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21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정말 후회 안 하겠어요?"

"그렇다니까."

"바티칸 투어는 왜 안 한다는 건지."

"투어를 안 한다는 거지, 시스티나 성당과 피에타는 볼 거라는."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분명 후회할 텐데. 재차 말 안 해요."

확답을 받듯 아라의 말투는 사뭇 진지했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진호의 태도는 더없이 확고했다.


시스티나 성당을 뒤로하고 라파엘로의 방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길이 120m, 너비 6m의 복도 양옆으로 이탈리아의 지도가 지역별로 그려져 화려함을 뽐내는 지도의 방.. 드러나지 않게 또 드러나게 설치된 조명까지 가세해 온통 금빛으로 덮인 돔 형태의 천장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자자한 그 명성에 걸맞게 가던 걸음을 멈춘 채 카메라를 눌러대기 바쁜 사람들로 인해 내내 닫혀있던 진호의 입술이 벌어졌다.

"NO PICTURE. SILENCE."

엄숙한 목소리와는 반대로 장난기로 똘똘 뭉친 진호를 보며 아라 역시 맞장구를 쳤다.

"정답!! 시스티나 성당."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쾌활하게 웃는 그들이었다.

"듣고 보고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한껏 아쉬워하는 아라와는 달리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지으며 아라의 팔뚝을 슬쩍- 건드렸다. 일 하라는 듯. 그 의도를 알아차린 아라는 이내 목청을 가다듬었다.

"1504년 건물의 배수 구조 문제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금이 생겼고, 축성 후 정확히 21년에 만에 보수 작업이 진행되던 과정에서 기존의 천장화가 손상되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새로운 천장화를 그리기로 하고 미켈란젤로를 적임자로 내정해요. 당시 그는 율리우스 2세가 안장될 영묘의 조각 작품을 진행하던 중이라 정중히 고사하였지만, 거듭된 교황의 압박에 마지못해 붓을 잡아요. 1508년의 일이에요. 애당초 교황의 주문은 12사도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조상, 선지자(요나), 창세기 등 성경에 의한 주제로 전환해 교황의 승인을 얻어요. 성당 벽면에 비계(飛階)를 고정시키고 작업에 착수하던 중, 프레스코화가 변색되어 작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기회라 여겼어요. 화가 아닌 조각가이길 원했던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영묘 조각에 복귀하려 했지만, 율리우스 2세가 보낸 건축가 줄리아노 다 상갈로에 의해 물거품이 됩니다. 그는 그림이 아닌 벽면에 바른 석회의 수분의 양을 문제 삼았고, 이에 미켈란젤로는 잠시 놓았던 붓을 다시 들어야만 했어요. 수차례의 시행착오로 초반 작업은 느리게 진행되었으나, 작업 속도에 탄력이 붙자 4년 후인 1512년 10월 31일 율리우스 2세의 축하 미사를 거쳐 11월 1일에 일반인에게 공개됩니다."

"너무 유명한 탓에 성경 말씀임을 잊게 되는 아담의 창조를 중심으로 앞으로 세 개, 뒤로 다섯 개, 총합 아홉 개."

손에 쥐고 있던 구겨진 종이를 반듯하게 정리한 후, 그는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었다.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의 창조, 물과 흙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유혹받은 아담과 이브 &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노아의 번제, 대홍수, 술에 취한 노아?"

굳게 다문 입을 하고 진호는 눈으로 물어 왔다. 정답이냐고.

"창세기의 아홉 가지 이야기. 해서 예습한 보람이 있던가요?"

"천장은 높고, 교회 오빠도 아닌지라, 혹 12사도였다면 쉬이 분간은 되었겠지만, 그랬다면 영겁의 세월 속에서도 그 빛이 이어졌을까?"

"멋 부리지 말고. 12간지 아닌 12사도라고, 교적부에 이름 올린 나도 알쏭달쏭한데."

"어!! 어??"

예상했던 반응이었는지 아라는 배시시 웃었다. 멀리 도망가지 못한 웃음은 이내 진호의 입가를 물들였다.

"비계(飛階) 위에 선 채로 그림을 그렸데요. 그 잠깐도 나라면 힘들던데, 자그마치 사 년이란 시간을.."

말끝에 그는 목을 뒤로 젖히고, 부러 허공에 시선을 두고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옛날의 미켈란젤로를 흉내 내듯 말이다. 순간, 아라는 주먹을 쥐고 그의 목언저리를 적당한 타격감으로 두드려댔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

낯선 체온에 곧추 세웠던 경직된 세포들은 온기 가득한 아라의 한 마디에 스르르 경계심을 풀어 버렸다.

"성당 서쪽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묘사된 심판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고 있어요. 그림의 왼쪽 하단에는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심판 받기 위해 올라가는, 오른쪽에는 지옥에 배정된 사람들이 악마에 의해 끌려 내려가는, 여기에 숨겨진 포인트가 있어요.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죄악.."

"색욕, 나태, 탐욕. 음.."

"교만, 분노, 질투, 폭식."

어깨에 걸친 에코백을 뒤적여 꺼낸 책의 페이지를 한참을 넘긴 끝에 아라의 손은 멈췄다.

"오른쪽의 악마가 성기를 잡아 아래로 끌어내리는 자는 색욕, 그 위쪽 몸이 뒤집힌 자는 교만,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자는 폭식, 녹색 옷의 천사와 싸우는 자는 분노, 천으로 몸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자는 나태, 악마에게 상체를 잡힌 돈주머니와 열쇠를 찬 자는 탐욕, 구원받은 자들을 따라가려다 녹색 옷의 천사에게 제지당하는 자는 질투,, 숨은 그림 찾기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무튼 대단하지 않아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진호를 보며 아라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더 놀라운 건,, 당시 완성된 그림 속 나체의 표현을 놓고 교황청과 미켈란젤로는 논쟁을 벌여요. 비아조 다 체세나 추기경의 거듭된 혹평에, 그의 얼굴을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의 얼굴로 그려 놓고 몸을 휘감은 거대한 뱀이 그의 성기를 물게 해 추기경을 향한 복수를 해요. 물론 후에 이 부분은 다른 화가에 의해 감쪽같이 가려지긴 했지만. 아마 그의 혈액형은 A형.."

다음 말은 '아니었을까?'였지만 아라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난데없이 그의 고개가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속도로나, 방향으로나 자신의 두 눈과 대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싶어, 두 손으로 공손히 원위치시킨 후에 다시금 말을 이어 간다.

"뒤끝 있는 B형이었나 봐."

경미하긴 했으나 손끝에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보아 분명 끄덕이고 있었다. 티 안 나게 동작을 반복하느라 여간 고생이 아닌 듯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그럼에도 괘씸해졌다. 해서 아라는 다부지게 말아쥔 주먹을 그의 목언저리에 밀착시켰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

힘의 강도에 비례해 튕겨 나가는 몸의 각도가 거세지자 이에 만족했나 보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 소리만 없었다 뿐이지, 그녀의 얼굴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진호의 입장은 이와는 달랐다. 분명, 전과 다름없는 자애로운 목소리였지만, 등골에 와닿는 기온은 서늘했다. 그뿐만 아니라 허공에 박히는 못 신세를 자청한 것을 내심 후회하는 눈치였다. 눈알을 큼지막하게 굴려대는 모양새는 말할 틈을 노리는 본능에 의한 무언의 시위일 테니..


"런던, 프라하를 거쳐 왔기에 근엄하고 각 잡힌 근위병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웬걸,, 피에로 분장만 안 했다 뿐이지, 풍성한 하의는 저글링을 보관할 용도는 아닐까? 했다는. 목숨 바쳐 교황을 지켰다기에 기대가 너무 컸나 봐."

피식 웃고는 아라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근데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잖아. 그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구나~ 하는 속마음을 감춘 채 입을 다물고 말았지. 거 아님 대놓고 웃을 각이었는데. 근데 대신하던 걸.. 그걸 또 보았네. 내가."

"실은 나도. 용맹스러운 군인의 모습보다는 궁정 예술인의 모습이 앞서길래. 바지 품 하며, 모자 하며 등등.."

부러 새긴 입가의 미소를 진호는 박박 지웠다.

"아까 시스티나 성당에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 수없이 접했던 그의 작품, 선행 학습한 이들을 통해서도 귀동냥했던 터라 별 기대 없었는데,, 압도적이었어요. 아니 이 말로는 턱없이 모자랄 그 정도로."

"그건 아마도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일 테지. 그림과 맞바꾼 그의 열정이 안타까워서일 테고."

"그럴지도."

"가이드님과 함께였더라면 더 많은 지식들을 습득했을 텐데."

곱씹어봐도 아쉬웠나 보다. 채 누르지 못한 감정들은 그녀의 얼굴 여기저기에 멋대로 자리 잡았다.

"해서 그중 기억에 남은 건?"

"좀 오래전이긴 해요.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의 배경 지식.."

호기롭던 말투는 오간 데 없고 목소리는 한 꺼풀 꺾여 있었다.

"그 지식 몽땅 습득했으니 그럼 된 거 아닌가?"

"나야 기억 장치가 멋대로여서 그런 거고, 진호 씨라면 다를 수도 있을 텐데. 무튼 천장 벽화가 목적이라면 반은 한 셈이고 그렇다면 이동하죠. 투어를 마쳐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서둘러요."

바티칸 광장 아무 데나에 잠시 붙였던 엉덩이를 서둘러 떼며 아라는 벌떡 일어났다. 이에 질세라 진호 역시 그녀를 따랐다. 마치 서로를 잡아당기듯, 그들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거방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윤곽은 또렷해지고 있었다.


"나라면 안 그러겠어."

진호의 옷자락을 힘껏 잡아채는 것도 모자라 아라는 아이 꾸중하듯 했다.

"그런 거 아니래도."

"아니긴. 성모마리아의 어깨띠에 고정된 두 눈이 말하고 있는 걸, 찾고야 말겠다고."

"어깨띠였어? 진작 말을 좀 하지."

발 하나를 내딛는 탓에 피에타를 감싸고 있는 방탄유리에 코라도 박을 셈인 그 몸사위가 꼴사나웠던지 아라는 완강한 힘으로 그의 손목을 채 뒷자리로 끌고 갔다. 그 힘에 놀랐는지 아니면 대열을 이탈한 것에 어이가 없는 건지, 한껏 커진 눈으로 질질 끌려가는 그 모양새는 그리 볼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 때문일까? 그들 따위는 관심 없는지, 한데 모인 사람들은 피에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저마다의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런 게 어딨어?"

"적당히 해요."

마치 투견장의 맹견들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강남에 갔으면 적어도 교보문고는 봐야 한다고,, 했죠?"

"옳거니."

"베드로 성당에 온 이유는.."

"그의 서명이었다고?"

"조각은 숱하게 보았지만, 서명은 아직이라. 유일무이한 거니."

"얼씨구."

그들은 동시에 도리질을 했다. 각자 다른 이유를 품고 말이다. 도리질로는 성에 안 찼는지 아라는 등마저 돌려 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진호는 감추지 않고 표정으로 말을 했다. '왜 저래'라고..


성 베드로 대성당 오른쪽, 북쪽 측랑의 첫 번째 피에타 소성당(Chapel of Pieta)에 위치한 피에타(Pieta) 상이 1500년 주빌리(Jubilee) 때 처음 공개된 장소는 지금과는 다른 곳이었다.


당시 로마 교황청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추기경 장 빌레르 드 라그롤라 (Cardinal Jean Bilheres de Lagraulas)는 로마에 머물고 있던 미켈란젤로를 찾아가 자신의 무덤을 장식할 동정녀 마리아와 그녀의 품에 안긴 벌거벗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각상을 의뢰하였다. 수임료에 대한 합의를 끝낸 후, 미켈란젤로는 루카(Lucca)의 흰 대리석을 운반해 와 작업에 착수했다. 1499년의 일이다. 그러나 조각상이 완성되기 전 추기경은 죽었고, 그가 묻힌 옛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 베드로닐라 경당(Chapel of Santa Petronilla)에 피에타상은 세워졌다.


이탈리아어로 '경외', '연민', '공경심'을 의미하는 'Pieta'는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 하나로 그 시작은 14세기 경의 독일이었다. 십자가에서 사망한 예수를 품에 안고 슬피 우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이를 주제로 한 그림과 조각들은 즐비하지만, 그중 단연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피라미드형의 구조로 꼭짓점은 성모 마리아의 머리와 정확히 일치하고, 성모마리아의 드레스 휘장 아래로 점차 넓어져 맨 아래 부분인 골고다의 바위 밑부분까지 확장되고 있다.

당시에는, 성모의 무릎에 안긴 다 자란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난제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작품들에서 누워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의 무릎 밖으로 뻗어져 나와 부자연스러운 형태였다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작게 표현하고, 작품 아래까지 늘어진 마리아의 옷을 이용해 무릎을 크게 보이게 하였다. 이는 전체적인 비례로 볼 때 통념적 비율에서 벗어났지만, 오히려 인물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보이게끔 한다. 또한 그는 이전의 예술가들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는데, 33세의 아들을 둔 마리아의 어린 모습에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순결한 여성은 순결하지 않은 여성보다 훨씬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하물며 동정녀의 경우라면 얼마다 더할까요?'


'마리아의 젊음은 썩지 않는 순수함을 상징한다.'는 그의 방향성에 더 이상의 반박은 없었다. 아주 작은 못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로 표현한 십자가 처형의 흔적과, 수난의 표정 대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평온한 시선의 처리는 여타의 작품들과는 상이했다. 비탄에 빠진 마리아의 슬픔을 부각하기 위해 채색을 하던 종래의 관례를 과감히 저버림은 물론, 후광이나 가시와 같은 현상적 상징을 배제하고, 그 본질을 조각상 안에 담고자 했다. 남달랐던 그의 접근 방식과 예술적 열정을 이해하고는 비로소 아낌없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에 그 역시 자부심을 느끼나,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와전된 내용을 엿듣고 분노한 미켈란젤로가 마리아의 어깨띠에 남긴 서명은 다음과 같다.


'MICHÆL. ANGELVS. BONAROTVS. FLORENTINVS. FACIEBAT(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부끄럽게 여긴 그는 이후 어떠한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 한다. 해서 그의 서명이 남아있는 유일무이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기까지 하다.


성전 확장을 명한 교황 율리우스 2세(재위 기간 1443-1513)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은 시작되었다. 1506년 시작한 공사는 1590년에 이르러 끝이 났고 개관은 1593년, 헌당식(獻堂式)은 1623년 열렸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1667년의 일이다.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 계획에 의해 옛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 베드로닐라 경당(Chapel of Santa Petronilla)의 일부가 철거되었고, 그로 인해 몇 차례의 이동 끝에 피에타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게 된 것은 1749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재위 기간 1740-1758)에 의해서였다.


Pieta는 조각 후 수차례 손상을 입었다. 그중 가장 끔찍한 사건은 1972년 5월 21일에 발생했다. 정신 장애를 가진 Laszlo Toth가 15번이나 망치로 가격하여 피에타를 손상시켰다. 이에 성모마리아의 코, 왼쪽 눈꺼풀과 목, 머리에 쓴 베일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왼쪽 어깨를 가격 당한 탓에 팔꿈치와 손가락들이 부러졌다. 자리에 있던 관광객들은 대리석 파편들을 가져갔고 후에 일부 조각은 반환되었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은 성모마리아의 코는, 등에서 일부를 떼어와 복원했다. 이런 이유로 피에타 상과 관람객 사이에 두께 2cm, 높이 4.5m, 너비 4m, 무려 반 톤이나 되는 방탄유리 패널이 설치되었다.


*루카(Lucca) -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주의 도시.

-피에르산타(Pietrasanta) - 루카(Lucca) 지방의 북부 토스카나(Tuscany) 해안에 있는 도시로, 대리석과의 관련성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에 두각을 나타냈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등의 당대 조각가들뿐 아니라 20세기에 헨리 무어, 페르난도 보테로 등 여전히 조각가들과 밀접한 곳으로, 현재 50여 개의 대리석 작업장과 청동 주물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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