은 지 이미 한참이었지만 열아홉 명이 모여 앉아 뿜어내는 온기로 쿠키 몇 판은 족히 구워낼 만했다. 제6장 커피 수업은 막 구워낸 쿠키 맛이었다.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시모넬리 아피아의 검은색 스팀 레버가 사색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튼실하게 벌어진 어깨가 돋보이는 여학생이 스팀 레버와 몇 분째 씨름 중이었다. 지켜내야만 했다. 기계도, 소녀의 의지도..

“우리 혜수 뭐가 문제인데.”

“제 이름도 아시고.”

“반장 이름만 기억하면 되는 거다. 왜? 급우들 이름은 반장 머릿속에 있으니까. 김혜수 언니 완전 팬. 사자성어로 동명이인."

눈을 찡긋하며 정은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인범 선생님 말이 맞았어. 선생님은 손 기술이 좋고 본인은 머리가 좋아 무적함대라고. 전 바다 해자 써요."

예상치 못한 정은의 따가운 시선에, ‘나는 모르는 일이야.' 하듯 인범은 어깨를 쓱- 올렸다.

“혜수나 해수나 발음하면 소리는 비슷하고, 물어본 건 그게 아닐 텐데.”

“아.. 벨벳 거품 완성해서 하트 인 하트, 로제타 그리고 싶다고요. 선생님처럼.”

단전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어이없음에 정은은 핏-하고 웃었다.

“잘 들어 반장.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0시간가량 주 6일을 4년 넘게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 했단다. 내 장사한 지 이제 3년 차 접어들었고, 그럼 하루 평균 기계를 몇 번이나 잡았을까? 상상이 안되지! 나도 그래. 기계는 거짓말하지 않아. 잡은 만큼 실력이 느는 거지. 고작 여덟 번에 벨벳 거품? 라테아트를? 인석아 그러지 마라. 그동안의 숱한 노력들이 의미 없어지잖아."

스팀 피처에 우유를 담아 스티밍 하는 요령을 천천히 설명하는 정은을, 인범은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잠시 길을 잃은 너희에게 나침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김성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근데 현실은 너희들이 나의 나침반이었어. 진심으로 고마웠다."

쑥스러움인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정은의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커피숍에 놀러 가도 돼요?”

캡모자를 눌러쓴 건우가 수줍게 물었다.

“애, 어른 따지지 않고 지나친 애정 행각은 반대일세, 우리 집 cctv는 도난방지용 아닌 방범용이라는, 교복 차림 일시엔 부모님 동반하고."

못 말리겠다는 듯 인범이 푸훗- 웃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살아보니 공부가 돈이 다는 아니더라. 그렇지만 빛나는 꿈은 가져라. 그건 진짜니까. 영훈이는 쇼미더머니에서 보자. 로제타 정복이 목표라면 해수는 나에게로 오라. 너 하나 거둘 형편은 되고 나 시모넬리 아피아 쓰잖아. 너희 모두의 꿈을 응원한다."

영훈과 해수의 얼굴에 아쉬움이 역력했다. 교육장 안을 휙 둘러보던 정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그런 거 안 해주나!!”

하하하.. 웃음소리가 교육장 안을 가득 채웠다. 이별의 순간은 늘 어색하기에 장난스러움에 한껏 기대 웃음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정은이 옳았다. 아쉬운 마음을 서로 감춘 채 따듯한 웃음으로 인사를 했으니 말이다. 5월의 절정으로 치닫는 햇살도 따사로운 일요일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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