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몰타 기사단(Order of Malta)의 시작은 1080년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 순례자들과 부상병의 보호를 위한 군사적 성격을 갖추며 구호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으로, 1522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로도스섬으로 후퇴하여 로도스 기사단(Order of Rhodes)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사단은 로도스섬을 거점으로 이슬람 세력에 맞서는 한편, 주로 오스만 제국의 선박에 무차별적인 해적질을 일삼았는데, 당시에 해적질은 통념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에게해와 지중해 중간에 걸쳐 있어 시리아나 이집트 해안 지대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한 요충지였던 로도스섬, 계속되는 해적질은 골칫거리였음이 분명했다. 결국 오스만은 칼을 빼들었지만 연이어 전해지는 패전 소식에 1522년 즉위한 술탄 쉴레이만 1세는 인해전술을 앞세워 로도스섬 공격에 앞장선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로도스섬 전체가 오스만의 붉은 깃발로 뒤덮였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기사단은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영국과 프랑스 등 기독교 국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스페인은 대서양 항로 개척에 바빴고, 영국과 프랑스는 왕권 강화에 몰두하던 중이었고, 베네치아는 오스만과 휴전 중이었던 터라 도움의 손길을 거절한다. 결국 그들은 독자적으로 오스만과의 전쟁에 나섰고, 전염병의 창궐과 외성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무너뜨리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창과 방패의 싸움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지만, 6개월에 걸친 기나긴 수성전은 섬의 주민들을 지키게 했다. 이를 방관할 수 없던 기사단장은 결국 술탄 쉴레이만 1세가 제시한 명예로운 항복을 받아들여 살아남은 기사단과 섬의 주민들을 이끌고 크레타섬으로 떠난다. 1523년의 일이다.
이후, 방랑 생활을 하던 기사단은 신성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의 배려로 1530년 몰타섬을 할당받아 이곳에 거점을 둔다. 약 1400km2의 로도스 섬에 비해 약 300km2의 몰타섬은 작은 규모뿐만 아니라 토양 또한 척박했다. 그러나 바위가 많은 환경은 수비면에서 긍정적인 요소였다. 보급 기지가 될 만한 섬 하나 없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상륙 지점도 마땅치 않은, 좁은 땅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의 제한은,, 로도스섬만큼이나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시칠리아와 북아프리카 중간에 자리하여 오스만 측 배들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해서, 기사단은 다시금 해적질을 시작한다. 이는 바그다드, 베오그라드까지 세력을 확장한 술탄 쉴레이만 1세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으나, 1564년 오스만의 황실 선박이 기사단에 나포되자 이에 발끈했으며, 스페인에 의해 북아프리카에서 쫓겨난 해적들이 오스만에게 지원을 요청해 오자 전쟁의 불씨는 다시금 되살아난다. 그러나 신은 이번에는 기사단의 손을 잡는다. 3개월 동안 지속된 전쟁에서의 승전보와 함께 주권을 유지하게 되나 1798년 6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끈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하게 된다. 이집트 원정길에 오른 나폴레옹이 항구와 보급의 제공을 요구하며 위협을 가하자 같은 그리스도인에게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기사단의 규율에 따라 항복하고 만다. 나폴레옹의 점령 2년 후, 섬을 탈취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814년 파리조약에서 정식으로 영국의 영토가 되자 이에 기사단장은 섬의 반환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이후로도 기사단이 몰타 내의 영토를 회복하는 일은 없었다.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 기사단의 손을 잡은 건 비오 7세 교황이었다. 19세기 초에 기사단은 세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결국 1834년 로마에 본부를 두고 정착한다. 이때부터 군사적인 측면은 사라지고 인도주의적, 종교적 조직으로 존재하며 전 세계적으로 퍼져 의료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독자적인 헌법과 법원 등 독립국으로서 갖춰야 할 요소들을 갖추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영토 없는 국가'로 국제법상 주권 국가로 취급받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기사단을 주권 실체로 인정하여 외교 관계를 수립한 나라들이 여럿 존재한다.
그 후 몰타섬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국은 다른 식민지들과는 달리 몰타에는 자치 권한을 주지 않고 군사항으로만 이용했다. 즉,, 지중해의 중요한 군사 및 해군기지의 역할만 할 뿐, 이에 몰타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1919년에 대대적 봉기가 일어나 1921년에 자치권을 부여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반영(反英) 항쟁이 폭동으로 발전하자 영국 의회는 몰타의 독립을 인정하는 신헌법을 의결할 수밖에 없었고, 1964년 9월 21일에 몰타국(Republic of Malta)으로 독립을 한다.
via dei condotti 거리, jimmy choo와 Hermes가 입점해 있는 옅은 개나리색의 3층 건물,, 육중한 나무문은 열려 있었지만, 빼곡하고 견고한 창살들로 곧게 세워진 안쪽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외벽에 박힌 구호 기사단 문장과 매달린 깃발은 나부끼며 제 역할에 충실했지만, Palazzo Magistrale,, 몰타궁보다는 꼰또티 68번지에 무게 중심이 실린 즉,, 명품 거리의 명성에 본의 아니게 눌린 기세였지만, 건물 외벽에 출입문을 향해 있는 2대의 cctv는 수문장인 양, 매의 눈을 한 채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찾았다."
구호 기사단 문장을 가리키며 진호는 펄쩍 뛰어올랐다. 소풍에서 보물이라도 찾은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아벤티노 언덕은 기사단의 본부고, 여기는 수장의 처소라고. 한적한 곳은 고사하고 명품 거리 한가운데 있을 줄이야."
"늙을수록 다운타운이 정답. 관공서, 병원 등의 동선을 생각한다면, 그건 그렇고,, 덕분입니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해서, 실망이라는?"
"딛고 선 로마, 눈앞의 몰타 기사단,, 흰자 노른자의 계란처럼, 애초부터 한몸인 것처럼.. 신기하지 않아요?
열쇠 구멍이 내내 맴돌길래. 여기까지 일 줄은 상상도 못했네."
머쓱한지 그는 코끝을 쓸었다. 아라에게 왔던 그 바람이 그에게도 불었었나 보다. 그의 모습에 그런 확신까지 더해져 그녀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배가 아픈 건 아니고? 왜 사촌이 땅만 사도 배가 아프다 하잖아들."
1760년 개업 이래 25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져 온, 로마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Antico Caffè Greco> 앞,, 들어갈지 말지를 두고 그들은 때아닌 실랑이 중이었다.
"안 아프던데. 사촌 언니가 시골에 나대지를 좀 샀거든."
별안간 진호의 입이 벌어졌지만 이에 아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런던 커피하우스의 등장과 함께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인정받은 그 흐름에 힘입어 오픈한 카페 그레코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괴테, 스탕달, 찰스 디킨스, 안데르센, 키츠, 바이런, 마크 트웨인, 쇼펜하우어, 바그너, 리스트 등,, 세계적인 문인, 음악가, 극작가들의 아지트였고, 1953년 이탈리아 정부가 로마 특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어 내외부 인테리어 구조 변경의 엄격한 규제는 물론 카페 외의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어요."
진호가 발을 뗀 건 그때였다.
"Prendiamo un caffè!!"
말없이 아라는 바라만 보았다.
"요는,, 가고 싶다는 거잖아."
그의 몸이 카페 그레코를 향해 기울자 팔뚝을 잡아 아라는 저지했다.
"다음에. 일정 여유 있으니."
자신이 내뱉은 말의 의미도, 품고 있는 마음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하고 노래를 불렀던 카페 그레코가 아니던가!! 코 앞에서 망설이는 알 수 없는 행동이란.. 그치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왜일까?? 머릿속 회로들을 돌려 보았지만 공회전만 할 뿐 속시원한 답은 없었다. 바라다본 그의 표정 역시 붕 뜬 것만 같았다.
"재미난 얘기 해줄까요? 2017년 9월 당시,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자 임대인 측은 6배가 넘는 월세 폭탄을 투하했고 카페 측은 터무니없는 인상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해요. 이에 문화유산 보호 단체인 <이탈리아 노스트라>는 로마인에게서 카페 그레코를 빼앗을 수 없으며,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장소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걸고 카페를 향한 지원 사격을 합니다. 피부색은 달라도 타고난 성질은 같나 봐. 기사 접했을 때 어찌나 언짢던지."
분명,, 재미난 얘기라고 했는데.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애매한 표정이었다. 설탕 하나 넣지 않은 에스프레소를 한 입에 털어 넣기라도 한 듯.. 씁쓸함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누구야!! 햄, 치즈에 계란까지 얹어서 토스트 해준 그 남자는."
재주 부린 건 자신인데, 토스트를 앞에 두고 멍하니 있는 아라를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그는 한소리를 했다.
"이삭 토스트 오빠가요."
마주한 그들은 깔깔- 웃었다.
"난 또 박카스남이 부린 재주인 줄 알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어 빵빵해진 볼을 앞세운 그는 아라의 정지된 시선과 마주하자 뜨끔해했다. 입 안의 것을 목구멍 쪽으로 밀어 넣은 탓에 목소리는 한껏 눌려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애가 만든 빅맥은 기가 막혔어요. 햄버거 집에서 만났거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라는 토스트를 덥석 물고 오물거렸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불쑥, 문득 하는.. 오늘은 그런 날 아니니 눈치 그만 보고 먹던 거 마저 먹어요."
그제야 진호가 힘차게 입 운동을 하자, 그런 그를 흘끗 보고는 아라는 다그치듯 말했다.
"대충 먹었으면 일어나요. 불쑥-하고 떠오른 게 있어서."
벌떡 일어나는 아라와는 달리 그는 뭉그적거렸다. '나쁜 일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앞세우고 말이다.
"의외인걸요."
"로마에 왔으니. trippa 앞에서 망설이던 비겁한 그 누구와는 달리."
"그만 비아냥대고 설탕마저 넣지. 멋 부리다 병원 신세 지지 말고."
고개를 젓는 진호의 태도는 비장했다. 엄지와 검지로 데미타세 잔을 잡고는 호기롭게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미간의 실주름은 금세 사라졌다.
"강렬하지만 나쁘지 않네요."
피식 웃는 아라를 보며 이유를 재촉했다.
"왜? 왜!!"
"일탈의 현장 같아서. 마치 내가 주동자 같아서."
배시시 웃고 난 그는 텅 빈 데미타세 잔을 매만졌다.
"직업 특성상 하루에 얼마나 마셔요?"
"보통 드립은 싱글로 추출하기에 본연의 맛만 느끼면 되지만, 블랜딩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기에, 만델링을, 수프리모를, 브라질을, 안티구아를 찾아보려 마시고 또 마시고,, 장금이도 더군다나 커피감별사도 아니면서. 그런 이유로 많이 마셨는데, 다 옛날 말이고, 컨디션 꽝인 날은 3잔, 그렇지 않은 날은 1잔."
"해서 만델링 맛이 느껴지던가요?"
데미타세 잔을 콕 집으며 그는 물어 온다.
"그건, 영업 비밀이라 누설 금지."
검지로 입을 막으며 아라는 말을 아꼈다.
"거짓말."
"수프리모는 확실해요. 것도 풀시티로 볶은.."
누가 듣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몸을 숙여 그에게 속삭였고, 무슨 중요한 얘기라도 되는 듯 받아들이는 그 역시도 심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