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pantheon,, 그리스어로 '모든'을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쳐진 말로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을 의미한다. 이는 다신교였던 로마 제국 때 건축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돔 형태의 건축물이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아그리파에 의해 세워진 신전으로, 서기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기간 118-125) 때 재건하면서 아그리파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옛 판테온의 정면에 새겨진 영문을 그대로 새겼다고 한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채 로마 제국 내로 흡수된 고대 그리스인들과 다신교였던 로마인들이 더해져 만신전 역할을 했던 판테온은 기독교가 로마의 정교가 되자 순교자들의 성모마리아 성당(Chiesa Santa Maria dei Martiri)으로 개조되었는데, 이는 동로마 제국 포카스 황제에게 판테온을 기증받은 교황 보니파시오 4세(재위 기간 608-615)에 의해서였다.
원래 판테온의 외벽은 대리석으로 조각되었으나 현재는 대부분이 벗겨지고 벽돌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으며, 내부 역시 천장의 격자무늬 공간에 금박을 입힌 청동 별들이 장식되어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전해지는 일화는 이러하다. 1625년 교황 우르바노 8세(재위 기간 1623-1644)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발다키노를 만들기 위해 신전 천장의 청동판을 벗겨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발다키노는 베네치아에서 공수해 온 청동으로 제작했으며, 판테온의 청동은 신탄젤로 성에 배치할 대포 주조에 사용되었다 한다.
지름 1.48m, 높이 14.14m의 화강암 단석(單石)으로 만든 16개의 기둥이 주축이 된, 43m의 돔 건물은 지붕의 하중을 줄이기 위해,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가벼운 돌을 사용하였고, 돌의 두께 또한 지붕 밑부분은 2.5m, 윗부분은 1.2m로 무게를 줄였음은 물론, 파인 격자무늬 역시 이에 한몫을 하고 있다. 건축 재료로 사용된 로만 콘크리트는 나폴리의 배수비오 화산의 화산재를 배합하여 만든 것으로 물에 강할 뿐 아닌 오랜 수명으로 판테온을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건물의 최상부에 뚫린 지름 9m의 둥근 구멍은 '눈'이라는 뜻의 라틴어 오쿨루스(Oculus)라 칭하는데, 이는 태양을 상징하며, 이곳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인공조명 없이도 실내를 환하게 밝혀줄 뿐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벽을 따라 돌며 해시계의 역할을 해왔다. 판테온 내부는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된 커다란 원형의 방 구조로, 이 원형 홀에서 돔의 오쿨루스까지 따라가 보면 반구의 지름과 정확히 일치하여 완벽한 반구형을 이루며, 둥근 천장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와 특히 정오 무렵이 되면, 마모된 대리석 실내는 외부와 단절된 기하학적 공간으로 반짝이게 된다. 덧붙이면,, 4월 21일 하지 정오가 되면 빛이 신전 입구에 있는 아치에 정확히 들어가는데, 놀랍게도 4월 21일은 로마의 건국 기념일이다.
비가 오면 실외의 온도는 내려가고 실내의 온도는 급격히 상승하기 때문에 굴뚝 효과를 통한 상승기류로 인해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 이때, 건물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밀폐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반드시 수반된다. 이 원리는 신전 건축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과거 신전으로 사용되었을 때는 문을 닫고 불을 피워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상승기류가 발생하여 비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강한 비나 문이 개방되었을 시에는 내부로 들이치기에, 이에 경사면으로 설계된 바닥은 빗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의 역할을 한다.
'천사의 작품'이라 미켈란젤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의 돔을 설계한 필리포 부르넬레스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으며, 전면의 삼각형 지붕에서 후면의 원형 돔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이후 성 베드로 대성당, 파리의 팡테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외형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이 없었다면, 명실상부한 최고의 돔 형태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내부에는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 이탈리아를 통일한 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대관절 너의 목적은 무엇이더냐?"
뜬금없는 진호의 말에 아라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내가 세상에 온 이유 말이에요. 인터넷은 고사하고 자동차도 없던 시절, 아니 교육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훨씬 이전임에도 저들은."
천장의 오쿨루스를 바라보느라 그의 목은 반 자는 나와 있었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 모습에 아라의 장난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과학적인 원리에 근거해서 지었다고 생각해요? 호랑이가 담배 피우기도 전인 그 옛날에. 그냥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혹은 후손들이, 아님 관광객 유치할 목적으로 대놓고 하는 로마 관광청의 ppl은 아닐는지."
순간, 어지간한 그 진호가 심술궂게 눈을 키웠지만 상관없다는 듯 아라는 말을 이었다.
"본 것도 아니면서. 근데 난 봤어. 양동이를 들고 허둥대는 그 모습을."
"내부 공기의 상승으로 외부 공기가 차단되는.."
"같은 출판사 책인가 보다. 집필한 작가가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방문했던가. 아님 작정하고 거짓말을 한 거라면."
"물론,, 거센 빗줄기 앞에선 속수무책일 테지. 그런 연유로 경사진 바닥은 배수구 역할을 할 테고. 그렇지만."
"비 오는 날 오던가. 아님 지금 확인해 보던가."
그의 손에 들린 생수병을 가리키며 아라는 코웃음을 쳤다. 천장의 뚫린 구멍도, 굴뚝 효과의 원리도 진호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아니지만 콜로세움에 버금가는 유적지가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눈도장 찍으려 한 건데, 뜬금없는 아라의 한마디가 기폭제가 되었나 보다. 가만있자니 궁금한, 확인하자니 위험한,, 한마디로 그는 좌불안석이었다.
"밀라노에 안 가는 그 사연은 대체 뭔지."
"심각한 걸 보면 잊고 싶어 연예 가십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 그 뭐라고 하던데."
"뭘 또 현상씩이나. 그냥 궁금한 거지."
"그런 심리가 있다고 예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 아무튼 그런 원리예요. 심각한 걸 잊기 위해 나름 쉽고 편한 거에 눈을 돌리는."
요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인 '부인'을 일컫는 것일 테지. 인간의 마음은 대처할 수 있는 스트레스에 초점을 맞추어 실존적인 공포를 차단한다는 것으로, 이를테면 '누군가 자신을 해하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과 같은 실존적 공포가 닥치면 그것을 지우고 '지각을 않고 출근할 수 있을지'의 보다 단순하고 일상적인 고민에 초첨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 습관을 예로 들면,, 지구 종말, 지구의 온난화 등의 부정적인 기사를 접한 후에는 그 두려움을 잊게 해 줄 가볍고 사소한, 유명 인사의 스캔들이나 스포츠 하이라이트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떡볶이의 얼얼한 맛을 잠재우기 위해 쿨피스를 찾듯?"
"못됐네. 여자들에게 떡볶이란 엄마와도 같은 존재. 즉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양심도 없게. 먹고 싶어 죽겠는데."
아라의 말투가 단단히 화가 난 것을 보니 떡볶이에 진심인 듯했다.
"기억 사리지기 전에, 밀라노 사연 풀어 봐요. 지금 당장."
"몬테 나폴레오네,, 일명 명품샵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의 로렉스 매장 앞이었어요. 밖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다 직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외면하잖아. 해서 출입문을 잡아당겼지. 근데.."
"잠겨 있었던 게지."
"경험자구나."
"찍어봐야 아나?"
"난 또. 만토바 국립음악원 방문차 in 했을 때 발도장 찍었나 한 거지, 엎어지면 코앞은 아니다만 비행기와 열차라는 교통수단이 있으니까. 패션의 도시 밀라노, 몬테 나폴레오네거리여서 그에 걸맞게 나름 꾸안꾸 콘셉트로 발을 들이자마자,, 하긴 눈만 돌리면 멋진 남자, 예쁜 여자, 패션 리더들이 득실대긴 했지만.."
곱씹어도 아쉬움이 남는지 아라는 말끝을 채 맺지 못했다.
"돌집에 가봤니 하나 걸치고 갈 걸 그랬나?"
순간, 진호는 웃음을 쏘아 올렸고 벌게진 얼굴색이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나 이런 개그 좋아해."
"개그는 무슨.. 남의 아픔에 즐거워하다니."
"sempre, amore, notte, splendera,, 이중 닉네임은 무언지?"
"무슨?"
"이탈리아 북서부의 롬바르디아주에 위치한 관광지도 아닌 만토바를 어떻게 알지? 굳이 연관검색어 기능의 도움을 받아도 베로나 남서쪽, 이게 다일 텐데 말입니다."
건수라도 잡은 듯 진호의 말투는 장난기가 다분했다. 아차 하는 표정만큼은 들키지 않으려 아라는 말머리를 돌렸다.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에 입점해 있는 명품샵 브랜드는 총 몇 개일까요?"
아라의 딴청을 깡그리 무시하고는 입꼬리를 한껏 올린 채로, 손가락으로 생수병을 툭 건드리며 시간이라도 재는 양, 그는 거듭 재촉을 해왔다. '이실직고 대답해'라고..
"<letters to julet>이란 영화 안 봤어요? 내가 그 영화를 엄청 재미있게 봐서, 거기 베로나의 줄리엣의 집이 나오거든. 해서 스크롤 바를 위아래 하다 보니 만토바까지 가더라고. 그런 연유로다."
"후라이까지 말고."
"대놓고 편지가 들어간 제목의 영화인데, 또 이탈리아 올로케이션인데, 실상은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한 기억이 언제였더라'인 거 팬들은 아는지 몰라."
판테온 신전을 등지고 아라와 진호는 티격태격했다. 손짓 발짓까지 해대는 모양새는 마치 고대 신전에 감탄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피 터지는 갑론을박처럼 보였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대신 밀라노 사연 물을 걸 그랬어요. 그 편이 서먹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을 뻔했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시종일관 일정한 보폭은 그녀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보통의 날처럼 말이다.
"근데, 타이밍이 조금 뜬금없긴 했어. 가벼운 저녁 운동 후, 변화구 대신 꽉 찬 직구는 좀 무거운 감이 있지."
아라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어쨌거나 내 일기장을 들춰 본 거라, 꽤 어색해질 테지~, 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네요. 나만 그런가?"
진호의 고개가 끄덕여진 건 그때였다. 아라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것이 다행이었을까? 무거운 시선으로 그는 그녀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말하는 대로',, 들어본 적이 있는 유행가 가사였다. 괜찮다, 괜찮다 말을 하면 어느 순간 그렇게 되는 것처럼.. 작게 입을 달싹이며 그녀는 그런 척을 했다. 여전히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다.
몰래 하는 일탈은 공유하는 일탈보다 훨씬 짜릿하다. 함께가 아닌 혼자라는 상황은 때론 묘한 쾌감뿐 아닌 달뜬 흥분을 일으키지만, 남녀 간의 감정에선 그것은 다른 얘기가 된다. 주고받는 주체가 아닌 바라보는 입장이라면,, 오롯한 혼자만의 감정이라면,, 그건 명백히 슬프고 괴롭고도 외로운,, 것이다.
필라티노 언덕이 황제와 귀족들의 주거지였다면 아벤티노는 평민의 언덕이었다. 공화정을 거쳐 로마 제국으로 위세가 확장되면서 이곳 역시 황제와 귀족들의 거점이 되었고, 서민들은 테레베강 건너를 뜻하는 트라스테베레로 옮겨갔다. 현재 아벤티노 언덕은 로마 내에서도 부촌으로 소문이 자자하며,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때는 비밀의 장소로 통했던 이곳에, 아라와 진호 역시 서 있었다.
"로마의 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아벤티노 언덕 한편에 있는 오렌지 공원. 이곳에는 멀리 로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열쇠 구멍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베드로 성당의 돔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행책을 읽던 또박또박한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눈은 의심 투성이었다. 책을 덮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연한 사기 아니야? 닫힌 초록색 철문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대낮에 늘어선 줄 하며, 무장한 경찰들 하며."
"민박집 사장님이 알려 주신 고급 정보로, 너무 소중해서 나만 알고 싶은 것들 중 하나였다는. 관심도 사람도 저리 대단하지 않았는데."
아쉬움을 잔뜩 머금은 채로 아라는 한 음절, 또 한 음절 뱉어냈다.
"대체 뭔데?"
"심봉사가 눈을 뜰 정도라면."
자신의 예상보다 그의 입이 크게 벌어지자 이에 질세라 급히 말을 쏟아냈다.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충분히. 그니까 대열 이탈하지 말고. 따순밥 먹고 헛짓할 사람으로 보여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인간 줄을 가리키며 아라는 큰 소리를 쳤지만, 마음 한편엔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다. 해서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시각이기를 바랐다.
굳게 닫힌 육중한 초록색 청동문 왼쪽에 박힌 금박 인쇄판이 시선을 잡는다. 'SOVRANO MILITARE ORDINE OSPEDALIERO DI SAN GIOVANNI DI GERUSALEMME DI RODI E DI MALTA' 구호 기사단 문장 아래 'VILLA MAGISTRALE - SEDE EXTRATERRITORIALE'라 적힌, 해석해 보면,, 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몰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의 치외법권의 지역이라는.. 묵직한 손잡이 아래로 칠이 벗겨진 채 뚫린 조그만 구멍(buco), 흔히 신기한 열쇠구멍으로 알려진,, 그러나 실제 열쇠 구멍은 오른쪽 철문에 달려 있다. 조용하기만 하던 로마의 부촌이 들썩이기 시작한 건, 바로 이 구멍 때문인데 buco를 통해 몰타기사단의 별장 안, 그리고 베드로 성당의 돔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로마-몰타 기사단-바티칸 시국,, 3개국을 체험할 수 있으니 실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기에, 백문이 불여일견.. 해서,, 언덕길을 오르는 것이다.
"말이 돼? 한 번만 더 보고 올게요."
성큼성큼 걸어 어느새 줄을 선 진호를 보며 아라는 중얼거린다. 과연 한 번으로 될까? 고개를 저으며 초록색 청동문으로 옮긴 시선에, 예전 자신의 모습이 틈 없이 들어온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이었을까? 그 잔잔한 바람은 시야를 더욱 선명하게 하여 베드로 대성당을 한층 가깝게 보이도록 했다. 바람이 속삭였다.
'사라져 버릴 테니 깜박이지 마. 눈을 크게 떠봐. 평생 잊히지 않게 말이야.'
깜박이기는커녕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마법에라도 걸린 듯 그렇게,, 바람이 옳았다. 아로새겨진 광경, 바람의 느낌까지,, 마치 어제일인 듯 눈을 감아도 생생했다. 순간,,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앞의 진호에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