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80년에 완성했으며 이후 82년 도미티아누스가 한 층을 더해 총 높이 약 48M, 둘레 약 527M의 4층 타원형 건물,, 정식 명칭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 완공되었다. 기념비적인 이 건축물은 고대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 공학 기술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로마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여 이목을 집중시킨 결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콜로세움(Colosseum)이다.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콜로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공존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각인되었고, 정식 명칭 대신 콜로세움으로 완전히 굳어져 결국,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 격이라 할 수도 있지만, 생각을 달리해 보면, 박힌 돌 위로 굴러온 돌이 더해져 견고함은 배가 되지 않았을까!!
이 원형 경기장은 층층이 다른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차례로 살펴보면, 1층은 그리스 미술 양식 중 하나인 간소한 장중미가 특징인 도리아 양식으로, 주춧돌 없는 꾸미지 않은 굵은 기둥은 윗부분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가운데에 불룩한 배흘림이 있다. 이는 건물의 조화와 안정을 위한 것으로 그리스 로마 고전 건축에서 외벽면 기둥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아폴로(Apollo), 파르테논(Parthenon), 헤라(Hera) 신전 등이 대표적 도리아식 건축물이다.
2층은 오리엔트 문화의 영향으로 늘씬하게 세운 높은 기둥에 주춧돌을 얹고 대들보를 부조(浮彫)로 장식하는 이오니아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주두에 소용돌이무늬(와형)는 이 오더(order)의 특징으로, 이는 여성적인 경쾌함과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표현으로, 중후하고 남성적인 도리아 양식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이오니아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인 소아시아의 에페소스(오늘날의 터키 셀추크 부근)에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Artesmision) 신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절,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섬기던 것으로, 지금은 돌기둥 하나만 남아 과거의 명성은 물론 건축 양식 또한 찾아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3층은 코린트 양식으로, 주두에 아칸서스(acanthus) 잎을 3단으로 빙 둘러 조각하고 그 상부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을 새겨 넣어, 이전의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과는 달리 현저하게 화려하다. 당시 화려한 장식 효과를 즐기던 로마인들에게 헬레니즘 미술이 스며든 여파라 할 수 있다. 쥐꼬리망촛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 깊게 갈라진 톱니모양으로 엉겅퀴와 비슷한 아칸서스 잎을 엮은 호화로운 이 양식은, 후에 동방의 도시에서 많이 나타났으며 그중 하나로 아테네의 올림피아 제우스신전(Olympieion)등의 열주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결국 그리스 신전 건축의 3대 기둥 양식으로, 견고한 몸체에 적당한 옷을 입히고 장신구로 한껏 치장하여 기둥을 세운 후, 약 80여 개의 아치로 외벽을 둘러 콜로세움을 완성한 것이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건물의 내부를 살펴보면, 1층의 가장 낮은 곳에 설치된 특별석에는 황제와 베스타 여신이 마주했고, 그 옆으로 토가(로마 시민의 겉옷)를 입은 원로원, 2층에는 귀족과 무사, 3층에는 로마 시민권자, 4층에는 여자, 노예, 빈민층이 자리했다고 한다. 강한 햇빛이나 우천을 대비해, 천막 지붕인 벨라리움(Velarium)을 설치하였고, 경기장 바닥에는 나무판자를 깔고 그 위에 모래를 덮었다. 원형 경기장은 아레나(Arena)라 부르는데, 이는 '모래'를 뜻하는 라틴어 '아레나"에서 비롯되었다. 현재는 경기장 바닥이 파헤쳐져 있지만 그 옛날 지하실은 검투사들의 대기실과 맹수들의 우리, 경기에 필요한 도구들을 관리하는 창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한 번에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들의 시합과 맹수들의 사냥 시합 등 목숨을 담보로 한 잔인한 전투 경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국적인 동물들의 행진, 연극과 음악 공연 등을 시작으로 콜로세움의 화려한 개막 행사는 약 100일간 이어졌는데, 이는 공개 처형과 검투사들의 격투 시합을 위한 맛보기였을 뿐,, 일례로 티투스 황제는 이 축제 기간 동안 5천 마리의 맹수가 도살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부유한 로마인들이 후원했던 종래의 소규모 게임과는 달리 오직 황제의 자금으로 진행되었고, 더 나아가 황제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킬 욕심은 '나우마키아(naumachia)' 즉, 모의 해전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수상 모의 해전은 줄리어스 시저 집권 당시에도 행해졌는데, 로마 인근의 인공 수역에서 열렸으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권력의 상징인 콜로세움, 그 첫 삽을 뜬 장본인이었기에 힘자랑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을 듯..
과연,, 실현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엉킨 실타래는 하나하나 풀려가기 시작했다. 콜로세움 내부 석재 구조물은 베스파시아누스의 차남인 도미티아누스가 확장 공사를 할 때 세워진 것으로 티투스 당대엔 나무판자와 기둥으로 임시 무대를 설치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즉 무대를 치우고 물을 채우는 식의 운용이 가능했다는 이야기인데, 모의 전투를 위해서는 약 470만 리터의 물이 필요했고 이는 올림픽 수영장 두 곳을 채운 것과 같은 양,,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어떻게 물을 옮겼을까? 하는 의문이 재차 들었다. 기록에 의하면 로마인들은 물을 조달하는데 있어 남달랐다 한다. 80km 떨어진 산속의 샘에서 로마까지 11개의 수로를 통해 깨끗한 물을 운반했으며, 또한 이 수로는 콜로세움에 물을 공급하는 수단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실제로 콜로세움에 물을 공급하는 급수로 약 48개, 물을 빼는 배수로 4개가 발견됨으로 인해, 대략 1시간 안에 물을 채우고 빼내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한 것이라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300만 리터의 물폭탄으로 콜로세움의 히포게움이 반쯤 잠겼을 때, 빗물은 배수로를 통해 삽시간에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로써 내부의 배수로를 통해 일정한 시간 내에 물을 빼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급수와 배수의 문제를 해결한 로마인들에게 마지막 관문인 무대장치가 남아 있었다. 해서 그들은 유명 전투에 출전했던 배의 모형을 본떠 콜로세움 바닥을 손상시키지 않을 약 7-15m의 소형배를 만들었다. 아군과 적군으로 분장을 한 검투사들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던 원래의 모의 해전처럼 치열한 싸움을 연출했지만, 이는 형식상의 눈속임일 뿐, 범죄자나 노예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는 게 그 민낯이었다. 무대장치만 바뀌었다 뿐이지, 결국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는 얘기다. 상대를 해하여 자유를 얻고, 낭자한 선혈과 칼부림에 질러댔던 환호성이라는 간과할 수 없는 감정의 교차, 그뿐만 아니라 영겁의 세월 속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이 핏빛 공포에 거듭 몸이 떨려왔다.
왜 콜로세움이었을까?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가 70년, 유다 왕국을 정복하면서 얻은 황금과 노예가 넘쳐나자 그로 인해 그의 재력은 막강해졌고, 사치와 환락을 일삼던 폭군 네로와는 다른 자신을, 정치 노선을 피력하기 위해 네로 황제의 호화로운 궁전을 허물고 시민의 품으로 돌려준다 선포하였다.
먼지바람 하나 일지 않는 쾌청한 날이었다. 상석에 황제, 그 위로 귀족과 무사, 로마의 시민권자, 여자, 빈민층 그리고 노예들까지,, 콜로세움의 내부는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모래 바닥의 한 면이 별안간 올라가더니 사나운 갈퀴를 한껏 세운 맹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딛고 선 무대를 그리고 관객을 휘돌아보았다. 그 모습에 약속이라도 한 듯 관중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또 한 번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칼과 방패를 앞세운 볕에 그을린 검투사가 등장한다. 그는 아랑곳 않고 시선을 한데 모아 맹수를 좇았다. 조금씩 몸을 흔들며 어슬렁거리던 맹수는 탐색전이 끝난 듯 속도를 내어 느닷없이 내달린다. 맹수의 수를 읽은 듯 몸을 조금 틀고 시간을 재던 검투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자의 목덜미에 날이 선 칼을 내리꽂았다. 이내 맹수는 움찔하더니 바닥에 기다랗게 누워 어기적댄다. 곧이어 와- 하는 군중의 함성 소리는 황제의 손짓 하나에 제압된다. 자신에게 쏠린 군중의 시선을 휙- 돌아본 후 계산에 의한 틈을 주고는 재빠르게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린다. 이에 떠나갈 듯한 함성 소리가 콜로세움 안을 채우다 못해 넘쳐버린다. 사나웠던 갈퀴 한가닥마저 모래에 처박은 채 움직임 없는 맹수와 채 식지 않은 칼끝의 핏자국을 바라보던 검투사는 눈을 들어 그제야 관중석을 휘돌아보았다. 쏘아대는 눈빛에 분노와 회환이 가득 차 있었지만 동요하기는커녕 관심 갖는 이 하나 없었다.
콜로세움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귀족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화합과 도모를 위한 장소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냈으며, 자신들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라는 어두운 단면을 막후에 두었다. 217년의 화재, 연이어 442년에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그 후에는 성당 건물과 귀족들의 저택을 짓기 위한 채석장이 되어 파헤쳐졌고, 중세에는 요새로 사용되다가 19세기까지 방치되었으나 이후 기독교의 성지로 지정되었다. 원형의 1/3의 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나 보전과 복원에 의해 그 위용은 여전히 살아있다.
시민의식과 일체감의 고취를 위한, 공공 오락시설의 하나라고 그 옛날의 로마인들은 자부할 테지만 피를 흡수하기 위해 바닥에 모래를 깔았다는 잔인한 이면과 순교자들의 무덤이었다는 점에서 로마 제국의 전성기의 상징이라기보다 핏빛 과거를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임이 더 크게 다가왔다. 물론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면 할 말이 없지만은..
"지금은 죄다 파헤쳐져 있지만 옛날에는 덮개를 씌워 지하실을 만들고 칸을 막아 검투사들의 대기실과 맹수들의 우리, 경기에 필요한 도구들을 보관하던 창고였다는."
"글레디에이터가 일타강사일 줄이야."
콜로세움의 웅장한 내부에 대충 몸을 의지한 채 말하는 진호의 모습은 티끌만큼이나 작아 보였다.
"검투사 학교가 있었다는 거 알아요?"
말없이 고개를 젓는 아라를 보며 진호는 말을 이었다.
"콜로세움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뿐, 중요한 건,, 건강 관리를 위해 칼슘 보충제 등의 약을 검투사들에게 투여했으며 싸운 후에는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해 음료에 재를 타서 먹였다네요."
"농담 아닐 테니, 와~ 진짜."
"소중한 사람 아닌 소중한 자산이니까."
말을 마친 진호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생각해 봐요. 도망친 노비 고 아무개가 추노꾼에 쫓기다가 정동진 바다에 몸을 던졌고, 내가 그 고 아무개의 후손으로 사건의 전말을 안다고 치면 정동진이 아름답지만은 않을 텐데, 요는, 그 옛날 검투사의 후손들 역시 이곳을 방문한다면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호기롭게 방파제에 몸을 던진 파도가 이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듯, 아라의 말끝은 이리저리 대충 떠다녔다.
"네로의 후손이든, 베스파시아누스의 후손이라 한들 기쁘지 않은 건 매한가지."
"무슨."
"네로의 비참한 최후는 알 테고, 베스파시아누스 역시 콜로세움 완공 전에 눈을 감았으니."
순간 아라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놀랐다기보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이기적인 사람이네. 경험자라고 지금 유세하는 건지. 보고 또 보느라 정신없는 사람 앞에다 두고. 30분 후에 입구에서 봅시다~ 가이드라면 보통 그러잖아."
벌어진 입을 한 채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아라를 똑똑히 보았지만 일부러 못 본 척하며, 복도와 무너진 벽이 미로처럼 얽힌 히포게움(hypogeum)에 넌지시 시선을 던지는 진호의 입언저리는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 어느 틈엔가 말이다.
"언뜻 보면 원형 같지만, 실제로는 반원형 극장을 두 개 붙여 놓은 듯한 타원형의 극장."
"그런 것도, 아닌 것도 같고."
"아래 저쯤이 네로 황제의 인공 호수, 황금 연못이라 불리던.. 구심점의 역할을 위해 원형으로 설계된 것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시선이 가운데로 집중하는 사이 공동체 의식의 형성은 물론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유희를 제공함으로 시민들의 눈을 돌리고자 함이 가장 큰 목적은 아니었을까?"
진호의 말끝은 더할 나위 없이 거칠었고 그와는 달리 아라는 생기를 가득 채운 두 눈을 앞세웠다.
"우리 역시 경험자. 군부독재 시절 3S정책.. 컬러 TV의 등장, 올림픽 개최, 야간 통행금지 폐지와 더불어 유흥문화의 활성화,, 채찍을 휘두르고 손에 쥐어준 색색의 눈깔사탕은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맛이었겠지만."
메마른 논바닥처럼 진호의 목소리는 쩍쩍- 갈라졌다.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아라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흐르지 못하고 머무는 공기의 흐름을 읽었는지 급히 말을 이었다.
"비록 내가 사는 세상은 아니지만, 그들이 살았던 세상을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이것저것 눌러보다 보니. 이렇게 튈 줄은 상상도 못했네."
멋쩍은지 진호는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터가 안 좋은가?"
"갑자기?"
"로마의 우기는 겨울, 때는 여름 초입임에도 새벽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오전 내 그칠 줄을 몰라 콜로세움 관람을 포기해야 하나? 망설이던 참에, 다행히 비가 멎어 부랴부랴 움직였는데, 발에 치이는 물웅덩이 하며 빗물에 젖은 잿빛의 돌무더기, 먹구름으로 도배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려댈 것처럼 심술궂기에.. 해서 군중 앞에 홀로 선 그 옛날의 검투사라도 된 양, 엄청 우울하고 또 침울했다는,, 내 상상 속의 콜로세움은 정반대였거든요. 뭉게구름 사이로 해님이 마중 나온, 간간이 부는 바람은 모래를 일으켜 여기저기 부유하다 결국 내 눈앞에까지 오는,, 그런 극적이고 입체적인 영상이었는데, 무채색 그중 회색의 한 톤뿐이라니.."
"이걸 보러 로마까지 왔던가!! 부르르 하던 그 모습 상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배를 움켜쥔 채로 진호는 호탕하게 웃었다. 겁도 없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라의 눈매가 심술궂게 커졌다.
"물론 그랬었지. 해님 반사판을 뒤로한 콜로세움을 숱하게 보았음에도 두고두고 곱씹어지는 건 비에 젖은 콜로세움,, 아마도 검투사의 억울한 혼이 비를 뿌려대며 몸소 마중 나온 게 아닐까? 나름 상상하면서."
한껏 치켜세운 진호의 꼬리는 어느 틈엔가 바닥을 향해 축 늘어져 있었고 이어 할 말을 찾는 듯 궁리하는 모양새였으나 연거푸 눈만 꿈벅거릴 뿐, 실상은 살짝 열린 입을 통해 희미한 숨소리만 규칙적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아라 역시, '사물과 상황을 대하는 인간의 감정은 획일화를 거부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회색 빛의 콜로세움을 부러 들먹인 것인데, 불쑥 나온 고깝지 않은 그의 말에 저도 모르게 쌜쭉 반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해도 과연 옳은 처사였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스멀대는 떨떠름함에 불쾌했다. 바라다본 진호의 어정쩡한 모습이 자신의 두 눈을 틈 없이 메우자 내키지 않은 마음은 이내 배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복잡다단한 사정 따윈 아랑곳 않고 즐비한 관광객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잡고 만국 공통어인 '치즈'를 연발해 댔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그것은 마치 그 옛날, 융합이 불가능했던 검투사와 관객들처럼,, 같은 모습 같기도, 다른 모습 같기도 했다.
*오더(Order) - 보와 그것을 받치는 기둥의 구성에 있어서 구조상·장식상의 일정한 기준이 만들어져 있는 것, 또는 주범(柱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