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쿠폴라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고작 그뿐인데."
대성당의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에 시선을 두고 진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연모의 마음을 엿보고 싶어서일 수도."
"대성당 공사 책임자였던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사망하자 약 30여 년 동안 공사는 중단되었고, 그 후임으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조토, '브루넬레스키의 지척에서라도!!'가 아닐까? 예술의 번영기였을 뿐, 당대에는 환영받지 못했을 테니. "
"하긴 신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니."
'하아'.. 진호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자 커다랗게 둥글린 눈을 앞세우고 아라는 채근해 대었다.
"1337년 조토는 가고 1377년 브루넬레스키는 오고, 1418년 대성당의 돔 건축 공모전에서 브루넬레스키가 선발되었으니. 요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
보기 좋게 한 방 맞았으나 아라는 주눅 들지 않았다.
"오~.. 뿌듯함은 내 몫인가!! 피렌체까지 왔는데 조토의 종탑을 건너뛴다? 그건 서운해서가 아닐는지. <신곡>, <인페르노> 등등.. 적잖이 언급되었으니.."
"조토의 종탑은 올려다보는 거지. 올라가는 건 아니구나. 아직인 거 보니."
엉뚱하고도 태연스레 이어진 진호의 말, 당황한 빛을 지운 아라는 이내 목소리에 힘을 실어 그에게로 밀었다.
"두오모 대성당과 쿠폴라,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조토의 종탑, 산 조반니 세례당, 산타 레파라타 지하 예배당, 이 모두를 72시간 내에 입장 가능한 통합권에 대해 알아요?"
진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반타작은 해야지, 양심상!! 두오모 쿠폴라나 조토의 종탑이나 각도상의 차이일 뿐, 포장지만 번지르르하지 본디 박물관은 고대의 잡다한 것들을 섹션별로 놓아둔 고물상, 물론 존스 박사가 이 예문을 경멸하겠지만,, 브루넬레스키의 묘를 보겠다고 발품 팔아 지하까지 갈 필요 있을는지, 피렌체 시민들의 공식 세례당으로 불리는 산 조반니 세례당이지만, 'che Dio ti favorsca'의 뜻도 모르는 당신과는 따로국밥 같아서 즉, 통합권은 무용지물이라 여겨져 노른자만 딱,, 쿠폴라와 석양이면 피렌체 끝이라던 그 눈높이에 맞춰서.."
"이 예문은 부모님이 반가워하시지 않을 테니 나라도 칭찬해 줘야지."
"어!! 어??"
박수까지 쳐대는 진호의 모습이 고까웠는지 아라는 튕기듯 받아쳤다.
"로마 여정에 대한 기대라 정리합시다. 거듭 말하지만 조그만 그 머리 칭찬한다고."
"맘에도 없는 말, 넙죽 받을 줄 알고?"
"베베 꼬여서는. 석양 보면 좀 풀어지려나? 마지막이니 아무래도."
석양이라는 밑바탕에 대성당의 쿠폴라는 붉은색으로 연신 채색을 해댔다. 그제도 어제도 같은 모습이라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미켈란젤로 언덕에 걸린 주문이라도 되는 양 떠나려는 자의 발걸음을 쉬이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피렌체의 마지막으로 두말 않고 석양을 택한 그들의 속마음을 엿보기라도 한 듯 말이다.
피렌체 - 로마로 향하는 Regional voloce 안, 아라는 창문 쪽에 복도 쪽에는 진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탓에 아라의 얼굴 윤곽이 창문에 도드라지게 새겨졌다. 인기척에도 반응이 없자 창문을 두드리며 진호는 주의를 환기시켰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닌지라 극의 흐름을 구상하고 있었죠."
"이런 사기꾼 같은."
시선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깔 웃어넘겼다.
"계란, 김밥, 사이다도 없으니 약속한 대로.."
"것보다 로스터의 꿈은 결국 창업? 황금알을 낳는 거위 되고자 꿈들 꾸니까.."
아라의 말끝을 가로챈 호기로운 태도는 오간 데 없고 멋쩍은지 진호는 이마를 쓱쓱 문질러댔다.
"언젠가는요. 대학만 가면, 졸업만 하면, 취직만 하면 순탄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그리던 30대 초반은 그러했는데, 거센 풍랑과 성난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작은 돛단배 같다는.."
누르지 못한 한숨 소리가 아라의 입 밖으로 나직이 새어 나왔다. 가볍게 꺼낸 대화의 끝은 커다란 돌덩이가 짓누르는 듯한 버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때아닌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겠던지 진호의 입이 성급히 벌어졌다.
"사기꾼인지 이야기꾼인지 어디 한번.."
"갑자기."
"아님 쎄쎄쎄라도. 직구는 예상밖이라서."
경쾌한 아라의 웃음소리는 조용하기만 하던 기차 안을 틈 없이 메웠다.
"이탈리아 생존 언어인 che Dio ti favorsca를 모른다기에 조금은 의외였어요."
"이탈리아에서 살아남기.. 덕분입니다."
"예!!"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채로 아라는 한껏 소리를 질러댔다. 뜬금없는 모습에 놀란 진호는 눈만 끔벅였다.
"이렇게 퉁쳐요."
"난 또."
반토막난 바람떡처럼 진호는 웃었다.
"술 한잔이 먼저였어야지. 어지러운 속사정을 엿듣고 싶으면."
"해서 내내 후회하는 중입니다."
반성문은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는지 아라는 보일 듯 말 듯 입꼬리를 올렸다.
"시계 방향으로, 혹은 반대 방향으로 잡으니, 일정대로라면, '독일 - 프라하 -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 프랑스' 보통은 이럴 텐데. '이탈리아 - 오스트리아 - 프라하 - 독일 - 프랑스'라 조금 의외였어요. 물론 서유럽과 동유럽이 이웃집이라 동선에 큰 무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말이 나와서 덧붙이자면, 야경 투어를 위한 일종의 바람막이라면, 그쪽의 경험치에 동한 케이스라고 할까?
"무슨?"
"들어봐요.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4개국 투어라 했잖아요. 수박 겉핥기 아닌 소도시 탐방이라는 부제가 붙은.."
아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상 스페인은 7월 초, 그곳 더위도 만만치 않다 정평이 나 있던데, 그럼에도 간다는 건."
"알고 맞는 매가 더 무서운 법이니까. 더위도 더위지만 습도까지 보태지면."
"맞아요. 이미 경험한 이탈리아의 무더위로 인해, 절기상 본격적인 여름 아닌 5월에 이탈리아를 훑는 그 짬에 솔깃했던 거지. 피자보다 석양이라던 선배가 신신당부한 tip이기도 했고. 해서 옳다구나 했던 거지."
"말 나온 김에 물어요. 프랑스를 마지막에 둔 이유는?"
"파리 - 인천은 직항이라. 인천 - 피렌체는 경유였거든요."
거짓말 말라는 듯 아라는 암팡지게 쏘아보았다.
"파리는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사실인가 봐. 공기마저 달콤한 곳이라고 누구도 그랬으니."
"진짜예요. 처음 보는 이와 덜컥 사랑에 빠진다 해도 하나 이상하지 않는 곳이라니까."
한껏 감정을 잡은 아라와는 달리 진호는 시큰둥했다. 약 3시간 45분이 소요되는 일정, 이제 막 Orvieto를 지난 시점, 목적지까지 대략 1시간 30분 여가 남아 있었다.
"우리와 달리 유럽은 기차 좌석이 다양해요. 지금처럼 나란히 앉는 좌석은 코치라 불러요. 혹시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갈 때 탔던 기차 기억해요?"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주 앉는 좌석. 해리포터와 론 위즐리가 앉았던?"
반신반의하며 아라가 던진 낚싯대에 진호는 걸려들었다. 시큰둥하던 진호의 눈이 반짝였고 이에 아라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정확히요. 컴파트먼트 좌석이라 칭하죠. 좌석 위쪽에 짐을 올려놓는 선반이 있는데, 베네치아 - 피렌체행 기차였고, 피렌체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선반 위에 끌낭을 내리려는 순간."
"마주 앉은 남자가 대신 내려줬다는?"
"사양할 틈도 없이. 젊고 게다가 잘생긴 외국인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는데 'ciao' 하잖아요. 심지어 목소리까지 멋지더라."
"이태리 남자들은 동양인이라면 쓰러진다던데. 여자 것도 혼자라면,, 친절한 척 가장한 강도일 수도. 동양인들 현금 부자라는 거 기정사실이고 몸소 제물 되었으니."
"어렸고 첫 여행이라 엄청 다그쳤기에 꿈쩍도 안 했다는. 듣고 보니 좀 그러네. 어!!"
곱씹어보니 분했던지 아라는 튕기듯 물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장거리 연애는 보통의 연애보다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요해요. 그보다도 여행지에서의 끌림은 불완전한 법이니까."
"책임이 따르는 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서의 깜냥 일탈.. 여행이란 그런. 해서 난 끄덕일 수만은 없겠는데요."
"보고 또 봐야 돈독해지는 법, 싸웠다가 손 내밀고 그러다가 정들고."
"장거리 연애는 덮어놓고 반대다!! 그런?"
말없이 끄덕이며 진호는 대답을 대신했다.
"타고 남은 연탄재, 함부로 차여 부서진 것도 모자라 산산이 흩어져버린 것 같은,, 이 여운은 뭘까? 남들은 겹쳐라도 적고 보자며 눈에 불을 켜는데. 수성 아닌 유성펜을 쥐어 줬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했던 건, 뭔가 있네. 있어."
"도마 위에 동시에 올려놓던가."
"술자리 안주거리 삼자고 안 하니 그나마 다행."
"건, 지난 사랑에 대한 예우 아니니까."
둘은 입을 다물었다. 서먹하다기보다 이런 문제로 말씨름을 해봤자 괜한 일이라 생각했다. 들숨 날숨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리던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아라였다.
"5천 년의 유구한 역사와 선조들의 지혜는 실로 위대해. 계란과 김밥 사이다의 필연적 구도를 이탈리아에 와서 깨달을 줄이야. 문화유산이 많으면 뭐 해. 결국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김밥 꼬투리 쟁탈전 하랴, 계란 까느라 먹느라, 목 막힐까 사이다 마시느라 금방 갈 텐데. 괜한 얘기 묻고 답하는 수고도 없을 테고."
무릎 위에 올려둔 배낭에 손을 집어넣고 한참을 꼬물거린 후, 아라는 주먹 쥔 손을 진호 앞에 내밀었다.
"계란이 왔어요. 옥희가 좋아하는 삶은 계란이 왔어요."
아라가 건넨 계란을 바라보는 진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직접 삶았어요?"
"그럼 훔쳤을까? 호스텔 선택 시 1순위는 공동 주방의 유무라는. 김밥이 없어 아쉽지만, 아~ 사이다는 있다는."
"선배의 짬이란."
"로마 야경 실패담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얘기라, 또 다른 출발을 앞에 두고 초치는 거 같아서, 계란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는."
태연스레 아라는 눈을 찡긋했지만, 한 입 베어 물은 계란이 목에 걸렸는지 진호는 아라의 손에 들린 사이다를 뺏다시피 했다. 뚜껑을 따서 입에 막 가져다 대는 순간이었다.
"잠깐, 입은 안 돼. 빨대 있어요."
캔사이다의 좁은 입구에 진호가 빨대를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아라는 제 손에 들고 있던 계란으로 진호의 머리 중앙을 정확히 조준하고 힘껏 내리치고는 깔깔 웃어댔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도구를 이용할 줄 안다는 거지."
잠시 멈췄던 아라의 웃음소리가 다시 재생되었다. 정수리를 쓰다듬는 진호는 마뜩잖은 눈길이었으나 슬쩍 벌어진 입술 사이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 몸만 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분주하게 뛰는 사람, 손에 힘을 주어 연신 끌낭을 잡아당기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조그만 의자에 걸쳤던 엉덩이를 떼며 부산스레 움직이는 사람, 장내 안내 방송에 우왕좌왕하는 사람, 이와는 달리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 국제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늦은 밤에도 저마다의 사연으로 북적이는 Termini역은 '종착역'이라는 뜻과는 달리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출발선과도 같았다. 역 밖으로 나오니 500인 광장은 멈춰 선, 출발하는, 들어오는 버스들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장소와 피부색만 바뀌었을 뿐, 눈에 익은 익숙한 광경이어서 다소 안심이 되는 것도 잠시, 한 손에는 커다란 끌낭을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꼭 쥔 채 두리번거리는 아라와 진호는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 행색이었다. 보기 안타까웠는지 구글맵은 서둘러 길안내를 시작했고, 가까스로 도착한 Termini(H)의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앉으며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는 두 사람이었다. 속속들이 도착한 버스는 각각의 사람들을 태우고 재깍 떠났고, 그 빈자리를 점령한 진호에게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구글맵에 오차는 없겠죠."
"오늘 안에는 오겠죠."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아라 역시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때마침 64번 버스가 승강장 안으로 천천히 미끄러지듯 오자 반가운 마음에 아라는 앞서나갔다.
"왔다."
늦은 시간이어서 일까? 버스 안은 한산했다. 펀칭기가 뱉어낸 tacachi를 주머니에 찔러 넣은 아라는 빈자리에 앉자마자 떼르미니역 인포메이션에서 받아온 버스 노선도를 들여다보았고, 진호는 휴대폰 삼매경이었다.
"P. ZA VENEZIA역에서 하차 후 도보 10분 내 거리라는데. 안내 방송은 안 나오나?"
"하차 지점 정확히 아니까 먹잇감 되기 싫으면 그만 두리번거려요."
연신 고개를 돌려대는 부산스러운 진호와는 달리 아라의 표정과 말투는 한결 나아 보였다. 낯선 도시, 낯선 버스, 낯선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건, 그들뿐..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막후의 이와 같은 영향력에는 달리 부정할 길이 없었다.
"첫 경험은 어땠어요?"
걸음을 멈추고 부러 미간에 실주름을 새겨 넣는 진호의 모습을 예상했다는 듯, 슬쩍 올라간 아라의 입꼬리로 보아 제대로 신이 난 모양새였다.
"로마의 밤과 호스텔에 대한 질문이니 답은 신중히, 표현은 섬세하게. 오케이!!"
들은 척도 않고, 말은 고사하고 표정도 없이 묵묵히 걷기만 하는 진호를 빤히 보며 아라는 말을 이었다.
"혼성 도미토리가 나을 뻔했나? 난 문화적 충격이었어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잔뜩 위장하고 흘긋 진호를 살피던 찰나, 고개를 돌린 진호와 아라의 시선이 간만에 마주쳤다. 방귀 뀐 놈 답게 아라의 말투는 당당했다.
"내 첫 경험은 프라하였어요. 새벽이었고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휘청대며 물어 물어 도착해 방문을 열었는데, 웬 건장한 남자가 반쯤 벗은 채로 태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는데, 조그만 침대의 시트가 꼬물거리더니 이내 빼꼼히 여자가 얼굴을 내밀더라는. 들어갈 수도 뒤돌아 갈 수도,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는.."
곱씹어봐도 아찔했던지 아라는 연신 고개를 저어댔다.
"본디 신고식은 짓궂어야 한다면서요. 4인용 도미토리였지만 나 혼자여서 꿀잠 잤다는."
"건너편 이쁜이가 탱크 몰고 오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보초 섰다는."
"옮겨요. 우리 방으로."
"장난해요? 지금?"
"그렇다고 내가 숨겨준다는 그런 의미 아니니 그건, 기대하지 말고."
보일 듯 말 듯 혀를 빼꼼히 내민 진호의 표정은 사뭇 장난스러웠다. 스멀스멀 노여움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이로써 사이좋게 주고받은 셈 치고 넘기려, 아라는 되는대로 시선을 돌렸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콜로세움은 또렷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 가장자리에 줄지어 선 관광버스들, 깃대를 높이 올린 인솔자를 따르며 몸소 천천히를 실천하는 관광객들, 콜로세움 - 포로로마노 - 판테온 - 나보나 광장 - 천사의 성 - 바티칸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남쪽 관광지를 책임지고 있는 시내버스는 이제 막 콜로세움을 휘돌아 내달리고 있었다. 점만 한 여운 하나 남기지 않고 멀어지는 버스의 꽁무니를 보고 있자니 '분명 누군가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겠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진호는 흐응 하고 콧바람을 내었다.
"감탄사인 건지 아유인 건지.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그에 응하지."
또박또박 뱉은 아라의 말끝은 잔뜩 엉킨 실타래 같았다.
"콜로세움을 스쳐가는 버스는 일말의 여운도 남기지 않았으나 그 안의 승객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때문에.."
"부산에 범어사란 절이 있어요. 오래전 겨울, 한데 부는 바람에 대웅전 처마에 달린 풍경은 썰매가 얼음 지치듯, 산사의 정적을 베어 버렸고 이에 외국인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더라는,, 흔해빠진 풍경소리에 호들갑은~ 했는데, 숭례문 방화 사건을 뉴스로 접했을 때, 커다란 휘장을 두른 채 복원 중이던 모습에,, 화가 치밀었어요. 돌 하나, 나뭇가지 하나, 페인트칠 하나 훼손하지 않고 삐걱거리는 대로, 색이 바랜 대로, 보존하고 복원하려는 노력과 그로 인한 자부심을 눈으로 보니,, 문화유산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말 대단한 경쟁력이구나. 해서 외국인의 감탄사가 이해가 되었고, 문화재는 그만의 속도와 방향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뭐 그런."
"우물 안 개구리가 넓은 바다를 만나면 개안한다더니, 소득이 있었다니 다행."
멈칫하며 진호는 멀뚱히 아라를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길 가던 중에 턱- 하니 만난 첨성대, 안압지여서 어린 마음에 휘둥그레졌는데, 콜로세움 너마저도, 어른 마음이어도 눈이 번쩍하는 건 매한가지네."
세상에 태어나서 첫 번째라는 뜻풀이처럼, 난생처음 콜로세움을 대하는 진호는 설렘 반, 기대 반이었다. 한껏 들뜬 그의 목소리는 분명 그러했다. 익숙하지만 그러나 거방진 자태로 품어주겠노라며 콜로세움은 손길을 뻗쳐대고 있었고, 이에 응하듯 반들반들한 돌바닥에 낮게 드리워진 그림자 속으로 아라와 진호는 차츰차츰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