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6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예배당을 중심으로 양쪽 측랑이 있는 구조로, 이전 고딕 양식의 대성당과는 달리 기둥이 많지 않았고, 44개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그 창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내부는 밝고 넓었으며 경건함을 강조하는 구조였다. 3만 명을 채우지 못해서일까? 널찍한 성당 안은 한산한 탓에 쉬이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왼쪽 측랑 벽면에는 단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465년 도메니코 디 미첼리노가 그린 <단테와 신곡>이 걸려 있다. 좌측에 지옥, 중앙에는 연옥의 산, 우측으로는 피렌체의 모습, 그리고 이 모두를 등지고 선 단테,, 이는 추방당한 그가 성 밖에서 피렌체를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손에 들고 있는 <신곡>은 마치 한줄평처럼 그림 전체를 설명하는 듯했다.

"전하지 못한 편지라 생각했는데."

그림 속 단테와 그의 손에 들린 '신곡'을 번갈아 가리키며 진호는 이어 말했다.

<La Vita Nuova>, 새로운 인생,, 1294년 출간된 단테의 연서.. 베아트리체의 급작스런 죽음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으나 이념의 차이로 추방당한 그는 교회, 정치, 민중의 삼각 구도의 참혹한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타개하려 가톨릭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대서사시 <신곡>을 구상하죠. 부활절 기간 사후 세계로 순례를 떠나는 것으로 설정된 이 작품에서 단테는 지옥에서 삼 일, 연옥에서 삼 일, 천국에서 하루,, 총 일주일간 사후 세계에 머무는데, 이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과정에 맞춰 자신의 구원을 향한 순례의 여정을 그린 것입니다. 연옥을 통과한 후 베아트리체를 만나 마침내 천국으로 가는 내용으로 끝을 맺지만.."

"당대의 부조리를 역설하는 동시에 천국행 길잡이인 베아트리체를 만나러 가는 여정.. 요는, 오~ 베아트리체!! 당신만이 나의 삶 그리고 사랑의 구원자요."

아라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뜬금없이도 말이다.

"단테 교회에서 그의 본처와 베아트리체의 무덤 봤죠? 갑자기 생각이 나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본처 얘기는 하나 없길래. 왠지 미워서."

"모성애가 많아 여자라?"

"동병상련 같아서요."

들릴 듯 말 듯, 진호의 입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시작한 거 끝은 봐야죠."


피렌체의 수호성인 산 조반니를 기리기 위해 12세기 초 완공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세례당으로 단테와 메디치 가문의 세례 장소로 알려져 유명세를 탄, 산 조반니 세례당은 흰색, 녹색과 분홍색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팔각형 건물로, 금으로 도금된 커다란 청동문인 동쪽 출입문은 아담과 이브부터 시바 여왕과 솔로몬이 만나는 구약 성서 열 개의 내용을 로렌초 기베르티가 27년에 걸쳐 만든 것으로 '천국의 문으로도 손색없다' 라 감탄한 미켈란젤로의 말 한마디에 의해 '천국의 문'으로 불리고 있다.

세례당 출입문에 새겨 넣을 청동 부조상을 현상 공모한 1400년대 초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구약 성서의 내용으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가 경쟁을 한 결과, 승자인 기베르티는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 부조를, 패자인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귀향하여 두오모의 쿠폴라를 만들었으니..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예술을 향한 그들의 집념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단테는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어요. 그의 작품에서 '나 그곳으로 돌아가리. 그곳 세례당 우물가에서 월계관을 쓰리.' 피렌체를 그리워했던 그의 마음이 역력하죠."

그 옛날의 단테도 그러했을 테지. 그리움과 괴로움이 저울질이라도 하듯 아라의 음성은 한마디로 가늠하기 어려웠다.

"파벌 싸움으로 추방당한 채 이리저리 떠돌다가 라벤나에서 생을 마감하여, 실제 무덤은 그곳에 있기에, 그의 유해가 피렌체로 돌아오기 바라는 시민들은 산타크로체 성당 안에 가묘를 만들며 기도했지만, 몇백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라벤나의 단테 무덤을 밝히는 초는 피렌체가 값을 지불한데요. 사죄의 의미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그 말,, 틀린 말은 아닌가 봐. 몸과 마음을 짓누른 상처가, 결국 위대한 걸작으로 탄생되었으니."

"한이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

"무슨."

"서편제.. 소리의 완성에 집착한 나머지 동호가 송화의 눈을 멀게 하잖아. 과정은 옳지 않았다 한들 결국, 송화의 한이 소리로 승화되었으니."

시원하게도 웃었나 보다. 귀까지 빨개진 진호는 쿨럭거리며 잔웃음을 가까스로 누르고 있었다.

"웃자고 꺼낸 얘기 아닌데."

"단테 그리고 <신곡>의 탄생 배경까지.. 덕분입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의 우체국 앞이었어요. 반가운 한국어 그러나 반갑지 않은 내용, 본인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친구 따라 강남에 간.. 강남까지 갔으면 교보문고는 보고 와야지. 안 그래요? 강남에서 가본 곳이 교보문고밖에 없어서."

이 기세라면 해전 내 이어질 듯. 어깨까지 들썩여가며 진호는 웃음을 쏘아 올렸다.

"르네상스, 메디치가, 결론은 미켈란젤로라 생각했는데, 단테가 있더라고요. 해서 화두를 던져준 거죠. 피자보다 석양이라던 그 선배처럼. 정독할 거라 생각 못했는데. 뜻밖이네요."

"출발선에 서는 게 어렵지 스타트 끊으면 경주마라서. 스크롤바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수험생인 줄 알았다는."

"갈 데 있어요."

"또 어디?"

진호를 부추기는 아라의 손짓은 분주했다.


"파스타의 고장 아니랄까 봐. 토마토 천지구먼."

소의 위인 양, 벌집위, 천엽, 이 모두를 통칭하는 trippa가 얕고 널따란 뚝배기를 점령한 걸쭉한 토마토소스 안에서 숨바꼭질 중이었다. 큼지막한 수저로 휘휘 저어대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본인 먼저 먹어달라며 어지간히 아우성이었다. 건더기와 소스를 국자로 크게 떠 앞접시에 덜은 진호는 빵에 찍어 한 번, 수저로 떠서 또 한 번, 입 안에 밀어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억지로 먹는 것만 같은 그 모습이 아라의 눈에 밟혔다.

"중간고사 끝나면 보려고 다짐했던 영화도 만화책도 기대보다는 별로였어요. 나만 그런가? 단테 정독의 수고로 trippa의 정석을 맛 보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품고 있는 속뜻이 이뻐서. 저번 곱창 버거보다 훨씬 낫고. 토마토소스 별로면 빵이라도 먹던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아라에게 말을 건넸지만 그녀의 시선은 테이블 위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트리파이오(trippaio)는 트리파를 파는 이동식 주점으로 메르가토 누오보 시장 남서쪽 모퉁이와 마르게리타 성당 옆 골목에 있으며, 파슬리, 멸치, 마늘, 케이퍼를 으깨서 만든 연두색 소스 살사 베르데(Salsa Verde)라 부르는 멕시코식 그린 소스를 듬뿍 넣은 것이 특징이래요. 다른 곳은 소금, 후추, 칠리가루를 듬뿍 넣어 피렌체의 전통을 이어가는 다 비나티에리(Da Vinattieri)라는,, 두 곳 모두, 단테 성당 근처인 듯한데, 이탈리아의 매운맛 보러 갈래요?"

반가운 님이라도 만난 듯 발그레한 홍조도 모자라 목소리 또한 한껏 들뜬 채로 아라는 치근덕댔지만, 관심 없다는 듯 돌부처처럼 꿈적 않는 진호를 보며 쐐기를 박듯 말했다.

"거 아님 냉 버전이라도 먹어볼래요? 토마토 주스의 뻔한 맛이려나?"

못 말리겠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진호를, 아라는 팔짱을 낀 채로 빤히 바라보았다.


"석양 못지않게 야경 또한 시선 강탈."

"아경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로마 동행의 결정적 이유."

궁금함을 감득 담은 진호의 두 눈은 참지 못하고 채근해 대었다.

"로마 야경은 아직이라.."

"말도 안 돼. 횟수로나 날짜로나.. 에이."

못 믿겠는지 아라의 말끝을 덥석 물며 재빨리 뱉는 진호의 말투엔 불신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야경 투어 하려던 날 비가 엄청 와서 취소되는 바람에, 강도 만난 호된 체험담에 지레 겁는 바람에,, 그렇게 엎어졌다는."

"가족 여행 때는, 군필자 두 명이 물샐틈없이 지켰을 텐데."

"설명하자면 좀 길어요. 김밥, 계란, 사이다도 없을 테니 그건, 로마행 기차 안에서. 아무튼, 기필코 보고야 말겠다. 로마 야경."

주먹을 불끈 쥐는 모양새로 보아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말이다.

"로마는 야경 맛집인가?"

"훌륭한 코스요리를 각인시키는 마침표 격인 디저트즈음?"

"본식은 대체 어떻길래?

"글로벌 그룹 배스킨라빈스가 해바라기 하는 곳이 바로 로마라는. 본인들의 31가지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무모한 도전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그만큼 스케일이 남달라서."

한껏 진지한 아라와는 달리 진호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처음에나 감탄사. 건물도, 성당도, 박물관도 거기서 거기인 거지, 정작 기억나는 건 콜로세움뿐일 텐데, 뭐."

"콜로세움의 벅찬 감동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동전 던지러 트레비 분수에 가야 하질 않나. '아이스크림 맛집은 스페인 계단인데~'하며 부추기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교황님 계실 때 축복받으러 가야지. 지금까지 이런 언덕은 없었다, 이것을 보르게세 언덕이라 아님 절경이라 칭할까!! 보고프게 하질 않나. 비토리아와 랭던 박사도 다녀간 천사의 성인데 당신은 왜? 입장권 구매를 강요하지. 미켈란젤로의 필체를 찾아볼 수 있는 피에타상은 바티칸에만 있다!! 솔깃하게 하지. '백문이 불여일견, 판테온으로 오이소~ 단, 거센 폭우가 몰아치는 날 만큼은 피해 주세요~' 궁금하게 하질 않나. 말이 필요 없는 일타삼피 몰타 기사단 별장으로의 초대장을 원하니? 두 손 벌리게 하지. 로마에서 짝귀 체험 하고 싶다면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입 앞으로 속히 오라며 심장 쫄깃하게 하지. '이태리 물 찬 제비의 슈트핏 런웨이 원해요? 단언컨대 콘또띠 거리가 답입니다'하며 눈호강 보장하지. 미켈란젤로의 마침표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도장 깨기 자극하질 않나. 등등.. 등등 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등등 등등.. 하는 겁니다. 성당만 해도 500개가 넘으니까, 눈길이 발길이 닿는 곳마다 오롯한 역사의 현장, 문화유산이니,, 이 정도면 대충 감이 오나요? 시뮬레이션 on상태 맞냐고요."

출장 나온 로마 관광청 소속 직원이라도 되는 양 아라는 한껏 고취되어 있었다.

"여행객 아닌 여행사 브로커는 아닌지? 나 같은 초짜 노려서 친절한 척하다 나중에 뒤통수치는.. 거 아니면 이참에 이직을 고려해 보던가. 무슨 밴딩 머신도 아니고 누르면 술술~."

"삭제 기능이 고장이 나서, 매사에 뭘 잘 못 잊어요."

가슴을 부여잡으며 억지 아픈 척을 하는 아라를 향한 진호의 시선은 한참을 이어갔다.

"밤은 내일을 위한 수순인지라 붙잡을 수도 없고, 마지막 밤이라 그런가?"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아라의 표정은 까만 밤하늘 아래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진호의 시선은 여전했고 그들이 내쉬는 잔잔한 숨결은 밤의 무거움 속으로 빠르게 흩어져 버렸다. 분주했던 낮과는 다른 모습의 미켈란젤로 언덕, 그리고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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