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4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널찍한 실내, 촘촘히 놓인 테이블에 자리 잡은 피부색이 다른 다수의 사람들, 정사각형의 테이블을 겹겹이 감싸고 있는 빨간색과 하얀색 천 위에 깔끔하게 정리된 커트러리와 빈 잔, Trattoria Dall’oste.. 여행책에 서술된 그대로였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스테이크집에서 나누기엔 좀 무거운 주제인걸요.”

“대동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맛이 기가 막히다죠. 죽기 전에 맛보고 싶다는.”

목소리도 놀랐는지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숨소리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지만 멋대로 벌어진 아라의 입 모양은 놀람을 몸소 표현하고 있었다. 커다랗고 두툼한 몸체는 검은색 그릴 주물팬뿐 아니라 웨이터의 손마저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으나, 이와는 상관없다는 듯 ‘chianina’ 라 적힌 앙증맞은 깃발은 최정상에서 가벼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모두가 보는 이로 하여금 식욕은 물론 호기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소의 등에 올라탄 쥐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마저 불러왔다.

“토스카나 요리의 메인인 피렌체 스테이크,,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을 맛인지 아님 둘 다 죽을 맛인지. 어디 한번.”

맛이 제법인지 입 안에 넣은 큼직한 덩어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진호는 한 점을 더 집어넣었다. 한껏 부풀어진 양볼 사이로 힘겹게 움직이는 입 모양을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아라는 바라보았고, 쏠린 그 시선에 진호는 반응했다.

“2미터 & 1.6톤의 크고 무거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흰 소 키아니나 품종은 기네스에도 기록된 바 있으며, T자 뼈를 사이에 두고 등심과 안심으로 나뉘어 있어요. 실은 나 등심 러버인데 안심도 맛나네요. 식기 전에 먹죠. 데워달라는 이 나라 말은 모르니."

“숙연해져서요.”

“무슨”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의 현실 같아 그만.. T자 뼈를 사이에 두고 갈라진 모습이 딱..”

스테이크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리는 아라와는 달리 얼굴은 물론 두 귀까지 빨갛게 물들이며, 껄껄- 진호는 시원스레 웃어젖혔다.

“먼저 시작한 사람이 누구더라. 피렌체의 마지막 여정으로 장식하고 싶었는데. 덕분에..”

“북한산 가봤어요?”

“아뇨.”

“높이가 800미터가 넘어요. 등산이 체질이 아닌지라 지금 생은 인생 2막이라는, 백운대 찍고 내려와 오리고기를 먹었는데 기억에 없어요. 쉬이 올 수 없는 곳이니 새기고 가야죠."

“460개가 넘는 계단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군대는 다녀온 거죠? 특례나 비리 뭐 이런 건 아니죠?‘

장난스레 웃는 아라의 눈과 진호의 까만 눈동자가 잠깐이지만 얽혔다.

“내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응?”

“취향도 다르고 변태 취급은 물론 농담에도 무반응이라 로마 동행은 물 건너갔고, 헤어지는 중입니다~ 하는 줄 알았으니.”

“쓸데없는 생각 때문인 줄도 모르고, 다비드도, 우피치도 강 건너 불구경하길래.”

“유종의 미.. 그런 건가?”

“생각 말고 고기 씹어요. 식겠다.”

아라는 입 안의 고기를, 진호는 그런 그녀를 거듭 씹었다.


“살아 돌아올 테니 걱정 말아요. 정상에서 만나자니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그래요.”

“나는 쿠폴라, 그쪽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날아간 거네. 아쉽다.”

진담과 농담이 적당히 섞인 진호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 아라는 쿠폴라를 향해 있었다. 속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는 것이, 마치 기싸움이라도 하듯 말이다.

“로마의 산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실외는 하얀색으로 윤곽선을 두른 초록색과 분홍색의 대리석 판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아그리파가 설계한 로마 판테온의 돔을 따라 콘크리트 돔을 만들고자 했지만, 당시 추세에 따라 벽돌로 만들었데요. 발판 없이, 스스로 지탱되는 돔을 만든 천재로 칭송되는 조각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대성당 남쪽 측랑 지하에 안장되었다고 하고.”

“구구절절 설명한다 해도 막상 쿠폴라에 올라가면 <냉정과 열정사이>만 생각날 거 뻔한데. 뭐. 90미터가 넘는 성당 앞에 서 있노라면 아무 생각도,, 성당은 웅장하고 쿠폴라는 높다 그리고 난 올라가야만 한다. <꽃의 성모마리아>의 너른 품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아라의 말투는 진지했고, 쿠폴라 입구를 향해 내딛는 진호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아직은 말이다.


좁은 돌계단을 돌고 또 올라 얼마나 지났을까? 눈 아래로는 대성당의 내부가, 눈을 들면 조르조 바사리가 붓을 들고, 페데리코 주카리가 붓을 놓은 <최후의 심판>이 있었다. 돔 안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지나야 쿠폴라에 도착할 수 있으니,, 결국 목적지는 천국행이란 말일 테지. 멋대로인 상상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기폭제가 되어 얼른얼른 떨어지지 않는 두 발에 남은 힘을 쏟아부었다.

"미켈란젤로 언덕, 베키오 다리, 피티 궁전, 피렌체 중앙역, 저쯤이겠지 그쪽 숙소는. 아~ 참 조토의 종탑을 빼먹었네."

"한 바퀴 둘러보고 올게요."

"다음은 없을 테니 천천히."

진호가 머물렀던 자리를 우두커니 바라보던 아라는 두 팔을 급히 감싸 쥐었다. 높은 곳에서 맞는 봄의 기운이 아직은 시리기라도 한 듯 말이다.


"깜짝이야."

"그건, 내가 더. 요즘 누가 클래식을?"

아라의 오른쪽 귀의 이어폰을 꺼내 진호가 자신의 왼쪽 귀에 꽂자 아라는 목소리로 진호는 표정으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영국의 록밴드 프로콜 하럼의 <A Whiter Shade of Pale>을 번안한 거고, 오페라의 고장답게 웅장해진 건 사실이지만 정통 클래식은 아니잖아요. 선 넘나드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국경도 그런 이유로?"

"G선상의 아리아,, 좋아해요. 잘은 몰라도 음악의 어머니 헨델, 아버지 바흐 정도는 알고."

진호가 원위치시킨 이어폰을 도로 빼내어 아라는 손에 쥐었다.

"누구 버전을 좋아하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닌가? 많이들 커버했으니."

"안 궁금합니다."

"왜요?"

"애청곡이 아니라서."

일부러 몸을 틀며 입을 닫는 진호와는 달리 할 말이 있는 듯한 아라였지만 손에 든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속마음을 꾹 눌렀다.

"해서 찾았어요?"

"무슨?"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길래 일부러 시간 준 건데."

"한 바퀴 둘러본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진호를 향해 아라는 도리질을 했다.

"위치를 잊어버린 건가? 빈틈없이 빼곡하더구먼. 사랑의 성지 명성에 걸맞게."

"떠도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둘 수 있다 생각해요? 고작 저 벽 따위로? 사랑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들 다 죽으라고? 그건 아니지."

"<The Whole Nine Yards> 아닌 <Senza Luce>를 들을 거면, 사랑의 맹세를 적지도 확인하지도 않을 거면, 쿠폴라엔 대체 왜?"

"그러는 그쪽은 셋 중에 한 거 있어요?"

"아뇨."

"노출 적은 곳에 적는 게 tip이에요. 관광객들 유치할 목적으로 페인트공 아저씨들이 주기적으로 덧칠하거든.

펜 필요하면 말하고."

"말도 안 돼."

"직접 확인해 보던가."

"본 것처럼 말하네요."

"산타클로스 다음으로 실망한 사건, 저번 여행 때 봤어요."

아직도 서운한 모양인지 아라의 말투에선 섭섭함이 흠뻑 묻어났지만 진호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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