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10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1944년 로스팅 회사로 설립된 caffee TAZZA D'ORO(La Casa del Caffè al Pantheon)는 독자적인 블랜딩 레시피로 3대에 걸쳐 전통을 고수하는 장인회사로 입지를 굳혔을 뿐만 아니라 판테온과 함께 로마의 명소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건물의 노란색 간판 아래 놓인 24시간 원두를 구입할 수 있는 외부의 밴딩 머신의 상부에는 머리에 두건을 쓴 여인이 커피 씨앗을 흩뿌리고 있고 그 아래로 자판기의 버튼이 자리하고 있다.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신선한 원두를 제공한다는 의미일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두 포대와 진공 포장된 원두가, 좀 더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투박한 그라인더는 터의 주인으로서 과거와 현재 모두를 설명하고 있다. 나무 진열장 안에는 모카포트, 차 등의 상품들이 열을 맞춰 진열되어 있었고, 회색 남방에 검은색 앞치마를 한 바리스타로 하여금 손님들의 꼬리를 잇게 하고 있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제맛이지. 암.. 감정 이입을 하던 그 찰나의 순간은 때아닌 실랑이에 의해 깨져버렸다. 이유인즉슨, 'ice의 동상이몽'.. 지기 싫은 중국인과 본체만체하는 로마인의 출구 없는 싸움이 한창이라 그로 인해 이탈리아어와 중국어가 한 공간에서 겉돌 뿐, 덩그러니 놓은 다소곳한 자태의 GRANITA DI CAFFE CON PANNA만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홀연히 나타난 가이드가 상황을 대충 마무리하자 소동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시끄럽고 성질 급한 닮은 꼴이 만났으니 제대로 된 싸움 구경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시시해지자 아라는 싱겁게 웃었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라는 웃음으로 말끝을 얼버무렸다.

"방앗간에 오니 신난 참새꼴이라니.."

비아냥거리는 것은 생경스러운 음료 때문이리라. 다시금 접한 상황에 아라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별다방이 맥을 못 추는 바람에.. 아쉽게도."

말과는 달리 고소미 과자 한 통은 털어 넣은 듯한, 곱씹어도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말하고는 데미타쎄(demitazza) 잔에 설탕을 넣어 단번에 털어 넣고 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아라는 눈을 감았다.

"별 맛 아닌가 보군. 눈이 번쩍 하기는커녕 꼭 감는 걸 보면."

"에스프레소만큼이나 인기 있는 메뉴, 전직 바리스타가 추천하고 현직 바리스타가 제조했으니."

GRANITA DI CAFFE CON PANNA가 담긴 플라스틱 컵을 톡 건드리며 말하는 아라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걸 보니 산미가 없는 커피가 제법 입에 맞았나 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충 떠서 입에 넣던 진호의 눈은 금세 커졌다. 컵을 끌어당겨 요리조리 살피고는 수저 가득 담아 다시금 입에 넣고 오물거리더니 급기야 손에 쥐었다.

"bouno."

진호를 대신해 손동작까지 곁들이며 제대로 신이 난 아라였다.

"까맣고 하얀 것이 희한한 맛이로구나."

"블랙 & 화이트는 블랜딩 맛집이니까. 김밥, 오레오 쿠키, 몽쉘통통. 오죽하면 팝의 황제도 외쳤겠냐고."

"그건, 블랙 or 화이트."

"and나 or나 결국, 앞과 뒤를 이어주는 말이거늘."

생크림과 커피 슬러시를 층층이 올린 GRANITA DI CAFFE CON PANNA가 진호의 마음을 몽땅 빼앗아간 모양이었다. 시큰둥하던 태도는 오간 데 없고, 음료 또한 자취를 감췄다. 어느 틈엔가 말이다. 쓰고, 달고, 시원한 맛의 caffee TAZZA D'ORO의 시그니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익숙한 사람들과 때아닌 마찰을 겪는 일만 아니면 가히 매력적이라던 떠도는 소문은 사실인 듯했다. 에스프레소에 익숙지 않는 진호가 그 사실을 몸소 증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hotel del corso를 지나 Via Vittoria 거리를 따라 걷다 Da Vinci Roma(셔츠 가게)를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 Outlet Multibrand Donna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제 빛깔을 조금 상실한 살구빛 외관의 5층 건물,, 1층의 네모난 창문에는 쇠창살이 달려 있었고, 육중하지도 그렇다고 견고해 보이지도 않는 두 짝의 나무 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문 양쪽으로 달린 외벽등마저 잠잠했다. 출입문의 위쪽 나무판에 'ACCADEMIA DI S CECILIA'라고 적혀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듯한.. 'Chiesa di Sant'Orsola' 교회가 있던 자리에 1566년 설립된 로마의 명문 음악학교로,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한 곳이 관광지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을 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가다 The First Roma Dolce(호텔)과 Coccinelle(가죽 상점) 사이에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 눈에 박히는 옅은 모래색 외관의 5층 건물,, 'Conservatorio di Musica Santa Cecili'라 새겨진 외벽의 네모난 석판과 먹색의 청동문 위쪽 나무판, 그 위로 나란히 걸린 유로연합 국기와 이탈리아 국기는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는 형국이었으나, 관광객들은 고사하고 현지인들조차 자칫 무관심할 이곳에 아라는 굳이 발걸음을 했다.

"이곳 역시 그런가?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피렌체처럼. 돌고 돌아 굳이 골목 안으로 끌고 온 걸 보면."

휴대폰을 꺼낸 진호가 생경스런 건물과 거리를 무턱대고 찍어대자 아라는 커다랗게 십자성호를 그었다. 순간 진호의 눈이 커졌다.

"정답!! 가톨릭의 성지."

진호는 꽤 의기양양했고 잠시 일렁였던 마음을 억지로 누른 듯 아라는 잠잠해졌다. 마치 틀린 그림처럼..

"아마도 신은 날 버린 것 같아요."

"무슨?"

"들어 봐요. 공평하신 하나님은 남자에게 공간 지각 능력을, 여자에겐 자그마치 세 개의 자리를 주셨어요. 그 첫째는 용모와 색을 겸비한 여인의 자리, 두 번째는 아내의 자리, 세 번째는 어머니의 자리,, 한껏 품은 어머니의 자리가 이렇듯 부족한 걸 보면."

말끝을 흐리며 아라는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의 간판 대신 선명히 새겨진 글씨를 가리켰다. 진호의 시선은 아라의 손끝을 좇았고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고는 해석이 되었는지 이내 끄덕였다.

"말로만 들었지 눈으로 보게 될 줄은. 수녀원 건물을 개조해 운영 중이라던,, 학교 선배 통해 귀동냥했어요."

"설마 그게 다예요?"

두 개의 출입문으로 연결된, 결국 하나의 건물이라는 부연 설명도 까먹은 채 아라는 튕기듯 물었다.

"응."

너무나도 태연스러운 태도였다. 게다가 씨익 웃기까지 했다.

"그럴 거면 여인으로서가 먼저였어야지. 공평하신 분의 뜻을 거스르고 멋대로 하면 쓰나."

"일렁이거나 동요치 않아요? 분명히 말해두지만 밀라노엔 못 가요. 아니 안 가요."

요는, 밀라노에 있는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지칭하는 것일 테지. 진호의 시선으로 부러 잘라 말하며 동시에 입도 닫아 버렸다. 막상 눈으로 접하면 선택은 필수로 바뀔 수 있고 단언컨대, 직업적 특성상 유학이란 쓸모 있는 것, 하여 그런 마음으로 겸사겸사 둘러보자 한 것인데 본체만체하는 것이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나 보다. 어쩌면,, 단계 무시하고 함부로 정해버린 자리 탓 때문은 아닐는지.. 그의 말처럼,, 말이다.


<로마의 휴일>과 오드리 헵번으로 인해 더욱 유명세를 탄 곳, 스페인 계단.. 한때는 이곳에서 비둘기와 인간이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던 정이 넘치던 시절도 있었지. 그러나 그 한식구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면 물의 도시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 광장에 둥지를 튼 건 아닌지.. 취식이 불가능해진 탓에 주변 상인들의 적지 않은 푸념도 있었다지만, 그럼에도 관광객들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비단 더운 날씨 때문도, 일회성도 아닌,, 불쑥- 하고 떠오를 아픈 기억 때문이리라. 융프라요후 등반을 위해 재차 스위스로 향한다면 그건, 그나마 명분이라도 있다지만 아이스크림 하나 먹자고 로마, 것도 스페인 계단을 다시 찾는다면 면이 서지 않을 테니,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그런 연유가 8할일 테지. 진호 역시 그 대열에 기꺼이 동참해 아이스크림을 핥아먹고 있었다.

"다양한 맛 중에 골라도 하필.."

"오리진을 먹기 전에는 맛을 논하지 말라. 투게더 노력해야겠다."

뜬금없는 진호의 한마디에 아라는 그저 아연실색할 뿐,, 손에 쥔 망고맛 아이스크림도 놀랐는지 샛노랗게 질려있었다. 게눈 감추듯 먹고 난 진호는 그제야 눈을 돌려 사람들을 휘돌아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매체의 힘이란,, 하긴 우리도 있다. 남산 삼순이 계단, 부산 40계단,, 한 발 더 나아가 k-pop, k-beauty를 통해 문화유산을 알리고 있으니.. 문화재청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마땅찮은지 진호는 혀를 끌끌- 찼다.

"성악가들은 그런다지. 일례로,, 안드레아 보첼리는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 성당, 밀라노 대성당에서 공연하며 살신성인하던 걸. 문화재청에 기대는 대신 경복궁 혹은 안압지에서 몸소.."

손에 쥔 고삐에 적당히 힘을 가해 당기고 또 놓는 아라의 재주는 진호보다 한 수 위였다. 아차 하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진호가 애먼 짓을 하자, 그 모습이 마치 엄마 찾는 아이만 같아 보기 짠했나 보다.

"피자는 내가 쏠게요. 지척에 맛집 있어요."

경쾌한 아라의 발걸음이 어기적대는 진호의 발길에 잡혔다. 숨 쉴 틈만 허락한 채 쥐몰이를 했나 싶은 마음은 정면 대신 측면을 바라보게 했다. 그의 시선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대며 시원스레 걷는 남녀에게 꽂혀 있었다. 아라의 염려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뛰어난 가이드임을 증명할 시간입니다. let's go!!"

기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을 꾹- 눌러대는 탓에 심술궂게 커진 아라의 두 눈이 속마음을 대신했다. '이걸 한 대 쳐!!' 의문문 아닌 명령문으로.. 말이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네 반석 위에 내 집을 지으리라'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베드로의 무덤 위에 지어진 곳,, 수문장인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하늘에서 볼 때 성당을 기준 삼아 광장의 입구까지 따라가 보면 정확히 열쇠 모양이었다. 구성원인 성직자들의 신앙의 주춧돌이자, 믿음을 구하는 언약 위에 세워진 집은 크게 고개를 돌려도 한 눈에 담기 힘들었고, 군집한 사람들을 점처럼 보이게 할 만큼 광장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관광지이기 전에 가톨릭의 성지인 곳답게 고개를 돌리면 성직자들의 모습은 쉬이 눈에 띄어, 아라는 시선으로 그들을 좇았다.

"신부님을 보고 설렐 나이는 지난 거 같은데."

아라는 고개를 돌려 진호를 보았지만 이렇다 할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시작점에 바티칸이 웬 말이야. 감춘 속마음은 바이바이 아닌지."

의중을 떠보려는 건지 아님 말뚝을 박아두려는 건지 진호의 말은 쉬이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속에 품고 있는 불안감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로마 국립음악원과 더불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건이 못내 찜찜했나 보다. 일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점수를 잃은 것만 같은, 마음 한구석에 괴어 있던 꺼림칙함이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올 줄이야.

"막연한 동경 그즈음이라 해두죠."

바라다본 아라의 옆얼굴에 쓸쓸함이 잔뜩 얽혀 있었다. 해서 진호는 자신의 속사정 대신 아라의 속사정을 엿보기로 하고 마주한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이내 채근해 댔다.

"<스포트라이트>.. 봤어요?"

말없이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2001년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 팀이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 내용을 담은 영화예요. 한마디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게오건 신부는 몇 년간 지속적으로 교구를 옮겨 다니며 수십 명의 아이들을 성추행했고, 당시 보스턴 담당 교구장과 가톨릭은 한패가 되어 이를 은폐해요. 그러나 변호사 개러비디언이 이 문건을 법원에 제출하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죠.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은 자료를 조사하던 중, '피해자 모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모임의 리더와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약 30년간 보스턴 내 6개 교구에서 80명 이상의 아이들이 사제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과, 1980년부터 보스턴 교구 대주교였던 로우 추기경이 이 사실을 알고도 침묵한 정황 역시 알게 됩니다. '만졌지만, 그러나 즐기지 않았다'는 성직자와 '신에게 어떻게 감히 안된다고, 왜냐고, 반박할 수 있느냐'는 피해 아동들, 그리고 그런 기억을 고스란히 않은 채 성장한 피해자들.. 저소득 가정, 편부모, 망가진 집 등,, 수치심을 더 느끼지만 덜 말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이유로 타깃이 된 거죠. 팀원인 브라이언은 성추행 사제 리스트를 작성하던 중, 자신의 집 근처에도 있는 걸 알게 되자, 펠튼가 267번지에 가지 말라고 그의 아이들에게 당부를 해요."

찬찬했지만 아라의 말투는 지나치게 건조했다. 마치 물기하나 머금지 않은 듯.. 작은 숨을 토해내더니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아동 학대 사건이었더라면.. 아니 그조차도 안됩니다."

좀 전의 건조함은 어느새 힐난조로 바뀌었다. 그러고는 성난 듯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다음 것은 보통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짐작이 들 정도로 말이다. 숨 쉴 틈이 딱 여기인 듯하여 진호는 빠르게 숨을 내어 보냈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 소외되고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야 할 성직자들이.. 물론 그들 역시 인간이지만 그렇다 해도,, 신의 음성을 듣고 평생 따르기로 한 신앙인들이잖아요. 당시 보스턴의 성직자는 약 1000명 이상, 그중 6%, 즉 60명 이상이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결과가 나왔고, 결국 2002년 보스턴 대교구 성직자와 사제 249명이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해요. 그로 인한 피해자는 약 1000명 이상,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도 분명 있었을 테죠. 이에 담당 교구장인 로우 추기경은 사임을 하나, 2년 후 로마의 산타 마조레 성당으로 재발령이 나요. 문제를 일으킨 성직자들은 주기적으로 교구를 옮겨 다니고 반면에 기댈 곳을 잃은 피해자들은 삶과 존재의 딜레마 속에서 평생을 허우적거려요. 미국 내의 문제라 방관하던 바티칸도 미국 50개 주, 43개 도시에서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고소건이 봇물처럼 터짐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도 활화산처럼 솟구치자, 그제서야 잘못을 시인하고 뒤늦은 사과를 해요. <두 교황>이라는 영화에서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자신의 말끝을 채가는 진호를 향해 아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005 - 2012년 일부 성직자의 성폭행 사건을 포함한 여러 문제들이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이에 제대로 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한 늦은 뉘우침은 아닐까? 영화 속 베네딕토 16세의 고해성사 장면에서의 '음소거' 말입니다. 전례 없던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은 가톨릭 모두를 대변한 것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봤어요. 오랜 관행이었던 보수와 타협이 진보와 개혁이라는 새로운 국면 앞에서,, 쉽지 않은, 고귀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으니."

"이런 말이 있다오. 주님은 항상 새로운 교황을 보내어 이전 교황의 잘못을 시정한다. 어떻게 내 잘못을 바로 잡는지 보고 싶소."

"다시 말해, 타협 VS 개혁이란 선택의 문제를 두고,, 변화와 개혁을 받아들이는 그 포용력과 결단력에 음소거한 채 소름.. 하긴 그러니까 주의 종이고, 전 세계 가톨릭인의 아버지인 게지."

재차 반복해 보아도 그때의 느낌이 불쑥- 했던지, 아라는 두 팔을 와락- 감싸 안았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먹은 고구마가 <두 교황>이 건넨 사이다를 마시고 쑥 내려간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럼에도 뭔가 남는,, 전자가 성직자의 옷을 입은 인간에 대한 분노라면, 후자는 성직자의 옷을 입은 인간에 대한 허전함과 쓸쓸함일 테니."

"정확히요."

순간 진호를 향한 아라의 시선과 그의 눈동자가 얽혔다. 공기의 흐름 속에서 말없이 주고받는 눈빛과 시선에는 분노도, 힐난도 그로 인한 허전함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이전과는 다른 감정 같았다. 몰랐었던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인지도 모르리라. 바티칸광장 정중앙에 양반다리를 한 채로 자못 편안한 모양새처럼 보였으나, 툼벙툼벙 날아든 돌이 물둘레를 치며 잔잔했던 물면이 일그러진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광장 양편에

베르니니가 설계한 회랑 위 약 140개의 성인 석상들이 번갈아 가며 던져대는 것도, 대성당 파사드 위 12사도, 그리고 그 아래 웅장한 자태로 선 천국의 열쇠를 쥔 베드로인 것도 같았다. 연신 떨어지는 돌무더기는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의지로는 막을 길이 없는 중력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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