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피티 궁과 베키오 궁 사이로 아르노강이 흐르지만, 바사리 회랑이 있는 ㄷ자 구조의 우피치 궁은 놀랍게도 이 두 곳을 연결하는데, '관공서'를 뜻하는 우피치는 16세기 중반 건축가인 바사리(Giorgio Vasari)에 의해 지어졌다. 평소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메디치가는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한편, 예술품들을 수집하고 전시할 수 있는 방들을 우피치 궁 안에 배치하였는데,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녀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1737년 우피치 궁과 예술품들을 기증하였고, 1765년에 이르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현재 우피치 미술관으로 불리고 있다.
1층의 티켓오피스, 서점, 카페테리아, 우체국을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꼭대기층인 3층의 서쪽 건물 A1-A4관에는 <마에스타>, 또는 <온니산티의 마돈나>라 불리는 조토의 작품과 더불어 마리아와 그녀의 품에 안긴 예수 그리고 그들을 경배하는 성인들과 천사들을 묘사한 르네상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A8관에는 회화에 원근법을 사용한 최초의 화가 마사치오(Masaccio)의 작품 중 <성안나와 성모자>를 만날 수 있는데, 이는 1423년경 피렌체의 산탐브로죠 성당(chiesa di sant'Ambrogio)을 위해 그려진 제단화로 마솔리노와의 합작품이라는 후문이 돌지만,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말이다. 또한 그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성 삼위일체>로 더욱 알려진 화가이다. ant’Ambrogio
바로 옆방인 A9관에는 유난히 성모 마리아를 많이 그려, 그 덕분에 우아한 성모 마리아의 여러 모습을 감상할 기회를 후대에 안겨 준 라파엘로의 스승이며 그림 속 모델을 사랑한 신부인 F. Lippi의 작품과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높아진 초상화의 인기를 여실히 드러내는 Piero della Francesca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부부의 초상>이 걸려 있는데, 주문자인 페데리코 얼굴의 결점을 숨기기 위해 배우자와 마주 보는 두 폭 형식의 안면의 측면만을 표현함으로, 형식의 기발함과 노련미는 물론 초상화의 다른 면까지 선보이고 있다.
맞붙어 있는 A11-A12관에는 흰 드레스에 빨간 로브를 걸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머리 위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큐피드를 묘사한 <프리마베라>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상기된 볼, 하늘 거리는 꽃의 여신 플로라와 비너스의 시녀 삼미신의 옷자락과, 꽃밭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인물들의 발,, 등장인물뿐 아니라 여백마저 봄을 설명하고 있는 보티첼리의 대작 옆에 또 다른 대작인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미풍의 여신 아우라가 바람을 불고 제우스의 딸이며, 계절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옷을 건네고 있는 <비너스의 탄생>이 걸려 있다. 그림 속 여인은 르네상스의 거장 보티첼리의 섬세한 손끝에서 극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꽃인 보티첼리관을 빠져나와 곳곳의 조각상과 천장을 빼곡히 수놓은 그림들을 이정표 삼아 긴 복도를 걸으며 네모난 창문 너머로 두오모 대성당의 쿠폴라와 베키오 다리에 뺏긴 시선을 원위치하면 A35 레오나르도 다빈치관으로 이어진다.
대천사 미카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사실을 전달받은 마리아를 그린 <수태고지>, 천사의 날개를 새의 날개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새뿐 아닌 아르노강의 풍경을 면밀히 관찰한 후 화폭에 담아내어 결국 다빈치였기에 가능했음을 입증하는 한편, 불과 20대 초반의 나이에 완성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유는 충분하다. 요단강에서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을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는 스승인 베로키오와의 합작품으로, 경건하고 진지한 예수, 세례 요한을 그린 자신과는 달리 지루해하는 표정의 아기천사 부분을 그린 제자의 뛰어난 실력에 베로키오는 그 즉시 붓을 던지고 조각가의 삶에 매진했다 전해져 오는 후문은 시선을 잡아당긴다.
A38관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둥근 원형을 가리키는 ‘Tondo’와 의뢰인 ‘Doni’를 뜻하는 <톤도 도니>는 피렌체의 거상 아뇰로 도니의 딸 마리아의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으로 자신을 화가 아닌 조각가로 주장하던 미켈란젤로의 남아있는 유일한 회화 작품으로 아기 예수와 성모, 성요셉의 성가족을 묘사한 것으로, 마리아의 붉은 옷과 요셉의 어두운 의상의 강렬한 색의 대비는 충분히 시선을 끌고, 그로 인해 배경에서 따로 돌출된 듯한 입체감과 원근감마저 확연히 드러냄은 물론, 그림을 감싸고 있는 화려한 액자는 조각가로서의 그의 명성을 고스란히 입증하고 있다. 이어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막내인 라파엘로가 23세에 그렸다는 <자화상>과 면죄부를 팔아 종교개혁을 야기한 <레오 10세의 초상>까지 보아야 그제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서쪽에서 시작되는 르네상스 초기부터 동쪽으로 이어지는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관람한 후 이어진 계단을 타고 내리 걸으면 D12 - Pontormo e Rosso Firentino의 전시실로 이어진다. ‘마리에리스모’ 또는 ‘매너리즘’으로 불리는 이 화풍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이행되는 과도기에 나타났으며, 왜곡되고 구불거리는 형상, 불명료한 구도, 양식적인 속임수와 기괴한 회화가 특징으로, 매너리즘 화풍을 이끈 작가로 유명한 로소 피오렌티노의 <음악의 천사>가 전시되어 있다. 대인 기피증과 불안장애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렸던 로소가 아기천사가 류트를 연주하며 음악에 빠져있는 분위기를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그린 것인데 <이드로의 딸들을 구출하는 모세>를 비롯한 인체에 대한 음울한 분위기의 여느 그림과는 달리 붉은 머릿결의 아기 천사는 그저 귀엽다는 말밖에,, ‘피렌체에서 온 붉은 머리’라 불리던 자신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으며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로는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질문이 들게끔 한다.
D14관에는 매너리즘 회화의 선두 주자인 폰토르모의 영향을 받은 아뇰로 브론치노의 <엘레오노라와 아들> 혹은 <톨레노의 엘레오노라와 그녀의 아들 조반니의 초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코시모 1세의 부인과 그의 아들을 그린 그림으로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 도자기를 연상시키는 매끈한 피부의 표현은 섬세하고 정교함이 돋보이는 반면, 지나치게 무표정한 얼굴과 얼음 같은 자태는 왠지 모르게 차갑고 우울하게 와닿는다. 왜곡된 신체를 가진 난쟁이를 사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린 실물 크기의 <난쟁이 모르간테의 초상>은 마치 궁정화가였던 자신과 당대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야유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D4관에 파르마지아니노의 <목이 긴 성모> 역시 매너리즘 화풍을 고스란히 대변하는데, 흡사 10등신에 가까울 만큼 성모의 목은 길게 늘어져 있고 무릎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는 다소 기괴해 보이며, 천사로 보이는 소년과 소녀는 지나치게 왼쪽 구석에 몰려있고, 거대한 기둥과 그 앞에 수도사는 전경의 인물들과 동떨어진 비례로 그려져 있다. 매너리즘 화풍의 작품들에서는 열광적인 감정, 긴장과 부조화의 느낌, 신경 불안의 감각을 전달하려는 화가들의 의도를 다분히 엿볼 수 있다.
D23관에는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티치아노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정확한 선으로 대상의 형태를 완벽하게 그려내는 드로잉을 회화의 기본으로 삼은 피렌체 학파와는 달리 베네치아 학파는 색과 빛에 더 중점을 두었고, 그의 대표작인 <우루비노의 비너스>는 고개를 비스듬히 하는 종래의 구도에서 벗어나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베누스 푸티카(정숙한 여인)’ 자세를 취하려다 만 것 같은 구도와 부끄러움 없는 시선 처리는 되레 도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붓터치와 화려한 색감으로 치장하고 있는 그림 속의 모델은 베네치아의 귀족 여성이라는 후문과 함께 서양 미술사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화로 회자되고 있다.
E4관에는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가 전시되어 있다. 방탕한 삶과 주변인들과의 끊임없는 마찰로 인해 그는 결국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 도망자가 되었지만, 가까스로 죄를 사면받고 로마로 돌아가던 중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객사하고 만다. 죽기 십여 년 전쯤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속 메두사의 얼굴은 실제 화가의 얼굴이라 전해지는데, 자기 연민인지 아니면 자기혐오인지는 그린 이만이 알 수 있을 테지. 정적이고 안정적인 구도를 지향하던 르네상스 화풍과는 달리 격정적이며 과격한 구도를 지향한 루벤스, 렘브란트, 카라바조 등의 바로크 시대의 화풍을 감상하는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의 종말까지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어느새 우피치 미술관의 끝자락이다.
“좀 의외인걸요.”
“뭐가요?”
“보티첼리관 가자할 줄 알았더니. 폐관까지 한 시간가량 여유 있었고, 벌거벗은 남자 몸은 별로여도 여자 몸은 다를 거라 생각했거든요.”
“새로운 접근 방식인데요. 수세기에 걸쳐 두고두고 곱씹는 거작을 두고 한낱 벌거벗은 여자 몸이라 폄하하다니, 와..”
부루퉁하게 입을 내민 아라를 빤히 보며 진호는 말했다.
“동상이몽이니까.”
툭- 뱉는 진호의 말에 아라의 두 눈은 궁금함을 담아 재촉했다.
“그림 감상하는 그쪽과는 달리 다른 게 연상이 되니.”
“설마?”
“그 설마가 정답일 거라는.”
가까스로 오므려 닫은 보람도 없이 아라의 입은 또다시 벌어졌다.
“보통의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당연한 현상이니 구태여 부풀리지는 말고. 볼 게 이렇게 많은데 실내가 웬 말인지. 더군다나 미술학도도 아닌데. 벌레 들어가겠네. 취향이라면 내 알바 아니지만 난 진짜 단백질을 씹고 싶은데.”
피식 웃고는 시동을 건 진호의 경쾌한 걸음 끝자락에 산타마리아 노벨라 중앙역의 간판 모서리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