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16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그럼 그렇지. 기대한 나만 또 바보 된 거야."

since 1916 간판을 버젓이 내건,, Regolie 앞이었다.

"100년이 넘었다는 것은, 즉 묻지도 따지지도 의심도 말고 들어가야 한다는 말. let's go."

힘찬 목소리만큼이나 두 발의 움직임 또한 경쾌한 아라에 반해 그는 시종일관 웅얼거렸다. 어기적거리는 걸음에 그녀의 시선을 잡아두려 했지만, 출입문을 사이에 둔 채 마주하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말이다. 끙- 앓는 소리와 함께 진호는 출입문의 손잡이를 힘차게 당겼다. 매장 안을 어슬렁거리던 아라의 두 눈이 번뜩인 건 'fraolaia di bosco' 네임택 앞에서였다. '딸기 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먹음직스러운 딸기가 가득 올라간 타르트였다.

"당신에게 trippa가 워너비였다면 나에겐 bigne가 그렇다는. 반갑다 bigne."

한껏 들뜬 자신과는 달리 뚱한 표정을 한 진호를 보고, 적당히 넘길 수 없던지 급기야 꾸짖듯 했다.

"곧 있으면 친구 오겠네. 코 나온 이랑, 입 나온 이랑 입체적이고 끼리끼리 아주 좋겠네."

진호는 머리를 굴렸다. 코 나온 이라면? 피노키오?? 자신을 한껏 타박해 오자 대뜸 반응했다.

"누런 콧물 같아 슈크림 싫어한다고."

"마리토조가 어딨더라?"

때아닌 그의 투정에 아라는 연신 고개를 돌렸다. 이내 찾았는지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커피의 고장 이탈리아에서 우유가 들어가는 즉, 카푸치노, 카페라테는 주로 오전에 먹는 음료로 알려져 있다. 마침 그 오전이었다.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포장지에 숨은 채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산딸기 타르트를 사이에 둔 채로 아라와 진호는 Bar Pasticceria D'Amore의 테라스에 마주 앉아 있었다. 정성껏 묶인 리본을 풀고 포장지를 펼치더니,

"아멘."

"얼씨구."

때아닌 십자성호를 긋는 그 모습에 진호의 속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필터링 하나 없이 말이다.

"2014년의 일입니다. 친히 내 나라에 오신 my father께서, 부러 내 고장의 빵집을 컨텍하셨다는. 물론 미슐랭 가이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명성이 자자한 곳이지만.. give & take가 가훈인지라, 그런 내가 아버지 나라의 빵집을 어찌 지나치리오."

"절씨구. 따님 이러고 계신 거 아버지는 아시나 몰라."

"남의 집안 걱정일랑 그만하시고, try it."

마지못해 한 포크질이나 떨떠름한 표정이나 못마땅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탐스러운 딸기를 입에 넣고도 한동안 말이 없는 진호를 바라보는 아라는 애간장이 탔다.

"별로인가? 저번 티라미수보다?"

"맛있어요."

다시금 십자성호를 긋는 아라였다. 진호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왜. 또?"

"가이드님들을 위한 거예요. 굳이 종교까지 바꿔가며 들이밀었는데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이라니. 참 나. 쉬고 나면 몸은 회복이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방법이 없잖아."

"난. 또."

"in, out 뿐만 아니라 stay 하는 사람들 보이죠!! 거 봐요, 맛집 아닌 성지라고. 자그마치 100년을 이어온 빵부심이라니까. 성난 입술 앞세워 뚱하게 맞이할 아무데나가 아니라는. 증명하고 싶었어요."

대화의 끝은 초점이 엇나가 있었다. 괜히 열이 난 아라와, 어처구니없이 한 방 맞은 진호,, 그들의 사이는 조금 먼 듯했고, 그 사이에 애매하게 놓인 산딸기 타르트는 본연의 붉은빛을 곧추 세운 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얀 생크림 들어간. 그 뭐랬더라?"

"2차전인가?"

심상치 않은 아라의 목소리에 그는 움찔했다.

"마리토조. 그게 왜?"

"맛있었다고. 무릎을 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티라미수랑 산딸기 타르트보다."

아라의 손이 올라간 건 그때였다. '설마 치려는?',, 생각이 여기에 닿자 그는 재빠르게 몸의 중심을 뒤로 옮겼다.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한동안 머물자, '그럼 하이파이브 하자는!!' 멋대로 단정 지으며 손을 들어 올린 순간,, 머리를 쓸어내리며 한 방 먹이는 아라의 교묘한 수에 당한 그의 손과 얼굴은 허공에 붕 뜬 채로 방향을 잃고 흔들렸다.

"생색내려는 건 아니지만, 그 커피집이 또 현지인들의 맛집이고 그중 카푸치노가 단연 으뜸이라는. 전 휴게 음식점업의 영업 철학을 앞세웠던 건데. 그걸 또 깡그리 무시하질 않나."

억지 서운한 척하며 아라는 말 그대로 생색내기에 혈안이 되었지만 진호의 관심을 끌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영업 철학?"

"좋은 것만 드려요."

시원스레 웃어 젖힌 그가 별안간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낱개 포장된 레모나를 건넨다. 이에 아라는 배시시 웃었다.

"까줘요. 너무 웃었나 봐. 손끝에 힘이 없어서."

그녀가 건넨 레모나를 호록- 털어 넣고는 생수병을 열어 입가심을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아라는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자신의 소심한 복수에 대한 대갚음이려니' 하며 말이다.


"내가 그런 얘기도 했어요?"

"응."

"케밥집이 보이는 잘츠부르크 역 벤치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했는데. 분명."

"숨조차 쉬기 힘든 로마의 무더위를 뒤로한 채 밤새 달린 열차는 어스름한 새벽녘에 뮌헨 도착을 알렸고, 숙소를 구함과 동시에 잘츠부르크행을 택했어요. 야간열차의 첫 경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 일정, 역 광장으로 한 걸음 막 내디뎠을 무렵, 결국 참아왔던 불만이 터진 거죠. 이에 나의 눈물샘도 방출되었던 거고.. 다섯 살 어린 선임, 꽃길 따윈 애당초 기대도 안 했어. 네 식구 비행기표에 더해 유레일 패스 비용을 목표 삼아, 서로의 모난 성격을 참아 가면서 그렇게 결승점에 도착한 건데.. 참아왔던 그 설움이, 울분이, 억울함이, 이름 모를 짜증까지,, 한꺼번에 훅- 터지면서 울고 불고 소리 지르고 했다는."

"서로의 입장차이인 게지."

"맞아요. 그럼에도 내 억울함이 더 큰지라, 한국 가는 비행기 티켓 끊겠다고 되짚어 기차를 탔는데 막상 역에 도착을 하니 미안하다고 다신 그런 일 없을 거라며 사과를 하잖아요. 몸도 맘도 깔깔해서 끓인 라면을 서로의 그릇에 더 담아주려고 젓가락질하다 면발 불은 건, 잘츠부르크 여행 경비는 본인이 내주겠다던 엄마한테 들은 훈훈한 후담도 안 비밀."

"박 터지게 싸우다가도 또 그만한 합이 없지. 가족이란 그런 거지."

"내생에 가족 여행은 단언컨대 없을 거라고 다짐했건만."

"함께 하고 싶죠??"

"네. 다툼과 미움은 잠깐이지만, 꺼내 볼 추억은 네버엔딩 스토리이니."

"부러우면 지는 건데, 효녀 딸 두셨네요."

"아휴."

크게 손사래를 치는 아라가 아니꼬웠나 보다.

"하던 대로 하시죠!!"

"그래야겠죠. 시간도 돈도 노력도 어느 하나 허투루 한 거 없으니까, 안전하고, 즐겁고, 눈물 나게 다닐 겁니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나를 위한 여행이니까."

순간, 아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왜?"

"잘츠부르크를 통으로 날렸네. 망했다."

"설마 이번 여행에?"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아라를 살피는 진호의 표정은 불안했다.

"한국은 지금 새벽일 텐데."

"짤즈 가는 거 엄마는 물론 오빠도 알아요. 알면서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지!! 극강의 고음 절실히 필요합니다. 도와줄 거죠? 아니 도와줍니다."

다나까체를 택했다는 건 진지하다는 뜻일 테고,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모자라,

"부추긴 사람이 누구더라?"

게다가 협박을 해오자, 두 손 들었다는 투로 그는 받아쳤다.

"커피 한 잔 팔려고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면서요. 그런 돈으로 사준 의미 가득한 빵을 얻어먹었으니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해서."

그러나 아라가 반응하지 않자, 그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왜요. 막상 하려니 마음이 변했어요?"

"그건 아닌데, 가끔 가위눌리던데. 괜히 보태는 형국 될까 봐."

껄껄- 진호는 정신없이 웃어댔다.

"슬픈 얘기인데 웃는 게 어딨어요."

억지로라도 웃음을 누르려 했지만 멈춰지지 않는 듯 그가 연신 쿨럭- 거리자 이내 물든 듯 아라 역시 웃음을 흘렸다.


"종일 물을 뿜어대는 고작 분수일 뿐인데, 따지고 보자면 서울 시청 분수도 지지 않는데 말이야."

흐응- 하고 세게 콧바람을 내어 보내고는 아라는 다시금 꼬인 마음을 뱉었다.

"내가 사는 곳의 엑스포 분수는 음악 소리에 맞춰 물을 뿜어 대는데."

시종일관 불평을 늘어놓는 아라를 말없이 바라보았지만, 여과 없이 드러난 표정이 이실직고해 버렸다. '어쩌라고'..

"로마의 휴일, 애천에 이어 1964년 개봉한.."

분위기를 바꾸고자 그녀가 던진 그물은 진호를 단단히 옭아맸다.

"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

호기롭게 뱉은 말투 못지않게 그는 의기양양했다. 그와는 달리 아라는 심술궂게 키운 두 눈을 앞세워 온다.

"예상은 했다만, 보았네."

"오늘 일정이 뜨레비 분수길래 예습을 좀 했죠. 동선 스포는 퀴즈를 암시하니까. 해서."

"얼씨구."

"왜?"

"예습 아닌 영화 감상은 아니었고? 육감적인 여배우가 팔다리 거진 다 내놓은 채 분수 안에 들어가 있는.. 미리 보기가 던진 미끼에 정주행 한 거 아니냐고."

"아~ 그런 내용이었어요?"

머리를 긁적여대는 진호의 모습을 아라는 놓치지 않았다.

"민망하거나 쑥스러울 때 꼭 그러더라."

"무슨."

몸소 재현하는 그녀의 행동에 진호는 금세 차렷 자세를 취했다.

"신체 건강한 성악가님의 은밀한 사생활엔 관심 없고요. 해서 동전은 언제 던질 거예요. 그거 하러 오는 거잖아."

"분수 뒤로 보이는 큰 저택이 폴리 대공의 궁전임은 알 테고, 건물 오른쪽 창문 두 개는 그림이래요. 그곳에 사는 여인이 너무 예뻐, 남자들이 흠모하자 그녀의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림으로 만들었다는. 어디까지나 풍문으로 들었소~라지만."

"다 아는 얘기를 굳이 하는 건 뭘까?"

"내 마음도 그렇다고. 병풍이라도 치고 싶다고. 물론 다른 이유로지만, 본인 컨디션 꽝이면 저기 앉아서 좋아하는 티라미수를 먹던가, 왜 애먼 분수한테, 것도 모자라 나한테까지 진상짓인지. 해서.."

단단히 팔짱을 낀 채로 지지 않는 아라의 기세에 눌리기는커녕, 성난 콧바람으로 모자랐는지 날이라도 잡은 듯 진호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만나 결혼한 이유는.."

"계모와 언니들을 미워하지 않은 착한 마음씨 때문에."

진호의 말끝을 채며 아라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툴툴거리던 좀 전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라를 보자 진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라 역시 맑게 웃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겪어봐서일까? 거친 바다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하는 두 마리 말을 앞세운 반인반어의 트리톤과, 큰 조개 위에 서 있는 바다의 신 넵튠은 그들의 모습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낙차가 큰 바닥을 향해 시원스레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말이다. 세 개의 길이 모이는데서 유래가 된 "Trevi' 분수를 뒤로하고 그들은 꼰또티 거리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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